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혈관과 나오지 않는 피

하루 물 2리터의 중요성?

by 김하늬

유전적으로 혈관이 잘 안 보인다. 사는데 큰 지장은 없지만 피검사를 해야 할 때마다 내 팔을 마주한 간호사들은 표정이 어두워진다.

"혈관이 잘 안 보이네요..."


고무줄로 내 팔을 꽉 압박한 뒤 혈관이 올라올 수 있게 몇 번이나 톡톡 거린다. 그럼에도 내 혈관은 묵묵부답이다. 간호사는 점점 표정이 어두워진다. 피는 뽑아야 하는데 혈관이 안보이니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특히 물을 많이 드셔야 할 것 같아요...."


어느 병원을 가도 똑같은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운동도 하지 않고 물도 많이 안 마셨기 때문에 바로 수긍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매일 운동을 하고 물도 2리터를 마시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혈관은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일단 피는 뽑아야 하니 그나마 약하게 보이는 혈관을 찔렀다.

"아이고... 터졌어요"

간호사도 미안했는지 작게 속삭인다. 나도 어차피 피를 뽑아야 끝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호사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제 혈관이 숨어서 그런 걸요."


다른 쪽 팔뚝으로 옮겨갔다. 옮겨진 팔에서도 혈관은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간호사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커리어에도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내 피를 뽑고 싶었겠지만 옮겨진 팔에서도 혈관은 꼭꼭 숨어있을 뿐이었다. 결국 손등으로 옮겨졌다. 손등은 살이 없어서 피 뽑을 때 더 아픈 부위이다. 팔보단 잘 보이는 곳이지만 여전히 손등에서도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혈관이었다. 이리저리 톡톡 쳐가면서 혈관을 찾았다. 아주 희미하게 뛰는 혈관에 바늘을 꼽는다. "아...." 약한 한숨소리가 들린다. 또 터졌다고 한다.


결국 수간호사가 달려온다. 두 간호사는 의학용어를 써가면서 대화를 한다. 그리고 수간호사는 손등에 포를 뜨듯 바늘을 꼽고 말을 한다.

"아마 좀 아플 거예요. 혈관이 너무 약해서 포를 뜨듯 바늘을 넣었어요."

그리고 몇 초가 흘렀는데 바늘은 여전히 내 손등에 꽂혀있다. 수간호사는 당황한 듯,

"물 많이 안 드세요? 피가 잘 안 나와요...."

힘들게 혈관을 찾아서 바늘을 꽂았는데 이번엔 피가 잘 안 나온다고 한다. 일단 혈관이 안 터졌기 때문에 피가 나오길 기다린다. 아주 천천히 피가 나온다. 주사기에 피를 꽉 채운 후 "아이고.. 환자님 고생하셨어요!" 하며 정리하는 도중 "환자님 죄송해요. 피를 덜 뽑았어요."


알고 보니 내 혈관이 약한 편이라서 다른 주사기를 썼는데 그 주사기는 작은 용량이었던 것이다. 결국 한 번 더 찔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도 지치고 간호사도 지쳐버렸다.

그래도 이번엔 한 번에 혈관을 찾았다. 하지만 이쪽에서도 피는 콸콸 나오지 않았다.

"환자님 제발 물 많이 드세요...."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는 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 물을 얼마나 더 마셔야 하나.... 3리터는 마셔야 피가 나오려나"

내 말을 들은 간호사들은 "제발 3리터는 드세요!! 이렇게 피 안 나오는 환자님 오랜만이에요"




피를 뽑으면서 반성을 했다. 이 병원을 나서는 순간 매일 3리터는 마셔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에 피를 뽑을 땐 혈관 찾는 건 다음 문제고 힘들게 꽂은 주삿바늘을 위해서라도 콸콸 쏟아지는 피를 만들어 놔야지.


아주 힘들게 피검사를 마치고 로비로 나와 바로 물을 마셨다. 한 자리에서 물을 500ml 정도 마셨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왜 내가 물을 자주 안 마셨지 생각해보니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물을 안 마셨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같이 추운 날에 특히 손끝, 발끝이 특히 시리다. 물을 덜 마셔서 내 피들이 손끝, 발끝까지 가지 못해서 더 추웠나? 생각해본다.


피검사를 하고 2일이 지났다. 아직은 매일 3리터를 마시고 있다. 화장실과 친해졌다. 신기하게 손끝, 발끝이 좀 덜 시리는 느낌이다. 이틀 동안 마신 물들이 손끝, 발끝까지 피를 운반해주고 있겠지?

피도 잘 나오고 손끝, 발끝이 좀 따뜻해진다면 화장실과 친해지는 것도 꽤 괜찮은 일 같다. 이제 글을 다 썼으니 물 한 잔 마시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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