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나에게 주는 응원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상황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면 피티를 끊은 일이다. 운동을 해야지 마음만 먹다가 평생 운동을 안 할 것 같아서 나름 거금을 들여 피티(퍼스널 트레이닝)를 끊었다. 물론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 걸 느꼈기 때문에 뭐라도 해야 했다. 두 명의 아이를 낳고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 먹지 않았던 날들이 쌓여 내 몸은 서서히 망가져가고 있었다. 쉽게 피로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약했던 허리가 주기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반년마다 도수 치료실을 찾았다. 실비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결국 의사 선생님도 코어 근육을 강조하시면서 운동을 권했다. 도수 치료실을 가는 간격이 좁혀져 올수록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될 상태라고 생각했다.
주기적으로 인바디를 했던 것도 한 몫했다. 인바디 점수는 늘 낮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근육 부족.
근육이 부족하다 보니 체중이 적게 나가도 비만으로 분류되었다. 쉽게 이야기하는 마른 비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날씬해 보이지만 속은 체지방 덩어리였다. 체지방 자리를 근육으로 변화시켜야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발로 헬스장을 찾았고 피티를 끊었다. 피티를 끊고 담당 선생님이 배정되기 전까지는 유산소 운동만 했다. 최소 40분 러닝머신을 탔다. 34년을 살면서 내 의지로 40분을 운동한 적은 거의 처음이었다. 러닝머신을 탈 때는 몸도 마음도 개운해졌다. 평소 생각이 많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다 보니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었다. 그 시간이 소중해져 헬스장 가는 길이 설레는 길로 변했다.
드디어 담당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스쿼트로 첫 번째 운동이 시작되었다. 10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온 다리가 후들거려서 과연 내가 10회는 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피티를 하러 가는 길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기대되기도 했다. 1개라도 더 해내는 나를 보면서 괜히 뿌듯했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피티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괴성이 나오고 선생님께 투덜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돈 주고 왜 이러는 거죠?"라며 장난스럽게 씩씩거렸다.
그렇게 10번의 피티가 끝났다. 스쿼트 10개도 못했던 내가 이젠 20번씩 3세트는 기본으로 한다. 버티기 스쿼트는 50초까지 해봤다. 워킹 런지도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도 안된 사이 나는 1.6kg 득근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늘 한계에 부딪혔다. 하기 싫다고 소리치고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징징거렸던 날들이 지나고 나니 득근과 함께 자존감까지 함께 올라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잠을 자고 나는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또 만들었다. 한동안 마음이 심란했다. 왜 또 일을 만들어서 괜한 두려움에 휩싸여야 하는지!
이렇게 일을 만드는 게 나다. 나는 이렇게 계속 변화하기를 원하고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이다. 성장에는 아픔이 동반한다. 아픈 시간을 견뎌내는 것도 내 몫이다.
잘 견뎌낼 수 있을 거야. 늘 잘 견뎌냈잖아. 그러니 이제 기분 좋게 자자. 내일이 오면 더 행복한 날들이 펼쳐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