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담임은 날씬하고 세련된 여자 선생님이었다.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펜슬스커트 안으로 단정하게 넣은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하얀 피부와 얇은 안경, 곱슬곱슬한 단발머리가 떠오른다. 맨 앞에 앉은 나는 집중력이 떨어지면 교단을 짚은 선생님의 가느다란 손목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자세히 보면 푸른색과 자주색이 옅게 비쳐 나오는 피부 아래 맥박이 뛰는 콩알만 한 부분이 보일 듯했다. 눈을 가늘게 뜨면 선생님의 목소리가 멀어지면서 깜빡 잠이 들 것만 같아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무섭게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대체로 온화했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벌을 하는 일은 없었고, 단체로 벌을 주는 일도 거의 없어, 반 분위기가 좋았다. 시골에서 와서 할머니와 둘이 지내는 나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기도 했다. “너는 똘똘하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약사가 되어라. 시골에서 부모님이 고생하면서 공부시키시는데, 약대에 가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진지하게 약사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때까지 내가 본 우리 동네 약사는 아저씨(때로는 할아버지)들뿐이어서 쉽지 않은 상상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바른생활 어쩌고 지정 학교’로 족보 기록, 아침 크로키, 애국가 경필 대회 등 귀찮은 활동이 많았는데, 나는 ‘주제에 맞는 일기 쓰기’를 맡은 여학생 중 한 명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친절, 봉사, 지혜, 협동(정확하진 않은 4가지 주제)’ 중 하나씩을 골라 다른 날보다 정성 가득한 일기를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었다. 일기 쓰기로 상을 받을 아이들을 미리 고르고, 그중에서 좀 더 높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해 주는 지도 방식이었다.
나는 열심히 일기를 썼고, 상을 받았고, 방과 후 시험지를 채점하는 무리에 속했다. 열성적으로 화단 청소와 교실 환경미화에 앞장서고(그걸로 ‘협동’ 일기를 쓰고) 방과 후에도 교실에 자주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우체국에 가서 우편환을 부치는(교환하는?) 심부름을 했는데, 그건 또 어찌나 특별한 느낌이던지! 우체국 창구에서 떨면서도 어려운 미션을 완수했다는 보람에 가슴이 뿌듯하던 그날,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가득한 길을 돌아 교실로 돌아왔을 때 활짝 웃어주던 선생님의 표정이 떠오를 듯하다.
이런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교회를 소개했을 때 다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평소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방학마다 시골에 가면 여름 성경학교, 성탄절 발표회에 즐겁게 참가했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다. 선생님이 일기장 친구들을 모아 목욕탕 뒤 건물 2층에 있는 교회에 데려갔던 날, 내가 바로 옆 골목에 산다고 말하자 친구들이랑 교회에 잘 다니도록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평범하고 작은 개척교회였다.
선생님과 친한 부모님 또래의 목사 부부와 20대의 남자 전도사 두 명이 있었는데 모두 정말 다정했다. 얼굴이 붉고 키가 큰 전도사는 쾌활했지만 어쩐지 좀 무서운 인상이었고, 키가 작고 뽀얀 전도사는 말수가 적었지만, 말투가 부드러워서 좋았다. 일요일마다 몇 번 교회에 갔더니, 어느 날은 우리에게 돈가스를 사주었다.
성인부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일요일 어린이 예배 시간에는 목사의 두 아들과 우리 넷이 전부였다.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교회가 우리 집 바로 앞이고, 디즈니 만화 동산이 끝나면 할 일도 없으니, 시골에 갈 때가 아니면 열심히 교회에 나갔다. 기도하고 달란트도 받고 텅 빈 예배당 맨 앞줄에서 찬송가도 따라 부르고, 교회 위에 있는 사택에 가서 떡볶이를 먹으며 주인공이 예수님인 만화영화도 봤다.
시간이 흐르자, 나를 제외한 반 친구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다른 점에서는 모두 선생님 말을 잘 따르는 친구들이 왜 교회에 오지 않는지 의아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엄마가 가지 말라고 해서’, ‘우리 집은 원래 불교라서’로 아주 타당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이 부탁해서 다니는 건데… 마지막에는 일요일 아침에 친구네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지만 결국은 어린이반에는 나와 목사 아들 둘만 남았다.
언제부터인가 키가 작은 전도사도 목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도 학교에서 교회에 관해 묻지는 않았다. 일요일은 선생님의 날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종교활동을 선생님이 강요하면 안 되는 건데, 나는 그런 건 모르겠고 그저 열심히 다녔다. 같이 다닐 친구도 하나 없고 목사의 첫째 아들은 잘난척쟁이라 재수가 없었지만, 달란트를 열심히 모으면 무언가 좋은 선물을 준다고 하니 달란트 상점을 하는 날까지는 다녀야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