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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Dec 06. 2023

6학년 기억

이슬 선생님과 교회


6학년 담임은 큰엄마(나에겐 없지만) 스타일의 성격 좋은 여자선생님이었다. 일기에 평을 써달라(언제나 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어린 나여...)는 내 요청에 "일기에는 평을 쓰는 게 아니지요. 내용은 참 좋은데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구나. 글씨체를 바꿔보는 게 어떻겠니?"라는 빨간 글씨를 써준 것 외에는 별 특별한 기억이 없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6학년 때는 편애를 받지도 차별을 받지도 않은 것 같다.


방과 후에는 피아노 학원에 살았다. 피아노를 열심히 친 건 아니고 피아노 선생님과 학원을 좋아했다. 5학년 2학기에 처음 만난 피아노 선생님은 화를 많이 내고 무서운 성격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다정하고 부드러운 선생님이 왔고, 그다음으로 이슬(가명) 선생님이 왔다.

긴 곱슬머리를 한가닥으로 묶고 안경을 쓴 이슬 선생님은 다른 학원 선생님들과는 좀 달랐다. 레슨 시간에 화를 내지 않았고 어떤 말에든 대답을 해주었다. 자음이 남다르게 크고 획이 동글동글한 서체로 글씨를 썼고, 깨끗하게 칠한 하얀 벽에도 시트지로 피아노와 음표 모양을 붙여 장식했다. 이슬 선생님이 뚝딱뚝딱 학원을 꾸미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주워온 골판지 과일상자에 신문지를 가득 채워 벤치와 책상을 만들어주었다. 빵빵한 사과상자를 테이프로 여민 후에는 하얀 시트지로 꼼꼼하게 포장하고 분홍색과 하늘색 시트지로 하트와 별 모양을 오려 붙였다.  책장에는 순정만화 스타일로 그려진 음악가 위인전이 꽂혀 있었다. 병약 미소년 스타일의 쇼팽과 악보를 외운 바흐가 기억난다. (지금까지도 음악가의 얼굴을 떠올리면 음악 교과서의 초상화보다 만화책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한 달에 한 번 만화잡지 '보물섬'이 오는 날에는 선생님 대신 책아저씨에게 책을 받아 들고 골판지 상자를 책상 삼아 공포만화 페이지를 뒤적였다.


아이들 생일날이 되면 오예스를 쌓아 올린 케이크를 만들어주었고, 봄방학에는 아이들과 버스를 타고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 그때 처음 다람쥐통을 타고 받은 충격이란...!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많이 모인 시간에는 팀을 나누어 게임을 하고, 고학년 여자아이들과는 친구처럼 수다를 떨기도 했다. 가끔 청음 수업 시간에는 오선지 공책을 펼쳐 들고 건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를 맞히면 절대 음감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틀리면 시무룩해지기를 반복하면서.


학원 문을 닫을 때까지 놀다 보면 때때로 중학생 언니들이 피아노 치는 걸 구경할 수 있었다. 언니들이 페달을 밟아가며 연주하는 찬송가 반주는 얼마나 화려하고 풍성했는지. 하농, 체르니, 소나티네를 배우며 교과서 동요를 겨우겨우 치는 나의 눈에 비치는 언니들은 어찌나 멋지던지! 감히 친한 척도 하지 못하고 기웃대다 집에 가곤 했다.


이슬 선생님은 교회에서 반주를 한다고 했다. 나도 교회에 다녔었는데 요즘은 가지 않는다고, 방학에는 시골 동네에 있는 교회에 간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기 교회에 오라고 했다. 처음 오는 친구들을 모아 환영회를 하고 선물도 준다는 말에, 그러면 가겠다고 해버렸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찾아간 커다란 교회 입구에서 이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는 혼자가 되었다. 강당 같은 예배당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예배시간을 보냈다. 아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점을 빼면, 학교 조회시간 같았다. 과연 선생님 말대로 새 친구를 환영하는 시간이 되자 곁에 있던 어른의 지시에 따라 또래 아이들과 함께 앞쪽 무대에 올라갔다. 어정쩡하게 인사를 하고 박수를 받고 선물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복잡했다. 자리가 없어 높이 있는 손잡이를 잡아야 했는데 잘 잡히지 않았다. 겨우 한 팔을 뻗어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나머지 한 손에는 네모나게 포장된 선물을 들었다. 버스가 멈췄다 출발할 때마다 넘어질 것 같았다. 아무리 이슬 선생님이 좋아도 이 교회까지 오는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만 덜렁 받고 나가지 않는 것도 민망하다 싶었지만, 이슬 선생님이 옆에 있지도 않은 교회에 갈 이유가 없었다.


이슬 선생님은 그 후에도 교회에 오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5학년 때처럼 가까운 교회였다면 아마 나는 이슬 선생님을 따라 매주 교회에 갔을 것이다. 찬송가 반주 연습도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교회에 다시 가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피아노 학원은 6학년이 끝날 무렵까지 다녔다. 집에서 더 이상 학원비를 내주지 않는 상황을 말하고 깔끔하게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오래 후회했다. 선생님이랑 친하니까 나 하나 정도는 학원비를 내지 않아도 다닐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보름이나 이어가는 대신에.


이슬 선생님이 퇴근길에 타던 버스를 타고 중학교에 다니면서, 선생님이 산다던 아파트를 지나면서 오랫동안 피아노 학원을 생각했다. 학원 앞에 찾아가 봤던 것도 같고, 선생님이 학원을 그만두었던 것도 같은데 더 이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받은 선물은 안경통보다는 조금 크고 도시락통보다는 살짝 작은 틴케이스였다. 예뻤던 것도 같고, 마음에 안 들었던 것도 같은데, 딱히 소중하게 간직하지는 않았다. 고작 이걸 받으려고 그 먼길을 갔단 말인가 싶었던 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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