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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Dec 05. 2023

선생님 따라 교회 간 이야기(2)

이어지는 5학년 이야기


혼자 성실히 교회에 다니며 달란트를 모으던 시기에 일기장에 "작가가 되고 싶어요." 같은 걸 썼더니, 나에게 약대를 권하던 선생님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만 했다. 두어 번 일기장에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 같은 소망을 썼는데 대답은 비슷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정확히 옳은 답이었지만, 뭔가 특별한 반응(어머나! 그러니? 그럼 이런 책은 어떠니??)을 바라던 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건물이 세 개나 되는 큰 학교였지만, 3천 명에 육박하는 학생들 때문인가 변변한 도서실이 없었다. 반마다 학급문고가 있었고, 교무실이 있는 앞 동 1층 교실이 도서실을 겸했는데,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우리 반이 아닌 교실이어서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주말에 전화국 앞에 있는 서점에 찾아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 없어 '어린이'라고 쓰인 서가 앞을 서성대다가 큰마음먹고 창작 단편 동화집을 사 왔다. 허구와 실제를 잘 구별하지 못해 "진짜야?"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읽었는데, 그중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그럴 법했는데, 거기 나오는 어른들은 모두 거짓말 같았다.


 담임 선생님이 학급문고에 꽂힌 초등학생들이 쓴 작품들들 모아놓은 책도 읽었는데, "진짜 애들이 썼다고?" 하며 의심했던 기억도 난다. 아, 나는 안 되겠다. 싶기도 했는데 '문집 사건'(https://m.blog.naver.com/muwiza/222612736199) 이후로는 글쓰기에 흥미를 팍 잃어버리기도 했고.

아, 교회를 왜 그만두었는지 쓰다가 헤맸다. 어린이부에는 성인 신도의 자녀들이나 내 친구들이 조금씩 오다 말다 했지만, 대체로 기다란 교회 의자 2개를 다 채우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느 때처럼 목사 아들 둘과 내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보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 키가 큰 전도사가 화를 냈다. 목사 아들 둘이 장난을 치며 툭탁댔기 때문이다. 두어 번 조용히 지적해도 말을 듣지 않자, 전도사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너희 전부 손들어!"

내가 억울함을 호소했던가? 나도 걔들과 같이 장난을 쳤던가? 잘 모르겠다. 다만 단체 기합은 질색인 나는 얼굴이 벌건 전도사만큼 얼굴이 붉어져 억지로 팔을 귀 옆에 붙였다. 자리에 앉은 채로 양손을 드는 벌처럼 바보스러운 게 있을까? 전도사 말을 듣지 않고 늘 시건방진 목사 아들이 싫었고, 괜히 큰소리로 화를 내는 전도사가 무서웠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끝난 그날 예배 이후 나는 다시 교회에 가지 않았다.


소중하게 모아둔 미니쉘 초콜릿 모양의 달란트를 세어봤다. 이 정도면 제법 괜찮은 물건들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 그 교회에는 갈 수 없었다. 더 이상 데려갈 친구도 없었고 목사 아들과 전도사를 만나기 싫었다. 골목이나 목욕탕에서 사모님을 마주치면 민망하게 인사를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달란트의 초록색과 주황색이 지금까지 선명히 기억이 나는 이유는 그때의 내 감정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쓰레기로 버리기엔 아까운, 돈과 비슷한 달란트를 간직한 것에 대한 불편함에 교회에 그걸 돌려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편지봉투가 불룩해지도록 달란트를 넣고, "이제 나는 교회에 가지 않을 거라 돌려드린다."라는 편지를 써서 교회 앞에 두어야겠다고 진지한 계획을 세웠다.


전도사님이 무섭다. 목사님 아들은 못된 아이다. 속상하다. 같은 마음을 어딘가 썼던가? 선생님이 읽을 일기장에 쓸 수는 없었다. 그 교회에 더 이상 가지 않는다는 말을 어찌 쓰겠는가.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 "비밀 일기장"을 썼으면 좋았겠다 싶은데, 나의 일기는 학교 일기장에서만 이어졌다.


달란트가 든 편지봉투는 중1 때 이사하기 전까지 책상 서랍에 오래오래 들어있었다. 봉투를 발견할 때마다 교회 계단에 가서 두고 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5학년 겨울 방학을 시골에서 보내면서 겨울 성경학교에 열심히 나갔다. 성탄절 행사로 합창과 율동을 연습하느라 즐거웠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를 때 고음이 올라가지 않아 고생스러웠지만 재미있었다. 이때 사진이 앨범에 남아있는데 아마 '노엘'에 맞추어 율동을 했던가? 아, 연기를 진짜 못했는데 어쩌다가 연극의 주연(개과천선하는 '삭게오')도 맡았다. 행사를 마치고 깜깜한 밤, 산타 모양 양초를 선물로 받아 눈 쌓인 길을 걷던 기억은 몇 없는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그런 추억이 있기 때문일까, 6학년 때 피아노 학원 선생님을 따라 또 교회에 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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