내가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곳으로
지금까지 각 여러 주제별로 내가 왜 그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읽어나갔는지 나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산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산책로이겠지만 책을 평소 안 읽어보았다면 책을 고르는 것부터 막막할 것이다.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나의 대답은 주변에 있는 것부터 평소 내가 관심가지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는 답변밖에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해주고자 한다. 들어가기에 앞서 나라고 편견 없이 책을 보지는 않는다. 어느 다작하는 일본인이 쓴 철학서나 중국인이 제목에 하버드를 들먹이는 자기 계발서는 망설이지 않고 넘어간다.
베스트셀러는 만능이 아니다.
좋은 책을 고르는 것에 앞서 좋지 않은 책을 피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모두가 극찬한 어떤 베스트셀러가 있다. 책을 리뷰하는 많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인생 최고의 책을 만났다. 죽기 전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아니면 지금 당장 하나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에 그 책은 어디에 있는가.
처음 책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당장 많이 팔리고 추천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눈에 먼저 들어올 것이다. 각 도서상점 홈페이지에서는 접속하자마자 메인 대문에 크게 걸어둘 것이고 서점에서도 추천 도서,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으로 입구 근처에 눈에 띄게 전시를 해놓았을 것이다. 도서관은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상 도서관의 추천 도서 역시 시중에 이미 올라온 베스트셀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아무래도 그런 베스트셀러나 홍보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대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책을 주의해야 하는가 이유에 대해서는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어느 날 봄에 들었던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말씀이었다. "여러분들 이번 겨울에 어떤 옷이 유행할지 아시나요? 아니면 알 수 있을까요?" 다른 학생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교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올해 겨울에 판매할 옷들은 언제 만들고 있을까요? 올해 여름? 수업하고 있는 지금 봄? 카탈로그는 이미 한 찬점에 나왔고 지금은 공장에서 이미 옷 만들고 있어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어떤 유행이 시작을 하면 거기에 따라 패션-디자인을 맞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임을 알려주었다. 디자인을 결정하고 원료를 구하고 공장에서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정작 유행이 시작한 뒤에 따라 하고자 하면 이미 지나간다는 것이다. 역으로 자본을 부어 영화와 드라마에 PPL을 하고 언플루언서에 협찬을 하고 SNS 광고를 올려 미디어에 노출시킨다. 유행은 소비자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만들어 낸다. 복고풍? 유행은 돌고 돈다? 그저 패션업계의 쿨타임이라는 식의 이야기다. 물론 나는 패션, 마케팅종사자가 아니기에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타당하다고 느껴졌다.
이는 책이라고 다를까.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은 패션업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프라인 대형서점과 온라인 페이지에서 당당히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은 정말로 밑바닥에서 독자들의 선택을 받아서 올라온 것인지 자본력을 앞세워 일단 유명해지니 사람들이 보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후자는 모르겠고 전자는 판단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출판사를 안 끼고 자비출판으로 올라온 책이 예시가 될 수 있다. 다만 그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상당히 힘들다.
마지막 사소한 이유로는 나의 반골기질에서 온다. 나는 그렇게 어떤 상품이든지 '추천 상품'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읽었던 주식투자 관련된 고전으로 기억하는데 중계인이 추천하는 주식은 미래가 창창하고 기대수익이 높기 때문에 추천하기보다 당장 떨어지는 수수료가 높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마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고객에게 페니스탁(동전주)을 들이밀며 판매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말이다. 혹시 식당에 가서 A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주인이나 주문받는 사람이 다른 것도 맛있다며 은근히 B를 권하는 경우를 만나보았는가? 정말로 진심으로 B가 더 맛있어서 고객에서 권하는 경우가 단 하나도 없다고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그럴 거면 메뉴에서 A를 내리면 되지 않을까. 아마 높은 확률로 B의 재고가 많이 남았던가 조리하기 편하다던가 판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떤 이득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시장이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책에다가 마케팅으로 돈을 부었으니 최소한 본전을 뽑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관심을 주제로
항상 매 챕터마다 하는 이야기지만 모든 우선순위와 읽고 싶은 것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관심 있고 흥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서 대답이 어렵지 않다면 앞으로 읽어볼 책을 고르는데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부터 다소 막힌다고 본다. 나를 탐구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나의 취향은 생각보다 깊게 고민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알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지금 관심사에 따라서 정해보자. 돈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주식투자, 노후관리, 경매, 경제, 회계에 관련된 것일 수 있다. 평소에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 시네필이라고 스스로 생각이 든다면 촬영기법이나 영화의 이론적인 것이 많이 있다. 드라마를 즐겨본다면 시나리오 쓰는 법이나 작품론을 찾을 수 있다. 내가 평소에 머무르는 공간을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면 인테리어, 데스크셋업도 있을 것이다. 박물관 전시회를 시즌별로 찾아다닌다면 예술 역사로도 이어볼 수 있다. 평소 과학유튜브를 자기 전에 챙겨본다면 우주과학과 관련된 대중과학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에 시간을 많이 쓰는지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고전을 찾아볼 것
내가 관심 가지고 있는 분야, 주제의 고전부터 살펴보는 것이다. 고전이라는 것이 꼭 수백 년의 철학자나 문학가의 어렵고 두꺼운 책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주제를 대표할 수 있는 책이다. 내가 직장인이라면 경영관리에 대해 관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피터드러커의 책을 살펴보면 좋다. 지금 투자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시기라면 당장 많이 팔리는 투자기법서나 인터넷유료강의 대신 워런버핏, 피터린치의 책이나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를 추천한다. 업무적으로 나의 일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보니 소프트웨어공학에 관련된 고전들이 떠오른다. 지금 당장 어떤 도구나 사용방법을 작성한 책도 좋지만 그것보다 한걸음 뒤에서 교양서처럼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맨먼스미신,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등이 그렇다. 맨먼스미신의 경우 출판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읽힌다는 것은 그 책이 담은 핵심 내용은 시대가 변하여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공부나 일, 관심사에 대해서 특별한 위치를 지닌 고전이나 약간 과장해서 성경처럼 여겨지는 책을 찾아보거나 해당분야의 대가가 쓴 책이 있다면 꼭 놓치지 않고 읽어봐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내가 마지막 취업 면접을 볼 때 나온 질문이 "최근 읽고 있는 책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책을 읽었는지?"였다. 내 옆에 있는 지원자는 약간 당황하면서 지금은 없지만 이전에 어떤 내용을 책으로 찾아보았다는 식으로 대답하였다. 마침 나는 면접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읽던 책이 '맨먼스 미신'이기에 어떤 부분을 인상 깊게 보았고 앞으로 일할 때에 이런 기준과 결과를 놓치지 말고 잘 적용해야겠다는 식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안테나를 열어놓기
내가 다음 책을 고를 때 많은 경우는 인용에서 올 때가 있다. 주로 사회과학 쪽의 서적을 많이 읽다 보니 그런 종류의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책을 인용해서 가져오거나 아예 다른 도서를 추천하기도 한다. 또는 인용이 많을 경우 마지막장에 어떤 부분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주석을 쭉 달아놓기도 하는데 나는 이거를 찾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책을 많이 얻었던 것 같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도 내가 처음에 빌리려고 했던 책을 찾는다면 거기서 바로 떠나기보다 그 책 주위에 어떤 다른 책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특히 도서관의 경우 주제별로 책을 모아두었기 때문에 처음에 빌리려고 하는 같은 주제의 다른 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쭉 훑어보면서 나왔다. 그리고 책을 가지고 나와 무인기에서 빌릴 때 옆에 책을 쌓아두는 반납트레이가 있는데 꼭 여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빌렸고 반납하였는지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대게 재미있는 책이나 여러 주제가 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주변사람으로 부터 추천을 구하기도 한다. 나의 가족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어머니나 친누나가 자신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추천해주기도 한다. 나랑 독서 성향이 비슷한 친구가 마침 있었기에 그 친구가 재미있게 읽었다며 소설을 추천해주면 대게 나도 재미있게 읽었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보면 이런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기도 하다.
내가 책을 고르는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꼭 책 자체에 집중하여 뭐라도 읽어야겠다며 고른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저 주위에 관심을 두면 우연하게도 내가 읽어보고 싶은 읽을거리가 계속해서 생겨났으며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출판사를 중심으로
우리는 종종 덕질한다는 표현을 쓴다. 만약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배우가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한다면 장르나 흥행여부는 모르겠고 일단 챙겨보고 캐릭터의 포토카드 구매하는 것처럼 파고드는 것이 있는데 마음에 드는 특정 작가에게 덕질하듯이 찾아보는 것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최근 故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좋아서 도서관에서 모조리 빌려서 본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좀 더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워런버핏의 주주서한이 정리된 책을 찾아서 보고 있다. 문학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정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해당 출판사는 비슷한 결의 책을 주로 출간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예 출판사를 기준으로 찾아서 더 찾아보면 나의 취향에 맞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이야기한 주제를 어떤 방향으로 깊게 파고든다는 점이 비슷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도 한번 참석해 보자
독서모임에 나가보기
학생이라면 학교 내 독서모임은 하나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졸업을 했거나 직장인이라면 소모임앱등을 통해서 지역 내 독서모임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아본 바로는 디스코드나 줌을 사용한 온라인 독서모임도 있다고 한다. 독서모임의 형식에 따라서 진행 방식은 다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선정한 책을 나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꼬박꼬박 읽어보자 특정 모임날까지 읽어야 하기에 무한정 미룰 수도 없고 1~2주 내에 책 한 권을 읽어야 하니 적당히 스피드하고 독서습관을 만들기도 굉장히 적절한 방법이다.
물론 독서모임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독서모임인 것을 내세우지만 독서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고 다른 것에 더 열심인 독서도 많다. 직장인 독서모임의 경우보다 다양한 책이 올리오기보다 자기 계발서나 돈과 관련된(제대로 된 경제서적도 아니다. 그저 돈 버는 방법, 부업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만 주야장천 올라오는 경우도 있기에 아니다 싶으면 나오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질 좋고 다양한 책이 올리오는 독서모임은 구하는 것이 보기보다 어렵다.
그렇게 계속 읽다 보면 어느덧 내만의 고유한 책 선정기준과 방식이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