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 아니라 느낀 '엄마'가 찾은 곳
아파트 놀이터에서 고래고래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아들을 끌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도 끝나지 않는 아들의 크고 짜증 섞인 목소리는 나를 미치게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 들고 미친듯이 휘둘렀다. 벽을 향해 내리치고, 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더 크게 소리 치고, 훨씬 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아들의 목소리를 덮어버렸다. 아들은 이내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며 내 손을, 내 몸을 부여잡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더 어린 아들의 동생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뚝뚝 눈물만 흘렸다. 들고 있던 것을 들고 씩씩 거리며, 세탁실로 가서 더 세게 내리쳤다. 결국 들고 있던 플라스틱 밀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철로 만들어진 손잡이 부분을 잡고 있던 손은 팅팅 부어있었고, 거뭇거뭇 멍이 나있었다. 더 이상 휘두를 수도, 내리칠 수도 없는 밀대를 보았다.
'나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왔고, 아무 말도 없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흐느껴 울며 말했다.
"엄마, 가지마."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도망 나오듯이 집을 나왔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앞만 보며 걸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쓰레기장을 지나, 허겁지겁 아파트 정문까지 나왔다. 누가 볼까, 아는 사람을 만날까 도망치듯 나왔다. 저녁식사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라 돌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 보았다. 어디를 가야할 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날이 떠올랐다.
아이가 4살, 38개월, 경주 여행 중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징징거리는 아이를 보며, TV도 틀어주고, 온갖 이야기를 하며, 달래 줬다.
돌이 채 되지 않았던 동생도 결국 아이의 큰 목소리에 일찍 일어나 버렸다. 몸은 한 없이 늘어지고, 기운이 없고, 짜증이 났다. 고래고래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 비스므리한 말을 뱉어내며,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내 목소리만 우리방 전체를 채웠고, 호텔 가득 울리는 것 같았다.
잔뜩 인상을 쓴 아이의 아빠의 얼굴과 또 찡그리고 구겨진 내 얼굴만 눈에 들어왔다.
'왜 이 지경까지 왔을까' 자책하며, 갈 곳 없어 느려진 속도로 지하철 역 쪽으로 걸어갔다. 매번 다니던 길이지만, 낯설어 보이는 자리에 섰다.
낡고 오래된 건물에 적힌 <심리 상담 센터> 간판.
그리고 주위를 보니, 그곳 말고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다른 심리상담센터 두 서너곳이 눈에 들어왔다.
낡고, 어두운, 어쩌면 문이 잠겨 있을 것도 같은 건물로 들어갔다. 어둡고 칙칙한 느낌의 1층을 지나, 2층에 자리한 심리상담센터는 문이 열려 있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조용한 내부, 센터를 정리하던 분이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렇게 예약도 없이 불쑥 찾아간 센터에서
나는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실 입구 문을 열면 신발장이 바로 있고, 바로 이어진 응접실에 소파가 놓여 있다. 그리고 짧은 복도가 시작 되는 지점에 위치한 방에서 아이는 놀이치료를 시작했다. 40분 놀이치료를 마치면, 10분 동안 놀이치료 선생님은 나에게 어떻게 수업을 했고, 아이는 어떤 말이나 행동을 했는지 이야기 했다.
내 상담은 제일 마지막 타임인 8시나 9시에 시작했다. 짧은 복도 끝 정면으로 보이는 방이었고,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다른 쪽 테이블에는 가위질하거나 찢겨진 잡지책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색연필 사인펜이 가득 꽂힌 통이 가운데 있었다. 하얀 색 벽에는 잡지책에서 오려낸 사진들이 붙어진 미술 작품이라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A4 용지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깨끗하고, 긴 테이블 끝에 원장님이 앉아 계셨다. 마주보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얼른 가리키는 곳에 앉아서, 주위를 살피며, 이어서 이야기 해주길 바랐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없었고, 주변은 고요했다.
“여기서 수업하시나 봐요?”
어색한 침묵이 너무 불편해 물었다.
“네, 보통 저는 여기서 내담자를 만나요. 지난주 처음 뵙고, 한주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금 마음은 어떠세요?”
나는 아이의 문제로 왔는데, 첫 시간부터 질문에 아이는 없었다.
나에 대한 것만 물었다.
그것도 자꾸 내 기분을 묻고, 내 마음을 물었다.
“네, 바쁘고 정신없었어요. 다행히 아이는 짜증을 많이 피우지 않았어요.”
그러면 나는 그 질문에 아이를 넣어 대답했다.
“사람들이 상담실에 직접 찾아오는 것을 많이 힘들어해요. 그런데 어떻게 개인상담을 하기로 마음 먹으셨나요?”
역시나 마음이 들어가는 질문이었다.
“제가 상담에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입구에 붙어 있는 상담 세미나 이런 것도 가보고 싶기도 하단 생각을 했어요. 오늘 첫 시간인데 뭘 할지 너무 궁금해요.”
"네."
내 말에 비해 짧게 대답한 원장님은 앞으로 상담은 이곳에서 50분간 진행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A4용지에 만다라 무늬가 인쇄된 여러 장의 종이를 내밀며, 마음에 드는 것 한 장을 골라 색칠을 해보라고 했다.
“잘 색칠하고, 못 색칠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고 싶은 대로 색칠하면 돼요.”
나는 검정 싸인펜을 골라 테두리를 굵고 진하게 색칠했다. 색칠해야 할 공간에 흰 부분이 조금도 보이지 않게 진한 검정색을 꽉 눌러 꼼꼼하게 메꾸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색깔의 색연필을 골라, 역시나 테두리 선에서 조금이라도 나가는 선이 없게 꽉 눌러 꼼꼼하게 색칠했다. 어떤 이야기도 없이 방안에는 내가 색연필, 사인펜을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만다라 색칠하는 것으로 1회기를 다 쓴다고 생각하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다라 색칠하기 학습지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거고, 괜히 유별나게 상담을 시작했나 싶기도 했다. 계속 이렇게 말없이 색칠하는 거면, 이번 달만 하고 그만 해야지 싶었다.
"다 했어요.“
“네. 색칠해보니 어떠셨어요?”
이번에도 질문에 아이가 없었다. 상담은 회기 당 50분이라 했는데, 색칠하느라 절반의 시간을 다 써버리고도 색칠에 대한 질문이라니, 답답하고, 계속 이렇게 수업하는지가 궁금했지만, 나는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거, 색칠하는 거 정말 싫어해요. 못한다고 생각해서 부끄럽거든요. 근데 막상 해보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나의 대답이 영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적당하게 대답했다 생각했다.
내가 제일 먼저 검정색 싸인펜으로 칠한 검정색 테두리를 가리키며, 드디어 원장님은 말하기 시작했다.
“경계심이 높고 강한 모습이에요. 틈도 허용되지 않고,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에 경계가 많아요. 첫 시간에 내담자에게 기분을 묻는 질문에 내담자는 내담자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을 배우러 왔다고 이야기 하는 것 처럼요. 온전히 1주일에 한번 지금 이 50분은 스스로의 모습에 집중하기 바래요.”
내가 예상한 대답도 아니었고, 오은영 선생님이 TV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코칭도 아니었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가버리면, 그나마 들은 말들이 기억이 하나도 안날 것 같았다. 몇 가지 놓쳐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낱말은 써두어야 할 것 같았다.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 있나요?”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물었다.
“말 하신 거 잊어버릴까봐 걱정돼서 그러는데요. 휴대폰 꺼내서 좀 적으면서 들어도 될까요?”
경계라는 말을 꼭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담자라는 말도 아리쏭했다.
“네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돼요. 내가 말한 거 다 잊어버려도 괜찮지만, 꼭 기억하시고 싶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나는 얼른 잊어버릴까 휴대폰을 꺼냈다. “잊어버려도 괜찮다.”는 말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곧바로 “경계, 내담자”라는 말을 입력 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6개월 동안 나는 개인 상담을 받았다. 잡지책에 있는 사진을 오려서 나를 위한 방을 꾸미는 미술 활동 외에는 다른 미술활동은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며 나는 온전히 내가 되어서 상담실에 갈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나에게 유서를 쓰는 활동을 했다. 쓰고 나서 유서를 직접 읽으라 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삼십 평생 가진 내 이름인데 너무 낯설었다.
살면서 한 번도 내가 내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니 이름 한번을 불러준 적이 없고, 니 얼굴 한번 제대로 봐 준적이 없네.
정말 미안해.
네 아들, 딸은 신랑이 잘 돌봐줄 거야.
편하게 가.
그동안 애썼어.”
낱말 하나하나도 소리내어 읽지 못할 정도로 꺼이꺼이 우느라 머리가 아파왔다. 끝까지 겨우 읽고 나서
그제야 내 안에 있는 12살 짜리 아이가 보였다. 국민 학교 5학년 교실 맨 앞자리에서 더 이상 손을 들지 않던 조용히 살기로 다짐했던 어린 아이가 보였다. 바쁜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힘들고 외로운 엄마인데, 나까지 힘들어 하면, 엄마가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세상의 짐을 다 들고 있는 외로운 어린 아이를 만났다.
조금 더 상담을 이어가길 바랐지만, 복직과 이사 문제도 있어,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마지막 시간이었다.
“엄청난 자원이에요.
그동안 자신이 가진 것을 보기 보다는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애쓰면서 살았어요.
이제는 조금씩 연습하면서 자신의 자원을 찾을 수 있게 될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 잘 자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자원”이라는 말도 잊지 않기로 했다.
그 후로 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무료 상담을 알게 되었고, 이사를 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정건강센터” 상담실로 갔다.
역시나 아이와의 문제로 온 나에게 상담사는 내가 문제를 아이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로 볼 수 있게 해주었고, 어느 날은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싶다가 움직이지 않고 안겨진 내 몸, 내 가슴 왼쪽 안에 있는 심장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 가슴 오른쪽에는 상담사의 심장소리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것이 따뜻함이구나 배웠다.
아들은 떼를 쓰고, 악을 쓰다가도 항상 마지막은 “엄마 사랑해.”였다. 그리고는 “엄마 안아줘.” 였다. 그러면 나는 짜증이 나서 손을 뿌리치고, 내방으로 달려가기 바빴다.
‘이렇게 안아주는 거구나.’
# 지자체 무료 개인 상담 및 가족상담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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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
상담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사고, 행동, 정서를 변화시켜, 내담자의 문제 해결을 조력하고, 내담자의 성장 발달을 촉진하는 활동 (상담자가 대신 해결책을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코칭과는 다르다.)
상담의 방법으로는 대면 상담, 매체 활용 상담(문자 상담, 전화 상담, 이메일 상담)이 있다.
내담자의 유형에 따라 개인 상담, 가족 상담, 집단 상담으로 나눌 수 있다.
# 상담 과정
내담자가 가지고 온 문제를 이해하고, 평가한 후에 구체적인 상담목표를 세우고 구체적 개입을 시작하는 단계인 정보 수집 초기 단계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수립한 상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기 문제 해결 단계
중기 단계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좀 더 현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행동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종결단계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