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시간 위를 걷다

여섯 번째 틈

by 귀리


입는 집, 걷는 집

옷은 하나의 집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어울리는 집을 몸에 걸친다.

어떤 날은 따뜻하고 포근한 집을, 어떤 날은 단단한 집을, 또 어떤 날은 바람처럼 가벼운 집을 입는다. 옷은 우리의 감정을 담아내는 안식처, 세상에 무언의 말을 표현하는 무대다.

오늘 하루를 위한 집 하나를 몸에 걸치고, 도시라는 거대한 풍경 속으로 유영하듯 걸어 들어간다.

우리를 둘러싼 더 크고 낯선 도시의 집들. 사무실, 백화점, 카페, 병원…

그 안에서 우리는 익숙한 자신을 잠시 벗고, 낯선 감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가장 익숙한 집으로 돌아온다.

정착과 이동 사이, 무의식적인 유목의 리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모두 신유목민일지 모른다.



노마드의 리듬 속에서

#도시의_시차_위를_걷는_사람들

2021년 5월 27일 오후 6시.

파리에 사는 A 씨는 이미 7시간 전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쯤이면 꿈을 꾸고 있을 시간이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도로 위를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고요함을 방해하고 있지만, 숙면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그곳의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지만, 이곳의 오후 6시는 이제 막 도착했다.

낮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해가 주방 깊숙이 빛을 들이밀고 있다. 기분 좋은 계절이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준비하며 주방은 소리와 냄새로 가득 찬다. 물소리, 도마 위 칼질 소리, 채소 볶는 소리, 파스타 삶는 냄새, 토마토 익어가는 냄새. 기분 좋은 저녁이 될 수밖에 없는 일상의 암호들.

7시간의 거리. 먼저 달려간 그곳 파리의 시간과, 조금 늦게 뒤따라오는 이곳 서울의 시간.
그리고 어딘가, 이곳보다 더 느리게 흐르는 또 다른 시간이 있다. 9시간 느린 보스턴, 12시간 느린 뉴욕. 도시들은 쫓고 쫓기고, 서로를 향해 릴레이처럼 시간대를 넘나든다.

지구의 축을 따라 한 바퀴 돌면, 어느덧 다음 날. 스물네 개의 시간대는 차례로 아침을 맞고, 점심과 저녁 그리고 밤을 지난다. 가까운 도시 간의 2~3시간 차이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지구 반대편 도시들의 12시간 차이는 시차의 존재를 체감하게 한다.

이곳과 반대편. 안개 자욱한 새벽 공기를 깨고, 태양이 또 다른 도시 위로 아침을 데려오고 있다.

정밀하게 짜인 듯한 시차의 리듬은, 그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묘한 신비로움을 준다. 여행 중, 비행기에서 경험하는 시공간의 혼돈은 매번 낯설게 다가온다. 우리는 대체로 '이곳'과 '저곳', 그리고 '그곳'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릴레이를 깨고 세계를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노마드의 영혼을 지닌 사람들.

그들은 시간의 구획에 구애받지 않는다. 편의상 나눠둔 스물네 개의 시간대는 그들에게 무의미하다. 모든 도시는 고유한 시간대를 지닌 생명처럼 다가오고, 국경은 하나의 절차일 뿐이다. 그들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벗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게 살아간다.


여기, 신유목민 B 씨의 하루가 시작된다.

최소한의 짐을 챙기고 가볍게 이륙하고, 이내 착륙한다. 인천과 파리 사이 8,922km, 14시간의 비행. B 씨에게 이 시간은 브런치, 영화 한 편, 낮잠, 저녁으로 이루어진 주말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특별한 경험도 반복되면 일상이 된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와 날씨를 직접 확인한다. 태풍의 전조가 도시 곳곳을 어정거리고 있다. 공항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메일을 확인하고, 서류를 처리한다. 예약한 전시를 보고, 비건 레스토랑에서 미팅을 한다.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서점에 들러 스케치북을 고른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도시 풍경을 그리다가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짧은 글을 쓴다.

숙소에 들어와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저녁 7시의 컨디션이 되었다. 어느새 하루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찾았다. 여행마다 함께하는 조각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그 옆에 작은 꽃다발을 컵에 꽂아 둔다. 라디오를 켜고, 바게트에 치즈를 얹어 맥주와 함께 먹는다. 읽다 만 책을 펼치고 앞 페이지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는다. 음악을 들으며 밤의 시간을 즐긴다.

그리고,

잠.
꿈.


#움직이는_가게들


길 위에는 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가게들도 이곳저곳을 떠돈다. 세계 여러 도시에 다양한 이동식 가게가 존재한다. 리어카에 도구를 갖추고 다니며 칼을 갈고, 고장 난 것을 수선해 주며, 생선을 팔고, 열쇠를 만든다. 만능의 맥가이버 같은 존재가 갑자기 필요할 때, 어디선가 나타나 불편함을 해소해 주기도 한다. 자전거에 엿 상자를 싣고 장사하는 남자도 있다. 운하 위를 배를 타고 다니며 물건을 파는 베니스의 가게도 있다. 동네 산책 중에도 푸드트럭, 카페, 채소가게, 서점, 자전거 수리, 도서관과 같은 이동식 가게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도시에 따라, 수요에 따라 파는 물건의 종류가 달라지고, 물건을 담은 가게의 모습도 달라진다. 이동식 가게는 실용성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고, 바퀴라는 도구는 길 위를 움직이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아무리 정교한 탈것이 생겨도 이 단순한 구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효율성, 경제성, 기동성. 그리고 무엇보다 유연함.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를 확장하는 방식은 노마드의 철학과 닮아 있다.

언젠가, 여행에서 만난 어느 도시에서 막 구운 빵을 싣고 골목골목을 누비던 블랑주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은 어쩐지, 어린 시절 종소리를 울리며 골목을 누비던 두부장수를 떠올리게 했다. 하얀 천을 걷고, 뜨거운 김이 나는 두부 한 모를 담아주던 풍경. 수요가 있다면 무엇이든 직접 팔러 다니던 그 시절의 모습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들을 돌며 물건을 파는 방식은 합리적이다. 시간에 맞게 밖으로 나가 두부와 빵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미리 공지된 정보로 알고 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산다. 한 장소에 자리를 점유하며 물건을 파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게의 개념이 아닌,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노마드 한 가게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 풍경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내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어딘가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자유로움이 스며있는 또 다른 유목 풍경들. 정해진 주소가 없어도, 일상의 장면들을 풍요롭게 한다.


#신유목민의_집짓기

집을 짓지 않아도, 집은 만들어질 수 있다.

언뜻 논리에 어긋나 보이지만, 노마드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천막을 치고, 텐트를 세우면 그곳이 곧 집이다. 캠핑카의 문을 열고, 타프를 치고, 의자와 테이블을 놓으면, 어느새 마당이 있는 집으로 확장된다.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땅 위 어디든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화된 세상만큼이나 비어있는 땅도 많다. 그 위에 집을 툭 놓으면 금세 하나의 거처가 완성된다.

많은 이들이 정착을 위해 대출을 받고, 집을 짓지만, 신유목민은 그 여정을 따르지 않는다. 장소를 골라 그 위에 집을 짓고, 일상을 보내다 허물고 떠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포기가 아닌, 의도된 자유. 정주는 속함에서 오는 안정이고, 노마드는 속하지 않음에서 오는 해방이다.

"우리에겐 집이 없을 뿐, 밴이 집이다." _영화 《노매드랜드》

속하지 않음, 선택하지 않음, 주류로부터의 이탈은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이지만, 이들에게는 그 너머에 놓인 자유로움이다.

하루 동안의 집을 흔적 없이 허물고, 다시 길을 나선다. 차창 밖으로 고정된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땅이, 풍경이

달라질 때마다 집 또한 달라진다.
매력적이다!


움직이는 그 순간조차도, 집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매혹적이다!

집은 더 이상 고정된 건축물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험을 담는 여백,
매 순간 새롭게 펼쳐지는 풍경이다.



#유목민에서_신유목민으로_이어지는_일상감각

신유목민을 말하기 전에 노마드의 뿌리, 유목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초원과 사막, 계절과 동물의 움직임에 따라 자리를 옮겼던 그들은 이동이 곧 생존 방식이자 세계관이었다. 고정된 곳에 머물지 않고, 집을 해체하고 옮긴 후 다시 조립하는 것을 반복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유목민과 신유목민은 서로 출발이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철학은 닮아있다. 최소한의 소유,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응, 얽매이지 않는 정신. 일상을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살아가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삶의 미학이다. 자유로움, 가장 큰 매력이다.

유목민이 자연과 동행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신유목민은 디지털로 연결된 세계 속에서 노마드 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이들, 정해진 방식에서 벗어난 사람들.
유목은 과거의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다시 쓰이는 ‘감각의 언어’다.



일상의 패턴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지하고 있다. 정착과 이동 사이를 넘나들며 무의식적으로 유목 생활을 한다.

'집'이 더 이상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시대. 입는 집, 움직이는 집, 그리고 존재로서의 집. 노마드적 삶은 결국 '집'이라는 개념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우리는 떠나면서 도착하고, 움직이면서 정주한다. 그 사이에 '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집은, 오늘의 나와 우리를 담는 방식이 된다.

공항 라운지, 카페, 시장, 공유 오피스, 공원. 어느 곳이든 언제든 무의식적이든 아니든, 우리의 일상에 신유목민의 감각이 스며있다. 혼란과 질서, 충동과 탐색이 교차하는 이 경계에서 인간의 본질을 엿본다.

지루함을 거부하는 자유의 몸짓, 그것이 신유목민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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