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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y 04. 2023

할머니의 쑥뜸

할머니를 떠올린다는 건


 친할머니인 자기가 '진짜 할머니'이고 대구에 사는 외할머니는 '가짜 할머니'라고 내게 가르쳤던 나의 할머니, 며느리에게 가혹한 시어머니였던 탓에 할머니와의 기억에는 반드시 구정물이 말라붙은 듯한 얼룩이 붙어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글을 몇 번이나 썼다. 쓸 때마다 엉겨 붙은 귀퉁이를 비벼빨기도 잘라내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복잡한 마음을 안겨주는 할머니.


 어른들 말마따나 별나빠진 아이였던 나는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도 닮았다는데 아마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누구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나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할머니와 나는 서로를 잘 이해하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많이 닮은 사람들끼리는 원래 그런 법이니까. 오직 나의 할머니만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힘겨운 인생을 살며 가족들에게 불행만을 나누다가 치매에 걸려 고생하던 불쌍한 옛날 여자가 아닌, 내가 안겨서 자던 그 할머니를 찾아내려 애를 썼다. 쑥 냄새 너머로 홍양홍양 말캉거리던 할머니의 가슴과 틀니를 빼면 쪼그라들어 우스워진 입술과 얼마 없는 볼살이 처져 귀엽던 얼굴을 겨우 기억해냈다. 담배를 빨아들이면 얼굴 전체가 쪼그라들었다가 펴지곤 했는데….


 마당에 서서 악을 쓰며 우는 나를 잡아끄는 할머니를 밀쳐내던 밤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기였던 동생들 때문이었을까? 시골집에서는 마당 아래쪽에 있는 부모님의 방에서 잘 수 없었던 밤이 많았다. 계절도 나이도 기억나지 않지만 서러웠던 마음만은 선명한 순간들. 결국 나는 평소대로 할머니 곁에서 울다 잠이 들었겠지. 나중에 시골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느라 울 때도 할머니 곁에서 잠이 들었듯이.


 시골을 떠나 대구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던 단칸방을 떠올릴 때마다 쑥 냄새와 담배 냄새가 따라온다. 그 작은 방 귀퉁이에는 틀니가 담긴 하얀 밥공기와 지저분한 재떨이가 있었다. 텔레비전과 책상 사이에는 오래된 검은 봉지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촌에 갈 때마다 챙겨오는 마른 쑥이 버석거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담배를 너무 피웠고 쑥뜸을 많이 했다. 우리 방에는 언제나 말린 쑥 가루가 날렸다. 담배 냄새와 쑥 타는 냄새가 섞여 문을 열면 오래된 약방 같은 냄새가 풍겼다. 말린 쑥잎을 뜯어내 손바닥이 가렵고 아릴 때까지 비비면 갈치 가시만 한 잔가지들까지 빠져나온다. 작게 바스러진 쑥잎들을 메추리알만 한 크기로 뭉쳐서 모아두었다가, 뜸을 뜰 때는 다시 엄지손톱에 올라갈 만큼 아주 작은 산 모양으로 만든다. 아픈 부분에 작은 산을 올리고 꼭대기에 불을 붙이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봉화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구수하고 씁쓸한 냄새는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향이었다.


 할머니는 살이 익을 때까지 뜸을 했다. "할매! 할매! 뜨겁다! 빨리빨리!" 내가 아무리 다급하게 외쳐도 할머니는 느긋했다. 쑥뜸과 피부가 닿는 부분이 다 타들어 가서 더는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손으로 재가 된 쑥을 툭 쳐서 떨어뜨리곤 했다. 뜸을 한 자리는 동그랗게 익어서 다음번 뜸을 올리는 자리를 알려주는 표시가 되곤 했다. 나도 배가 아프면 아랫배에 쑥뜸을 올렸다. 나는 할머니의 작은 뜸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스스로 뭉친 커다란 쑥 덩어리를 골라서 올리곤 했다. 실처럼 연기가 피어나며 살짝 따뜻해지면 기분이 좋았는데, 곧 뜨거울 거라는 공포가 밀려와 초조해지기도 했다. 내가 얼른 뜸을 내려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아깝다고, 좀 더 해야 약효가 좋다고 했고 그러다 내가 호들갑을 떨면 "아이고마~ 가스나야, 알았다." 하고 뜸을 내려주었다. 그러고 나면 배가 씻은 듯 나았는데, 쑥뜸의 효능인지 별거 아닌 탈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또 쑥뜸을 떠야 할까 봐 무서워서 일단 괜찮다고 한 적도 있었던 건 분명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른쪽 뺨 피부 아래에 무언가(지금 생각해보니 '지방종' 같은 종류가 아니었을까 싶다)가 만져진 적이 있었다. 얼굴이 살짝 부어오르고 손을 대면 아파서 엄마와 영천에 있는 큰 병원에 갔더니 다른 치료법은 없고 피부를 찢어서 수술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30년도 전이라 의술이 그 정도였던지 모르겠지만, 어린아이의 볼에 수술 자국이라니 안 될 말이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만져보더니 "절대 손을 대지 말라"라고 말했던 게 어린 마음에도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진지한 얼굴로 할머니에게 "절대 쑥뜸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했어."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고 나는 몇 번이나 옆으로 돌아누워 쑥뜸을 떴지 싶다. 얼굴에 느껴지는 열기와 뺨에 생길지도 모르는 흉터를 무서워하면서 매캐한 쑥 연기를 맡았다. 통증은 일시적인 문제였던지 정말 쑥뜸의 효과로 사라졌는지 알 도리는 없으나, 크면서 다시 얼굴이 아팠던 적은 없다.


 쑥뜸의 기억을 따라 찾은 할머니의 조각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써본다. 반으로 자른 사과를 숟가락으로 사각사각 긁어 먹여주던 할머니의 손, 얼굴과 바닥에 튀던 새콤달콤한 사과즙과 숟가락 가득 담긴 부드러운 과육, 작게 뭉친 밥을 콩가루에 굴려서 만들어주던 고소하고 달달한 주먹밥. 내가 성질을 부리면 못 당하겠다며 넌덜머리를 내던 표정과 혀를 끌끌 차며 "마안 년(망할 년)" 하던 목소리, 화투 점보기를 가르쳐주던 진지한 말투와 마주 보고 민화투를 하던 밤. 내 이야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주말의 명화를 보며 “외국 사람들이 우째 저래 한국말을 잘하노” 하던 어리둥절한 표정. 하지만 크레파스로 닭과 꿩을 잘 그리던, 음악 시험에 나오는 몽금포타령을 손뼉 치며 같이 불러주던 할머니.


 좋은 기억만을 체에 거르듯 떠올려 글로 남기는 일이 거짓말 섞인 가식 같아서 쓰기 어려웠지만, 내가 사랑했던 할머니를 떠올리는 동안 미소가 지어졌다. 하긴 그렇다. 어머님의 귀여운 아들이 나에게는 어여쁘기만 한 남편이 아니듯이, 엄마의 못된 시어머니가 내 할머니의 전부는 아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나 마흔이 넘은 손녀가 구정물 얼룩 대신 쑥뜸 향기만 기억하고 싶다고 해서 나빠질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을 것이다. 아마 곧 할머니의 제삿날이지 싶다. 오랜만에 향을 피워 쑥뜸 냄새를 맡던 기분을 내봐야겠다.


쑥은 아니고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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