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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Feb 10. 2024

백수가 됐다.

무례한 이에겐 짖어보자.

2023을 돌이켜보면 미친 듯이 아픈 나날이었다. 정신이 아닌 육체가. 연말정산에 찍힌 의료비 600만 원이 이를 증명한다.

물질적으로는 참 풍요로웠다. 벌이가 적지 않은 남편과, 회사 생활 7년 차 나의 월급, 아이 없이 오로지 둘이만 생활하니 부족함이 없었다. 하고 싶은 모든 걸해도 괜찮았다. 그런데 묘한 권태로움이 날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부정과 마주한 순간, 그 부정에 입 닫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지난 화에서 써 내려갔던 것처럼 난 회사 내 횡령을 고발했다. 횡령사건은 다소 느리지만 결국 처리됐다. 그 과정에 참 많은 어른들의 이해가 얽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이게 정의니까라는 나의 단순함이 회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를 다치게 했다.

결국 그는 횡령 사건을 빌미로 회사에서 내쳐졌다. 그 대표 자리가 탐났던 어떤 이에 의해서.

이 과정 역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순간 그 대표 자리를 새로 차지한 이가 나에 대한 불편함을 여기저기 토로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아차 했다.

왜? 왜 내가 불편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새로 대표자리에 앉은 이는 법인카드를 너무나 자유로이 사용했다. 누가 봐도 사적인 용무에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긁어댔다. 약간의 양심이 내가 불편하게 느껴졌을 거다.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그의 귓가를 맴돌았을 거다.

"정의롭지 못하면 언젠가 그 대가를 크게 치르는 법이죠."

그 말이 거슬리니 이젠 내가 나가줘야 하는 타이밍이었을 거다.

더불어 그는 온갖 거짓말로 부장급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그만큼의 임금을 자신의 임금 상승으로 가져갔다. 물론 부장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내게 대표님은 임금 삭감하셨대.라고 읊어댔지만.

거짓과 부정, 이를 안 순간 나는 뭘 위해 이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하는 걸까? 단 한 번의 감사라도 제대로 들어온다면 미친 듯 휘청일 이 회사, 정말 내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가치가 있는 곳일까?라는  무기력함에 휩싸였다.

이내 남편에게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나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나는 여기에 입 닫고 그의 비위를 맞추며 그렇게 안정적인 월급을 보장받으면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걸까?

남편은 다 안다는 듯 내게 말했다. 뭐가 문제야, 그냥 사직서 내. 올해는 그냥 가방만 안 사면 돼.

그의 유머가 섞인 단호함에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이내 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런저런 긴 말하지 않고 조금 쉬고 싶다 말했다.

그런 내게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최대한 빨리 그만둬 줄래? 내일모레까지만 나와. 다른 경영진이 너 빨리 그만두라고 난리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겼다. 또 저 간사한 혓바닥으로 거짓을 고하며, 예의조차 지키지 않는구나.

"저는 이제 회사를 다닐 생각이 없어요. 무슨 생각으로 저한테 이렇게 무례한 건지? 제가 뭘 알고 뭘 갖고 있을 줄 알고? 더구나 콧대 높은 경영진들 덕에 10대 일간지 기자들이랑만 친분을 쌓은 제게요?"

항상 웃으며 생각 없이 네네 하던 바보가 반격을 가해서일까? 그는 급히 면담을 종료했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말자, 감정이 날 집어삼키게 두지 말자.

한소끔 화를 가라앉을 때쯤 그는 다시 나를 불렀다.

"아니 아까 내가 말한 건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 회사가 비용을 아껴야 하니까..."

"퇴사일자를 정하는 건 철저히 노동자의 권리예요. 선 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내 그는 누군가와 작전 회의라도 끝낸 듯 자신들이 무급 병가 기간 업무 지시한 것과 출장을 다니며 사비를 쓰게 한 부분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을 이어갔다.

그 말을 듣자 하니 마치 너 노동부 신고해 봤자 우린 다 면피할 수 있어라는 협박처럼 들렸다. 그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제가 고작 노동부갈 것 같아요? 노동부로는 회사가 무너지지 않죠. 그런데 세무조사는 다르지 않나요?"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또 다급히 화제를 돌렸다.

바보 천치라 생각한 걸까? 십 년을 넘는 시간 글을 쓴 내가 문맥 흐름도 못 읽을 거라 생각했나? 끝없이 사람과 소통하며 일을 한 내가 말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걸까?

고작 pr 실무자인 내가 어떻게 횡령 증거를 확인하고, 어떻게 날 보호할지까지 대책을 마련했는지 까맣게 잊은 것일까.

먼저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무례한 이에게 관대할 자신도 없다.

이 미친 세상에서 날 지키는 방법 중 하나, 무례한 이에겐 짖어야 한다. 나조차 날 지켜주지 못하면 결국 상처받고 마음에 병이 드는 건 나다.

그렇게 난 백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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