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잘못이 아니야."
결혼 다음은 임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직, 결혼, 임신.
한 번도
왜?
어떻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만 25세.
어린 신랑과 어린 신부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만 27세.
어린 엄마, 아빠가 되었다.
임신테스트기 선명한 2줄을 보았다.
임신테스기를 사진 찍었다.
그리고 "복덩이"라고 적힌 아기수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모든 생각과 일들은 "복덩이"에게 집중되었다.
서점에 누워 있던 노란색 임신 출산 대백과 책을 샀다. 주차별로 증상이 적혀있고, 뱃속에 있는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설명이 되어 있었다.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쓰여 있었다.
책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확한 용어로 구체적이게 할 일을 써놓은 활자를 보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정답을 말하던 국민학생처럼, 책에 나온 그대로 살고 싶었다.
책의 시작은 임신 축하이야기다. 이어서 임산부 주의사항이 나왔다. 약물복용에 주의하라고 했다. 임신 중 섭취하면 안 되는 약물의 사진이 나왔고, 이름들이 보였다.
구충제 알벤다졸 임산부 금지 약물
임신 테스트기를 하기 직전에 먹었던 구충제가 떠올랐다.
구충제 한 알을 까서 꿀떡 넘기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그 장면이 스쳤다.
눈앞이 깜깜했다. 무서웠다.
복용했던 구충제의 정확한 이름을 떠올려, 다시 보았다.
약통에는 "임부와 생후 24개월 미만의 소아에게는 투여(복용) 하지 마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씌인 활자를 좋아한다.
그런데 약통에 쓰여 있던 중요한 이 글자는 읽지 못했고, 읽었다 하더라도 그냥 넘겼을 것이다.
내 잘못이다.
단 한 번도 약상자에 있는 설명서는 읽어본 적이 없다. 작은 약상자에 넣기 위해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힌 얇은 종이에 출력된 작은 책자를 폈다. 글자 크기가 아주 작았다. 곳곳에 두꺼운 글씨체도 나왔고 말 끝마다 "마십시오"라 끝났다.
"상담하십시오."라고 쓰여있기도 했다.
이렇게 지켜야 할 것이 많음에도 또다시 "주의사항"이라고 쓰여있다.
정말 주의해야 하는 것이 많은 알약 한 알을 나는 너무도 가볍게 털어 넣었다.
내 잘못이다.
인터넷 맘 카페에는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의 글이 있었다.
<어떡할까요?>라고 묻는 나와 똑같은 잘못을 한 예비 엄마의 질문에
"괜찮을 거예요."라고 쓴 글은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뭘 알고 "괜찮을 거예요."라는 근거 없는 글을 쓰는지, 답답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말해 보세요."라는 답글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한테 물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니, 짜증 났다.
"피부과 약 모르고 먹었다가, 유산됐어요."라고 씌인 답글을 읽고는 무서웠다. 내 약은 다르니 괜찮지 않을까 싶다가도 유산이라는 말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내 잘못이다.
이게 전부 다 내 잘못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움직인 글이 있었다.
"모르고 먹은 건 다 괜찮데요."
정말 출처를 알 수 없는 비과학적인 말 한마디에 그냥 "괜찮다" "괜찮다" 주문처럼 외우며, 복덩이 만날 날을 기다렸다.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날에는 알벤다졸이 떠올랐고, 다시 인터넷 창을 열었다.
강제로, 억지로 "괜찮다" "괜찮다"했다.
매일 다이어리에는 하루하루
"괜찮다." "괜찮을 거다." "괜찮아야 한다"가 써졌다.
신랑에게는 아이를 출산하는 날,
아이를 제일 먼저 보고,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로 건강한 아이야."라는 말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인 아이가 유일한 바램이었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인 아이는 이제 14살이다.
그 유일한 바램을 자꾸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