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틈
평면 위에 중심선을 긋는다. 건물의 가이드라인이 생기고, 기둥과 벽체가 세워진다. 주방, 거실, 욕실이 나뉘고 전기실, 기계실, 덕트가 설치된다. 전시실과 수장고, 기념품 숍은 전시 공간을 이루고,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층을 연결한다. 회의실과 강당은 이야기를 나눌 장소가 되며, 도로와 광장, 공원은 도시에 여백을 만든다.
공간을 구획한 뒤 프로그램의 라이브러리를 연다. 창문과 문 소스를 벽체 사이에 끼워 넣고, 가구 소스를 각 실에 맞게 배치한다. 공원에는 나무 소스를 심고, 광장 바닥에는 패턴을 입힌다.
그렇게 가상 위에 집이 세워지고, 미술관이 완성되며, 도시가 태어난다. 벽돌을 쌓거나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지 않아도 된다. 가구를 들어 옮기거나 흙을 파서 나무를 심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가상의 공간 속에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복사하고, 잘라내고, 붙여 넣으며 채운다. 지우고, 그룹으로 묶었다가 다시 풀며, 되돌리고 되살린다. 프로그램의 명령어에 따라 복제하고 수정하고 저장하는 일은 너무도 간단하다. 쓰고 보니 SF 소설 속 장면 같지만, 프로그램은 애초에 효율성을 전제로 하므로 당연한 방식이다. 손으로 작업하던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효율성이 모니터 속, 가상의 공간에 존재한다. 프로그램마다 기능과 목표는 다르지만, 결국 손작업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모두 ‘스마트’하다.
그곳에서 우리는 현실의 공간을 가정하며 집을 짓고, 도서관을 설계하며, 광장의 경계를 정하고 바닥에 패턴을 새긴다. 실제 도시 속에서 장소와 건축, 풍경으로 구현되기까지의 여정은 멀고도 멀다.
그렇게 디자이너들은
가상의 세계를 짓고, 또 허문다.
우주 속 떠돌이 별처럼,
궤도를 그리며 중심 주위를 도는
파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하늘에는 이름 모를 별들이 가득하다.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방랑자들.
파일들은 소리 없이 허공을 부유한다.
*.dwg, *.jpg, *.pdf, *.psd, *.xls, *.gif, *.ppt…
각자의 오리진을 등에 붙인 채
가상 세계 속을 둥둥 떠다닌다.
빛나지도, 사라지지도 못한 나를
누가 찾아줄까.
깊은 폴더, 압축된 기억 속에 숨어
누군가의 클릭을 기다리는 작은 별들.
깜빡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린다.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한 무수한 계획들. 가상 세계 속에서 나이를 먹거나, 혹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누구에게나 실현되지 못한 기획안과 디자인이 책상 깊숙이, 외장하드와 오래된 폴더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정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그렇게 쌓이다 보면 마음속 길도 막힌 듯 답답해진다.
표류 중인 파일들을 모아 무게를 잰다면 얼마나 될까. 우리와는 다른 개념일 테지만, 그 크기는 예상을 훌쩍 넘어설지도 모른다. 최종 파일과 몇몇 주요 과정 파일, 참고 자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워도 될까. 아니다, 아직 아니다. 그 가운데 다시 가능성 있는 자료를 추려내야 한다. 선택받지 못한 파일들은 먼지가 뽀얗게 앉은 화석이 되었거나, 존재가 희미해져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파일들은 출발점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다. 종류와 이름만 보아도 어떤 프로젝트에서 파생되었는지, 어떤 프로그램으로 작업되었는지 정체성을 알 수 있다. 그들 역시 목표와 개성을 지니고, 당당히 이름을 부여받아 태어났을 것이다.
컴퓨터 속 오래된 파일들을 열 때마다 ‘보고서의 시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나를 훑어보며 스스로 묻는다. “무엇을 위한 보고서였지?” 아주 조금의 차이만 있을 뿐, 보고서의 내용은 반복된다. 무슨 생각으로 만들게 했을까, 수많은 의심 속으로 빠져든다.
때로는 몇 차례의 보고용 파일이 순서대로 줄지어 있기도 한다. 파일 이름 뒤에 붙은 -1, -2 숫자는 시간이 지나면 차이를 알 수 없게 된다. 정리됐어야 할 것들이 무의미하게 쌓여간다.
그렇게 갈 곳을 잃은 파일들의 세계 속에서, 당신은 어쩌지 못한 채 불어나는 몸집을 눈뜨고 바라만 본다. 선택받지 못한 파일과 보고서들이 의지만 있었더라면 언제든 들고일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당신은 그 의지를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현실 세계를 넘어, 이곳에서도 미니멀 라이프가 필요하다니. 그 밑바닥에는 사람들의 권위적 태도와 비효율, 욕심, 게으름이 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보고서는 계속 만들어진다. 파일들은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끝없이 태어난다.
가상공간에서 작업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진다. 그것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알 수 없는 에러가 치명적인 오류를 남기며 프로그램이 갑자기 종료되는, 안타까운 상황. 그것도 정신이 몽롱한 새벽에. 수습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런 사고는 순식간에 상황을 끝낸다. 몇 번의 클릭이 꼬이고 꼬여 그렇게 되고 만다. 메시지는 ‘원인불명’. 이미 겪어본 일인데도 오류의 함정은 왜 이렇게 쉽게 반복되는 걸까. 보이스 피싱도, 스팸도 잘 걸러내면서 이런 사소한 오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순간 머리가 하얘진다. 하필 집중해서 작업한 10분간이 한순간에 날아간다. 젠장, 그냥 자자. 그대로 눕는다.
컴퓨터 작업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손만 자동으로 움직일 때가 있다. 특히 식곤증이 몰려올 때나 새벽에. 그럴 때면 작업의 효율과 창의성에 대해 의문이 든다. 명령어와 단축키로 효율을 높이며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딘가 붕 떠 있는 상태가 된다. 모니터 속 세계도, 현실의 세계도 아닌 어딘가에서.
쉽게 만들어지는 가상 공간의 작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사라진다. 머리가 멈춘 좀비 같은 상태로 밤을 지새우는 디자이너들은 이 비효율적 리듬을 떨쳐내지 못한다. 마치 숙명인 듯. 그러나 그럴 리 없다. 늘 그렇듯, 다른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이며, 건강한.
무언가 풀리지 않고 제자리를 맴돈다면, 컴퓨터에서 나와 종이 위로 필드를 바꿀 필요가 있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세상이 전환된다. 그 변화는 감각을 바꾼다.
가상공간에서는 마우스나 디지털 펜으로 형태를 만든다. 현실의 공간, 즉 종이 위에서는 펜과 손이라는 훨씬 유용하고 섬세한 도구가 있다. 사람의 손만큼 정밀하고 직관적인 도구는 없다. 생각과 거의 일체화된 속도로 움직이며, 선을 반복해 그어가며 가장 이상적인 선을 만든다. 흔적들이 겹쳐지고 쌓이며, 문득 궁극의 순간이 도래한다.
글을 쓸 때도 같다. 단어 위에 줄을 긋고 다른 단어를 고를 때가 있다. 그 단어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남아 있다가, 문장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의외로 꼭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처음 선택받지 못했을 뿐, 좋은 문장으로 가는 마지막 퍼즐로서 잠재력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의 작업과 종이 위에서의 작업은 경험의 결이 다르다. 어떤 때는 가상에서, 또 어떤 때는 종이 위에서 작업이 더 잘 풀린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연성과 감각이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제 현실로 나오고 언제 다시 가상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잡는 일이다. 이 감각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기에, 시행착오 속에서만 익힐 수 있다.
디자이너들은
그렇게 매일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그 세계가 눈앞에 구현되길 꿈꾼다.
우리가 상상한 가상의 세계는, 때로 현실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손으로 쌓은 벽돌과 땅에 심은 나무가 사라지고, 시간이 모든 것을 잊어버려도,
그 안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와 형태, 가능성은 흔적처럼 남는다.
종이 위에 남거나, 컴퓨터 안 파일로 저장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가상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보다 긴 호흡으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