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화났어?"
“엄마, 화났어?”
아이의 이 말을 듣고 나면, 정말 화가 났다.
이미 일이 벌어지기 전에, 엄마는 이런 일이 일어질 것을 대비하여, 사전에 주의, 경고를 주었다.
"천천히 해."
"뛰지 마."
그렇게 말했는데도, 이렇게 정신없이 나대다가 움직이다가
결국 귀찮고, 성가신 일을 만드니, 화가 안 날 수가 있겠냐 말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화내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순간 욱하며 나는 화는 감추고 숨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대로 둬버리면, 쌓이고 쌓여, 너무 강한 감정으로 폭발하기에 결국에는 서로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이렇게 반복되다가는 문제 행동 뒤에 눈치만 보는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마음, 엄마 대답이 바뀌어야 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어떤 말을 해도, 엄마가 진심으로 그 말을 전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오히려 엄마를 거짓말하는 엄마로 생각할 것 같았다.
108배 절, 명상, 상담을 하면서 순간 화가 나는 일들이 줄어들었다. (없어지진 않았다.)
육아서에서 시키는 말 그대로 따라 하는 대신에 정말 내 말을 하려고 했다. (바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어.”
“아들, 그럴 수 있어. 엄마도 물건 깨트린 적 많아. 얼른 치우자. 같이 치워줄 수 있어?”
아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평소 목소리 크기대로, 평소 빠르기 대로 끝까지 말했다.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말했다. 나는 아주 진지하게 말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에는 눈에 힘을 팍 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 치우고 나서,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지금은 엄마 화 안 났어. 근데 아까 네가 엄마 화났냐고 물었을 때는 화가 났었어. 네가 다쳤을 까봐 걱정이 많이 됐거든.
사실, 저 말 한마디를 하기까지 읽은 책, 강의, 대학원 수업, 개인 상담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아이는 정말 빨리 그리고 쉽게,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바뀌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자기 입으로 말했다.
“내가 똑바로 안쳐다 보고, 미끄러운 손으로 만지다가 그렇게 된 거야. 앞으로 그렇게 안 할게. 엄마. 같이 치워주고, 도와줘서 고마워.”
그 후로 아이는 동생이 비슷한 실수를 했을 때, 화를 내는 대신에 말한다.
“동생,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우리 집에서 “그럴 수 있어.”는 뭐든 잘하고 싶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 우리 가족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매직워드다.
사실 “그럴 수 있다”는 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허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까칠, 예민한, 눈치 잘 보는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 보통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한없이 내가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문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다른 사람을 살피기 전에,
먼저 문제 상황에 있는 우리를 보기로 했다.
내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 거다.
내가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거다.
내가 기쁘면, 기쁜 거다.
엄마도 화낼 수 있다.
건강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본인의 건강진단 체크리스트가 등장한다. 그 많은 항목들은 사실 일상적인 상황에서 충분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소화가 안 되는 날이 많다.
-어깨가 뻐근하고 충혈된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등등의 항목들에서 한 항목만 해당이 되어도, 이미 나는 환자였다.
목만 따끔거려도 코로나 아닌가, 코로나면 어떻게 되는가? 아이는 학교에 모두 못 가게 되고, 우리 가족들도 연달아 확진이 될 거고. 직장은 또 어떡하나? 지금 치료받기도 힘들다는데 어떡하나! 끝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그냥 그 순간 일어나는 생각을 끊는 거다.
“그럴 수 있다.” 매직워드로 말이다.
목 아프다고? 아플 수 있지.
코로나 걸리면 어쩌냐고? 걸릴 수 있지.
어쩌겠어.
예민하고, 까칠하거나 내성적인 사람의 특성에 항상 등장하는 말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이 있다.
알아보면 부담스럽고 몰라보면 서러워한다.
누가 보고 있는 것 같거나 욕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몹시 불편하다.
남에게 먼저 권할 수도 없고 타인의 권유를 거절할 수도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만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낀다.
주위 사람들의 감정에 너무 쉽게 좌우된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갈 수가 없다.
스스로의 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또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몰라서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
“그럴 수 있다.”
그냥 나 스스로가 내성적인 사람이기에 그렇고, 이것들은 결함도 문제도 아니고, 그냥 그런 거다.
“그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