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 없는 날을 보내고 싶다
6월 2일 ㅡ 낮잠
3시가 다가오면 졸린다. 이르면 2시 반, 늦으면 3시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운동을 하고 동네 엄마들과 브런치를 먹으며 노느라 쉬지 못했다. 안과 약에 이어 비염약을 먹으면서 커피도 마구 마셨더니 오늘은 속이 쓰리다. 봄에 건강검진하고 한동안 위장약 먹었던 일을 잊고 어리석게도 뜨거운 커피를 콸콸 들이부었다. 다행히 예전에 받아둔 겔포스 비슷한 약이 있어서 쭉 짜 먹고 자고 싶었는데, 아이 학교 준비물인 색 점토를 사러 나가야 했다. 문구사에서 한참을 구경하고는 천지 쓸데없는 장난감 나부랭이를 결국 하나 사서 들어왔다. 아이가 그걸 물에 빠트리고 노는 동안 가까스로 누워서 쪽잠을 잤다. 소파에 눕자 내 몸은 하루 종일 눕기만을 기다렸나 싶을 만큼 행복했는데, 금세 저녁 시간. 7시 수업 전에 아이와 서둘러 밥을 챙겨 먹었다. 얼른 이불속에 기어들어가고 싶은 날일수록 저녁이 바쁘다.
6월 4일은 글쓰기 모임, 다 같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도입부를 보고 고선경 시집의 시를 따라 썼다. 화가 넘치는 나와 달리 우리 순둥순둥 착한 친구들은 내지르는 글쓰기를 어려워했다.
5일에는 글방 대책회의가 있었다. 감칠맛 나는 들기름 막국수를 먹고 아주 맛난 커피를 얻어마셨다. 30분 정도 힘들게 회의를 하고 엘레벨레 떠들고 놀았다.
6월 6일 ㅡ 6월 8일 연휴
이번 연휴에 서울 사는 남동생 가족이 엄마집에 내려온다고 했을 때, 할 수만 있다면 나만 쏙 빠지고 싶었다. 사촌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여름만 보내고 북적이는 가족 모임에 가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토록 소박한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6일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남동생이 오려면 한참 걸릴 테니, 엄마와 여동생과 나와 여름은 안동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먼저 만나기로 했다. 근사한 한옥에서 향이 좋은 커피와 맛있는 빵을 먹었다. 언제 오는지 기별 없는 아들이 궁금한 엄마를 대신해 내가 조카에게 연락했다. "아빠가 아직 자요." 12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다. 티 나게 안색이 어두워진 엄마. 나는 사촌 이름을 스무 번씩 불러대는 여름을 데리고 가까운 동물원에 갔다. 엄마와 여동생이 팥빙수를 다 먹기도 전에 끝나버린 동물원 구경 후에 맛없는 볶음밥과 스테이크를 먹었다. 지친 엄마와 여동생이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아이가 놀만 한 유교랜드에서 시간을 보냈다. 실컷 놀고 나온 아이와 내가 시골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남동생은 밥상을 다 차리고 국이 식어갈 때 도착했다.
"어지간히 오기도 싫은 모양이다." 엄마는 한탄했지만, 두어 달 만에 만난 아들이 반가워서 별 소리 하지 않았다. 늘 할 말 하는 담당인 내가 늦었다고 한 두 마디 했을 뿐, 아이들이 꺅꺅 웃고 노는 사이에 분위기는 흐지부지 좋아졌다. 가족모임이란 그런 거겠지. 대충 넘어가고 마는 거겠지.
다음 날에는 아침을 먹고 마당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했다. 고무대야뿐인 열악한(?) 환경이라도 아이들은 잘 놀았다. 나도 작은 감나무 그늘에 일모자를 쓰고 앉아 찬물에 발을 담갔다. 남동생은 잠깐 밭일을 도왔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온 가족이 카페 나들이를 하고 나름대로 명소인 출렁다리도 구경했다. 워낙 시골이라 갈 만한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아서 별 수 없이 찾아간 중국집, 다행히 음식이 맛있었다. 저녁에는 혼자 마을 산책을 잠깐 하는데 올케와 남동생이 같이 나와서 동네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오늘 아침, 엄마가 안방에 있는 서랍장을 내놓고 싶다고 말했다. 딱히 내가 나선 건 아니었지만 엄마가 아빠에게 서랍장을 구미에 가져다주자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아빠는 언성을 높이며 신경질적으로 거절했다. 바빠서 안 된다고 좋게 말해도 될 것을 성질을 부리며 짜증을 팍팍 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면 떠오르는 과거사가 여럿이라 내적 분노가 순식간에 차올라, 필요도 없는 서랍장을 마당에 끌고 나가 부수고 싶었으나, 그런 짓은 할 수가 없었다. "나도 필요 없다. 안 가져다줘도 된다. 아빠, 진짜 안 해줘도 된다." 싸해진 분위기에 엄마 아빠는 각자 밖으로 나갔고, 나는 여동생과 올케에게 아빠 험담을 했다. 아이들이 또 물놀이를 하고 싶어 해서 마당에 나와 앉아있었는데, 남동생이 일찍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아침에 읍내 냉면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먼저 약속한 것도 올케였는데, 남동생이 막무가내로 약속을 깨는 것이었다. "네가 그러고 올라가면 또 엄마 서운한 건 남은 우리가 봐야 하는데." 그러나 남동생은 단호했다. 엄마 아빠에게 먼저 올라가겠다고 말하고(가족들이 투닥대서 그 사이에 끼인 와이프가 힘들다고 엄마에게 말했단다) 짐을 실었다. 아이들 물놀이가 끝나자 샤워도 시키지 않고 출발을 서둘렀다. 배고프다는 조카를 위해 엄마가 급히 생선을 다 데웠지만, 가는 길에 먹겠다며 아이를 이끌고 나섰다.
흥겨운 전국노래자랑을 배경으로 깔고 침울한 점심식사가 이어졌다. 들에 다녀온 아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남매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아까 일 뿐이라고 말하자 더욱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었다. 울상을 넘어 나라 잃은 얼굴로 앉은 엄마는 "내가 걔들한테 잘못한 게 하나라도 있나. 이러면 안 온 만도 못하다." 하며 탄식이었다. 여름만이 생선구이에 야무지게 밥을 팍팍 먹었고, 나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남동생을 욕했다. "오는 날도 하루 종일 사람을 기다리게 하더니, 갈 때도 지 기분 나쁘다고 휭 하니 가고, 아주 귀빈 나셨네. 귀빈 나셨어. 다시는 이것들 올 때 나 부르지 마. 애가 사촌 찾아서 왔더니 이게 웬 난리? 어떻게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어? 자기 기분 나쁘다고 이딴 식으로 가버려? 몇 달 만에 와서?"
극단적인 말을 일삼는 엄마는 "이럴 거면 자식 없는 게 낫지."라며 구시렁대었고, 나는 아들과 나를 동급으로 엮지 말라며 또 역정을 냈다. 여동생이 달래서 동네 카페로 나섰다. 웬일로 내 차에 탄 엄마가 며느리 탓을 하려고 하기에 입을 막았다. 아들 없는 집이 최고지. 그런 집이나 사이가 좋은 법이야. 오빠든 남동생이든 아들은 늘 이모양이지. 엄마한테야 귀한 아들이겠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진짜 거슬리고 짜증스러워. 걔가 자주 오지도 않지만, 오면 꼭 이야기해. 절대 안 올 거니까.
기가 찬 모임 마무리였다. 아내가 힘들어한다며 떠났지만, 제 눈에도 부모와 누나까지 모든 게 거슬렸겠지. 그렇다고 해도 이따위로 모두의 연휴 마지막날을 망친 건 정말 같잖은 짓이다. 맨날 없는 아들 타령을 다 외우겠는데도, 그 아들은 이따위로 행동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해도 눈치 보지 않고 사랑받는 인간만 할 수 있는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