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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Jul 24. 2023

주마등

당신의 주마등은 무엇인가요?

한동안 한껏 아팠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두통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눈뜨면 시작되는 두통. 난 그저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만든 통증이라 생각했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열심히 운동을 가고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럴수록 심해지는 두통. 2주가량 두통이 지속됐을 때, 이건 꾀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형외과, 이비인후과를 돌았다. 정형외과에서는 일자목 때문이라 했고, 이비인후과에서는 에니메르 병과 축농증 때문이라 했다.

두 병원의 약을 다 먹었음에도 두통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이다 싶어 신경과를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MRI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순간 엄습해 오는 공포.

MRI를 찍고 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했다. 그 비용을 지불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많이 비싸... 이 돈이면 금융치료해도 나을 듯?”

“헛소리하지 마라.”

“응.”

영상의학 판독이 이뤄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일단은 신경과 선생님과 다시 만났다. 선생님은 뇌에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뇌막이 남들에 비해 살짝 두껍다는 말을 전했다. 그렇지만 그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말도.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집에 와 몸을 누었다. 이내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환자분 MRI 정산 금액에 변동이 있어 다음 진료일에 꼭 수납처를 들러 환불받아주세요.”

“얼마나 환불이 되는 걸까요?”

“총 18만 원만 내면 되세요.”

오, 100만 원이 18만 원이라니. 뭔가 횡재한 느낌에 신이 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나 병원에서 전화 왔는데 MRI 환불해 준대! 18만 원만 내면 된대!”

“자기야... 그게 좋아할 일이 아니라, 뭔가 문제가 발견됐다는 뜻이야...”

“응? 엥?”

이렇게 난 죽는 것인가. 뭔가 뱃속에 있는 장기들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과 뇌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느낌 자체가 달랐다.

그렇게 다시 재진일.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주 신기한 병명을 일러주셨다.

‘뇌척수액 누출에 의한 자발성 두내 저압’

이것 때문에 머리가 그간 그렇게 아팠던 거였다. 척수액이 누출되는 줄도 모르고 더 열심히 운동하고 더 열심히 움직였던 지난날의 내 자신이 멍청하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한 달간 병원 투어 끝에 결국 알아낸 병명. 치료법은 그냥 누워있는 것이란다. 그저 누워 반송장처럼. 게으름이 치료법인 이 병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2주간 가만히 누워 쉬었다. 잠드는 것도 휴대폰을 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라 결국 오만 잡생각을 펼쳤다. 그 끝엔 주마등이 있었다.

이렇게 만약, 내 삶이 끝난다면 난 언제가 가장 후회스러울까. 어느 찰나가 떠오를까.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은, 내가 내 자신을 더 사랑하지 못했던 순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못한다고 독해지라고 스스로 채찍질했던 지난날. 못난 마음으로 스스로 갉아먹던 지난날. 그날들에 대한 후회가 가장 클 것 같다. 그렇다면 잊지 못할 찰나는?

결혼식이었다. 너무 다른 우리 둘이 만나 하나가 되기로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날.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장 예쁜 화장을 하고 남편과 덜덜 떨리는 손을 부여잡은 그날. 정신없던 그날이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했던 날. 살면서 가장 많은 축하와 축복을 받은 그날.

그 생각을 끝으로, 앞으로 살아가는 날에 있어 결혼식만큼이나 소중한 찰나를 잘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더 다듬고 더 사랑하고 사랑 주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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