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래서 어쩔 건데?'
퇴근이 가까워 오는 시간, 스마트 폰 알람이 울린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학교 알림장 확인 알람이다.
존경하는 인물의 사진을 준비하라는 내용이 있다. 괜히 내가 바빠진다.
존경하는 인물이라면, 위인전집에 나오는 인물이 자동으로 떠올랐고, 그중에 누가 좋을까 고민한다.
솔직히, 이순신, 세종대왕 정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연예인, 선생님, 부모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시나 부모님, 선생님일 경우 사진을 어떻게 준비할까 설레발치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각 분야의 전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은 아이에게 물어보자 싶어 퇴근하자마자 아이의 얼굴에 대고, 물었다.
"존경하는 인물 사진 준비해 가야 하던데, 넌 누구하고 싶어?"
아이는 재빨리 대답했다.
"김광석"
많이 놀랐다.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왜 김광석을 존경하는지 궁금한 건 훨씬 나중이었다.
황당한 표정, 어색한 침묵.
그냥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10년 가까이 교직에 있으면서, 단 한 명도 존경하는 인물이 김광석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는 없었다.
오히려 가르치던 학생이 "김광석"이라고 대답했다면, 금방 그 아이에게 존경하는 이유를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대답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 뱃속에서 나온 아들의 입에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의외의 인물이 나오자 나는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이의 생각이 정답일지 아닐지 고민하는 나는 선생님의 질문에 교사용 지도서에 나오는 답을 하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의 모든 질문에는 정답이 있기 때문에, 항상 정답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여나 내 생각이 조금이라도 틀리다면, 얼른 숨기고, 다른 친구들과 엇비슷한 대답으로 바꾸어 말하거나 조용히 듣고만 있는 학생이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말할 차례가 되면, 조용히, 무난하게, 흐름대로 넘어가길 바라는 학생.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이 "왜 그렇게 생각해?"라는 추가 질문을 하거나 또는 대답을 듣는 표정이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으면, 불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대답을 얼른 찾아서 바르게 말해야 한다 생각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아이의 아빠에게 김광석을 존경하는 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신랑은 혹시 존경하는 인물이면 무조건 세종대왕, 이순신을 말해야 하냐고 물었다.
유재석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혹시 지금까지 가르친 학생들 중에 존경하는 인물이 김광석이었던 학생이 있었는지 물었고, "없었다."는 대답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존경하는 인물에 김광석이 안 되는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결국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김광석 사진을 아이에게 건넸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아들은 머리를 기르고 싶다고 했다.
짧은 머리가 싫다고 했다.
이 부분은 전혀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무작정 미용실 예약을 하고, 아이를 끌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많이 자르지 마시고요, 조금만 잘라주세요."
이 말을 미용사에게 들리는 목소리 크기로, 아들을 보며 아들에게 말했다.
조금만 자르니까 괜찮겠지 혼자 생각했다.
미용사는 나에게 "앞머리는 이 정도로 자르고, 뒷머리는 요기까지 자르겠습니다."
손으로 대충의 길을 대며, 친절하게 말했다.
나는 흔쾌히 "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아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씩씩댔다.
싫다는 말도 들렸고, 경찰서라는 말도 들렸다.
어느새 쉰 목소리로 바뀐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들 앞에서 미용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잠시 멈춤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리만 바쁘고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아들은 더 분노했고, 흥분했다.
그 모습을 보다 미용사 분은 아들에게 볓 분전 나에게 물었던 비슷한 말을 아이에게 다시 했다.
"앞머리는 이 정도로 자르면 될까?"
아들은 손가락을 눈썹 아래까지 내리고는 여기까지 잘라달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귀 옆은 자르지 말아 주세요."라고 덧붙였고, 뒤쪽 머리도 많이 자르지 말라고 했다.
머리를 다 자르고, 샴푸 하러 간 사이 미용사 분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아이 이마가 긴 편이라 앞머리를 많이 자르고 싶지 않았나 봐요. 그리고 귀 옆 구레나룻도 요즘은 많이 안 파고, 자연스럽게 두길 원해요. 아이가 정확하게 자기 스타일을 알고 있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대답하고, 황급히 나와 버렸다.
아들은 집에 가는 길에 슬쩍슬쩍 내 눈치를 보며, 머리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 후로 아들은 머리를 길렀다.
초등학교 2학년 중반쯤에는 머리를 묶고 다니고 싶다고 했고,
어느새 아들은 중단발 정도까지 길렀다.
어느 날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동료가 함께 걷고 있던 아들을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둘째 딸인가 봐?"
어색하게 웃었고, 아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행지 온천 입구에서
"남자 대인, 소인 1장씩, 여자 대인, 소인 1장씩 주세요."를 말하는 내게 접수원은
소인 여자 2장의 티켓을 건넸다.
소인 여자 1장 티켓을 돌려주고 다시 남아 티켓으로 교환해 달라고 말하는 와중에도 접수원은 아들과 딸을 아래위로 계속 훑어보았다.
나는 아들을 가리키며, "이 아이가 남자아이예요."라고 대답했다.
꼭 여자 아이 같다고 말하며, 그제야 남아 티켓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런 소동을 함께 겪던 날들이 쌓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불쑥 아들이 말했다.
"이제 머리 자르러 갈까?"
그렇게 아이는 머리를 묶어 보지 못하고, 머리를 잘랐다.
엄마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아이라고 덧붙일 귀찮은 상황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테니 다행이었다.
여느 남자 아이 같아 보일테니 다행이었다.
무난하고 보통 아이를 키우는 보통 엄마처럼 보일테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