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갑순이 Sep 04. 2023

회사가 공정해야 하는 이유

횡령 범죄를 고발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특혜, 청탁이라는 단어가 미치는 손실이 무엇일까? 단순히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해 소속 구성원들의 사기저하 정도일까?

아니. 이번에 알았다. 회사가 특정인에게 특혜를 주는 순간 그 특정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고발할 사람이 없다는 것. 결국 그 손해는 오롯이 특혜를 준 회사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는 고인물에게 지속적인 특혜를 부여했다. 남들과 다른 근로시간, 고의적인 연차 누락, 업무 시간 내 자유로운 외출과 나들이를 회사에 말했으나, 회사는 내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그 고인물은 더욱더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졌다. 심지어 그는 승진과 연봉 인상을 받았다. 로열패밀리인가 싶은 그 대접에 의아했지만 특혜가 뭐 대수인가 싶었다.

그리고 아프기 전 우연히 그 고인물의 횡령 사실을 알았다. 금액은 추산 1억. 매출액이 10억도 되지 않는 회사에서 1년간 1억을 자신이 소유한 법인카드로 횡령을 해왔다.

공정성을 무시한 회사의 말로는 결국 바늘 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워냄이었다.

말할까, 말까, 알려야 할까, 알고 있는데 눈 감는 걸까. 그 고민을 하며 병들어 갔다.

결국 나는 큰 병을 얻고 무급 병가에 들어갔다. 누워있으면서도 고민했다. 이 사실을 아는 또 다른 한 사람은 고발하지 않고 퇴사를 결심했다.

난 그의 결심을 흔들지 못했다. 지금껏 회사가 보여준 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은 문제제기가 아닌 조용히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문제를 일으킨 그가 아닌 문제제기를 한 사람을 쳐내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해 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나다. 난? 나는? 상식적이라면 난 내부 고발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특혜가 난무한 이곳에서는 횡령 또한 특혜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를 만든 내가 다칠 것 같다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런 확신 속 나는 병들었다. 이 세상에 정의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 법질서 마저 무너짐을 확인하면 내가 정말 사회 부적응자가 돼버릴 것 같았다.

한 달 반, 낑낑거렸다. 남편과 상의도 했다. 그리고 난, 퇴사와 동시에 고발을 결심했다. 그래, 마지막, 정의는 바라지 않아도 법치주의에서 살아간다는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늦은 밤 직속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답했다.

“이 또한 회사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서, 또 문제제기한 나만 문제아가 될 것 같아서.”

“...”

그 침묵에 작은 희망을 건다. 지난날 특혜를 눈감은 경영진의 참회가 있길 바라본다. 그리고 여전히 횡령은 이뤄지고 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의 처분을 기다려본다. 그 처분이 눈 감고 또 그를 승진시키는 거라면 난 이제 경찰서와 출입 기자를 향해 발걸음을 걸어보려 한다.

세상에 정의가 무너지고 법질서 마저 무너진다면 난 이 세상이 너무 무서워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 마지막 회사의 처분에 성냥불보다 희미하지만, 내가 퇴직을 걸고 용기를 낸 만큼의 일처리는 되길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