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없는 여행을 계획하다
가장 가벼운 여행은 백패킹 배낭, 출발 티켓 한 장이다.
가볍게 조금씩 덜어내다 보면, 언젠가 출발 티켓 한 장으로도 충분한 여행이 될 수 있을까?
7박 8일. 왕복 비행기 티켓과 숙박.
사실 이 정도면, 다 되었다.
먹고 자는 생존을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경험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꼭 반드시 가야 할 곳, 아이와 체험할 거리, 이것만은먹어야 한다는 정보의 홍수 속에 설렘과 기대감으로 시작한 클릭은 곧 피로감으로 끝났다.
완전 계획형 인간인 나와 신랑은 준비, 계획 없이도 괜찮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험해 보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냐짱 공항에 도착했다.
"누가 나와있어?"
오늘도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들이 물었다.
이전에는 공항을 나오자마자 앞만 보며 직진했다.
걸음이 빨라졌고, 시간도 덩달아 바삐 갔다.
얼른 픽업차를 타야 하거나, 해가 지기 전에 교통편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느린 걸음으로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며, "밥 먹고 갈까?" 하는 물음도 여유롭게 던졌다.
만장일치로 결정된 곳은 공항 안 "버거킹"
한국어가 군데군데 보였고, 향료나 이색적인 재료에 덜 예민해도 되는 만만한 음식 햄버거로 결정했다.
사실 나야 아이들 세트메뉴로 시킨 프렌치프라이 5개 정도면 충분하다. 근처에서 산 맥주 한 캔만도 충분했다.
음식 주문 후,
공항 앞 버스 티켓 파는 곳에 들렀다.
지금 출발, 그리고 1시간 30분 뒤 출발.
어쩌면, 이미 주문한 햄버거를 테이크 아웃으로 바꾸거나 급하게 욱여놓고 허겁지겁 버스를 탈 수도 있겠지만, 할 것 없는 여행이니 억지로 무리할 필요 없지 않은가.
타인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면 머지않아 다를 바 없이 비슷하게 행동하는 내 모습도 쉽게 감지된다.
비 오는 날 저녁, 고속도로를 타고, 시골에 있는 친정 집에 갈 때였다.
거의 매일 40-50분가량 되는 고속도로 길을 출퇴근하며, 속도 감시 카메라, 차량이 많아지는 구간, 안개가 자주 끼는 구간등을 훤하게 꿰고 있던 운전대를 잡은 아빠는 빗줄기 사이를 요리 저리 빠지며, 매끄러운 고속도로 길을 빠르게 달렸다.
순간 움찔한 나는 보조석 옆 천장에 달려 있는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좀 빠른 것 같아. 아니 많이 빨라. 급한 일 있어?"
"아니. 집에 빨리 가야지."
"응? 집에 가서, 해야 할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퇴근 후 43분 지하철을 타야 했다.
매일 43분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생각이 그냥 어떤 이유나 목적 없이 생겼다.
여유 있게 나서는 날도, 갑자기 물건을 두고 왔거나 도중에 동료를 만나 잠깐 이야기라도 하는 날에는 더 자주, 더 빨리 몸을 움직여야 했고, 빨라지다 결국 다다다다 달려서 지하철을 타면,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43분 지하철에 내 몸을 싣지 못하면 그렇게 아쉬울 일은 또 뭔가.
쪼들리는 일상 틈에 숨통같이 놓인 휴가.
다른 시간과 장소에 놓인 우리가
장면과 순간을 낯설게 보고, 들으며, 또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이것이 쉼이고 휴가가 아닐까?
그렇게 간절히 빠르게 도착한 집에 가서 하는 쉼, 휴식은 휴대폰이다.
이 정도 쯤이야 널브러져 있어도 충분하지 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킨 그 시간만은 뭘 해야지 하는 목적이나 의도 없이, 의식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도 물 흐르듯이 시간을 썼다.
자동 재생된 동영상, 포털 사이트에서 만난 글과 사진을 보며 쉰다고 생각했는데, 이 행위도 결국은 진정한 휴식은 아니다.
할 일 없이 이곳저곳 살피고 클릭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은 재미있는 콘텐츠, 도움 되는 정보를 찾는 것이니 어쩌면 다른 종류의 일 일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