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악몽은 현실보다 오래 곁에 머물러 기억의 일부가 된다. 초등학교 시절 자주 꾸던 땅속으로 가라앉는 꿈이 그랬고, 그 꿈속에서 보이던 직사각형 하늘이 그랬고, 바닥을 쿵쿵 울리는 거인의 발소리를 제발 멈춰달라고 애원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애끓는 절박함이 그랬다.
중학교 1학년 하복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눈코입이 큼직하고 목소리도 큰 주희(가명)라는 아이가 음악 시간에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는 걸 보지 못한 주희의 우렁찬 웃음소리가 음악 선생의 귀에 꽂힌 모양이었다. "방금 소리를 지른 사람 나와." 무언가 기분 상한 일이 있었던 건지, 필요 이상으로 분위기를 잡고 화를 내는 선생님의 기세에 우리는 겁을 먹었다. 무거운 공기 속에서 주변 친구들이 슬쩍슬쩍 눈짓하자 주희가 겁먹은 얼굴로 손을 들었다. 선생은 주희를 앞으로 불러냈다. 훈계하거나 손바닥을 때리고 들여보낼 줄 알았는데 어이없는 지시를 내렸다.
"방금 냈던 이상한 비명 소리 다시 내 봐."
우리는 모두 어이없는 불안을 느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주희와 꼿꼿하게 팔짱 낀 선생을 곁눈질로 번갈아 보았다. 당연히 주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깔깔 웃다가 나오는 비명을 어찌 다시 흉내 내라는 것인지 난감하기만 한 지시였다. 주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순종적인 대역죄인 자세를 취했지만, 선생은 점점 더 화를 냈다. 주희 뒤에 서서 지휘봉으로 아이를 쿡쿡 찌르며 음악실을 한 바퀴 돌게 했다. 그 괴상한 소리를 다시 낼 때까지 교실을 빙글빙글 돌게 할 것이라고 했다.
주희는 울기 시작했고, 우리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선생은 빈정거리며 지휘봉으로 책상을 딱딱 치다가 화를 냈다. "아까 냈던 소리 다시 내 보라고, 나팔처럼 빽 하고 소리를 질렀잖아. 울지 말고!" 점점 울음이 격해진 주희가 어흐흐흑하고 숨을 들이켜며 눈물을 삼킬 때쯤에서야 음악 선생은 아이를 앞세우고 교실을 빙빙 돌던 걸음을 멈추었다.
음악 시간의 충격이 커서일까? 며칠 후 꿈에서 나는 탁자 위에 누운 내 시신을 본다. 그런데 내 시신이라고 누워있는 아이의 얼굴은 내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허리께까지 길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긴 탁자 위에 누워있는 죽은 아이는 주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듯 크게 뜬 눈과 벌건 립스틱을 바른 입술이 '유령신부'와 비슷했다. (나중에 유령신부를 보고 잊고 있던 꿈이 또 떠올랐다) 사람들이 그 시신을 둘러싸고 있었고, 진짜 나의 영혼은 평소 내 모습 그대로였다. 내 영혼을 발견한 사람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너, 죽었잖아."
내가 죽었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끔찍한 일이었다. "이거 나 아니야!" 소리치자 다들 말했다. "무슨 소리야? 이거 너야. 너 죽었어." 나는 울기 시작했다.
다음 장면은 갑자기 시골 개울가, 버드나무가 늘어선 냇가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인 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본 온천 원숭이들처럼 느긋하게 물놀이하고 있었다.
내가 반갑게 말을 걸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내가 죽은 꿈이 계속 이어지고 있나? 생각하는 순간, 아까 본 내 시신이 다시 등장했다. 아빠가 나타났다. 나는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나야. 아빠 나 보여?"
"보이지." 아빠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아빠, 나 무서워?"
"무섭지 그럼, 귀신인데."
나는 서러워서 엉엉 운다. 아빠가 나를 무서워하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안 보인다고 하고 죽었다는 내 시신은 아무리 봐도 친하지도 않은 주희인데, 그러면 영혼인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왜 다들 나를 부르지 않는 것일까? 엉엉 울다가 깨어난다.
한동안 잠드는 것이 두려울 만큼 생생한 꿈이었다. 눈을 부릅뜬 허연 얼굴도 무서웠지만, 나를 무서워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슬퍼서 견딜 수 없었다. 이 여름 내내 시골을 그리워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운 적은 많았지만, 10살부터 대구에 사는 것에는 불만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러나 14살의 여름에는 시골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다. 조용하고 느긋하고 아이도 어른도 북적이지 않는 시골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엄마 아빠에게 시골로 전학시켜 달라고 말하면 어떨까? 어림없겠지? 아침저녁으로 혼자 슬퍼하며 천천히 걸어 다닌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