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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과학을 읽었는가

현실에 선 두발

by Daniel J

과학이라는 단어는 독서에서도 특히나 생소한 부분이다. 책이라고 하면 바로 인문학적인 감성이 잔뜩 떠오르기 마련인데 너무나 이과적이기에 그런지 쉽게 독서와 연결되지 못하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마치 전공서적이나 교과서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다른 이미지는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나도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하고 엔지니어로 밥벌이를 하며 나름 책 좀 읽었다 싶어도 도서관을 가게 된다면 800번대 아니면 0~300번대의 책을 주로 빌렸지 400번대의 책을 언제 마지막으로 빌려보았는지 스스로 되묻게 되었다. 어떤 공학적인 지식이 필요할 때 책으로 보기보다 갈수록 인터넷으로 필요한 부분만 찾아보고 AI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을 안 읽어도 되며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기에 기억을 더듬어 가며 왜 읽었는지 찾아본다.


결국 내가 서 있는 곳은 현실이기에


최근 책 [떨림과 울림]을 보면서 나의 일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 세상은 떨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글을 보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떨림'은 물질과 에너지의 변화이며 '울림'은 그 변화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한다. 나의 프로필을 보신 분들이 라면 알겠지만 나는 레이저무기체계팀의 SW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다. 레이저(LASER)는 줄임말로 정식명칭은 복사 유도 방출에 의한 광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이다. 빛의 특정 떨림을 가지고 이를 에너지로 무기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레이저의 파장은 몇 mm인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떨림을 가졌는지에 따라서 무지막지하게 태워버리는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멀리 투과되는 통신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심지어 레이저로 무선 충전도 가능하다. 충전단자에 딱 붙고 선만 없는 그런 게 아니라 소스로부터 수 m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가능하다. 다만 아직은 발열이 너무 심하게 나고 효율이 떨어져 상용화하기에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한다. 나의 일에서 떨림은 레이저만이 아니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들어 있는 CPU는 처리속도를 표기할 때 Hz 그러니까 이것도 떨림으로 이야기한다. 내가 최근 사용한 임베디드 CPU는 100 Mhz의 떨림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CPU가 1초 동안 100만 번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고 이를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CPU가 1번의 동작을 수행할 때 걸리는 시간은 10 나노초가 된다. CPU가 몇 번의 동작을 수행하였는지 얼마나 빠른 떨림을 가졌는지를 가지고 연산에 몇 마이크로초가 걸렸는지 계산을 한다. 제어파트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는 요구성능을 만족하기 위해서 1초에 8천 번의 연산처리를 원하였다. 1번 계산을 완료할 때 걸리는 시간이 125 마이크로초안에 완성되어야 하는데 마이크로초도 아닌 수십나노초가 지연되어 전체 시스템이 실패할 때도 있었다. 내가 살피지 못하였을 뿐 일을 하는 데 있어 가르침을 주는 것을 보고 굉장히 전율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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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전에 쓴 글인 사이비과학을 다룬 글과 유사과학 범벅인 자기 계발서 <왓칭>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어떤 단단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과학이다. 경제를 읽으면서 나를 지킬 수 있었고 심리학을 통해서 스스로를 분석하고 돌보았다면 과학은 현실이라는 바닥에 딱 붙어 있게 도와주었다. 대충 좋게 들리는 그럴듯한 현혹 앞에서 그래서 그게 어떻게, 왜라는 이유를 묻게 되었고 호기심이 많은 한편으로는 깐깐하게 따지게 되는 공학자의 자세는 이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다른 분류의 서적에서는 나름 억지로라도 어떻게 읽었는지 이유를 찾아서 적어보았지만 과학에 대해서는 약간 민망하지만 어떻게 읽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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