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제는 여름이지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섰으니까

by 원효서
후루카와 코토네

5월 26일 ㅡ 장미

장미가 한창이다. 학창 시절 5월은 의무감으로 카네이션을 사는 계절이었지만, 장미를 사고 싶은 적이 많았다. 비슷하게 빨간 꽃인데도 카네이션은 시뻘건색이 색종이보다 촌스럽게 보였고, 장미의 물방울모양 봉오리와 덜 피어난 꽃송이는 뜻도 모르지만 매혹적이었다. 20대 중반부터 꽃집 앞에서 다양한 장미를 보기 시작했다. 얄궂은 염료로 파란색 보라색을 입힌 하얀 장미를 볼 때는 불편했고, 쨍쨍한 오렌지색이나 빛나는 노란색 장미는 한 다발씩 사고 싶었다. 어쩌다 한 번씩 장미를 샀는데, 그때는 화병에 꽃을 잘 꽂지 않고, 포장지 그대로 거꾸로 말리기만 한 것 같다. 혹 물에 꽂아두어도 야무지게 오므려진 봉오리는 좀처럼 활짝 피지 않았다.

30대 들어 꽃을 더 좋아하게 되며 보게 된 콜롬비아에서 수입한다는 탐스럽고 커다란 장미는 빈티지 접시처럼 아련한 멋이 있었고, 동글동글 귀여운 베이비핑크색 자나장미는 작약봉오리처럼 사랑스러웠지만, 아무리 싱싱한 장미여도 화병에서 만개하는 일은 없었다. 피어날듯하다가 목이 물러지다가 뚝하고 꺾이는 버터빛 노란 줄리엣로즈는 언제부터인가 사지 않게 되었다. 화요일마다 오는 꽃트럭에는 장미가 빠지지 않고 꽂혀있다. 빨강, 분홍, 노랑 장미를 보다가 다른 꽃을 고른다. 아파트와 학교 담벼락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로 넘실넘실 피어나는 장미를 보면 가지런히 꽂힌 매끄러운 봉오리가 가짜처럼 보인다.


5월 28일 ㅡ 미용실

투블록 짧은 머리는 감고 말리기 편한 만큼, 자주 바리캉으로 밀어주어야 하는 부지런함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짧게 밀어둔 관자놀이 부근 옆머리가 자라면서 가로로 뻗어 우스워질 때쯤에는 바쁘고 귀찮아도 미용실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동생이 밀어주면 될 것 같아서 몇 달 전에 바리캉을 샀는데, 한 번 쓰고는 꺼내지 않았다. 쓱 밀면 되는 옆머리는 어렵지 않았지만, 뒷머리 정리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지난봄 최대한 짧게 자르고 파마한 머리가 지저분해져서 모자로도 가려지지 않아, 미용실에 다녀왔다. 여름과 같은 반 아이의 엄마인 원장님은 친근하고 싹싹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 편식과 반찬 고민, 캠핑이나 여행을 조르는 아이와 어디에 가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1인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워터파크에 간다는 원장님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눈병이 다 나으면 수영장에라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수영을 배우기도 해야 하는데...

색칠 중


5월 29일 ㅡ 콩


유치원 점심시간에 여름은 콩나물 머리를 안 먹으려고 똑똑 끊어낸 다음 바닥 여기저기로 던졌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의 스토리텔링이 흥미진진해서 남의 일처럼 깔깔 웃으며 들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의 입맛. 콩밥은 싫어할 수 있지만 콩나물도 먹지 않는 건 예상치 못했다. 여름은 초록색 채소는 뭐든 안 먹고 옥수수나 팥빙수도 먹지 않으니 콩나물이 싫은 것도 당연하겠지. 완두콩을 두 번 사 먹고 양이 부족해서 인터넷에서 2킬로를 주문했다. 친구와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완두콩을 한 봉지 나눠주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제일 큰 냄비에 완두콩을 두 번 나누어 삶았다. 여름은 완두콩 한 알을 못 씹어서 물로 삼켰지만, 콩꼬투리 여는 일이 재미있다고 했다. 아이와 나란히 서서 따끈따끈한 콩을 스텐볼에 톡톡 까서 모았다. 콩깍지는 금세 수북수북, 완두콩 반절은 작은 밀폐용기에 가득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한 사발쯤 남은 완두콩을 저녁으로 먹어야겠다. 아이가 재미 삼아 아빠 밥그릇에 완두콩을 하트모양으로 얹어주었더니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아빠 콩 안 좋아하는데?" 어휴, 입 다물고 밥이나 먹어라.


매직으로 슥슥 칠한 제라늄


6월 1일 ㅡ 일요일


토요일에는 아침 어린이 방과 후 수업, 오후에는 그림책 수업이 있어서 짬짬이 내 시간이 있지만 일요일은 말 그대로 휴일이다. 아이 친구 위주로 약속을 잡고 노는 일에도 지쳐버려서, 요즘은 되는 대로 보내는 일요일. 나의 데일리 친구가 캠핑을 가고 집에 찾아올 사람도 없는 오늘 오전은 게으름을 부렸다. 7시 반부터 나를 깨우는 아이에게 넷플릭스를 보라고 하고, 9시까지 자버렸다. 은근히 기분 나쁜 인후통이 감기인지, 비염인지, 알레르기인지 생각해 보다가 맥모닝을 배달시켰다. 팬케이크를 맛나게 먹는 아이 옆에서 냉장고에서 샐러드를 꺼내 그럴싸한 아침상을 차려먹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틀고 어제 그리던 제라늄을 완성했다. 매직은 시원시원하게 칠해져서 종종 매직과 마카로 그릴 수 있겠다 싶어 좋았다. 동생의 그림을 고르고 골라 스캔하고 그림들이 어떤 글이든 이끌어주기를 바라며 어울리는 그림끼리 묶어서 프린트했다. 시나모롤을 위한 작은 집을 완성한 아이는 앵무새 카페와 롤러장 사이에서 오래 갈등하다가 앵무새를 선택했다.(내 그럴 줄 알았다) 재미있는데도 덜 읽은 책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을 챙겨 나왔다. 덥다느니, 차 안이 뜨겁다느니 불평하는 아이에게 심드렁하게 "그럴 거면 집에 가든지." 하며 앵무새 카페에 들어왔다. 그저 그런 아메리카노, 시끄러운 왕앵무새들, 내 앞에 앉은 세 마리 새들... 오늘도 혼자 있고 싶은 일요일.



손바닥 크기로 자란 잎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