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오니다온 Jun 27. 2019

피할 수 없는 믿음의 덫, <곡성>

'믿음'에 대하여-

"절대 현혹되지 마라" 


<곡성>은 '현혹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그러나 관객들은 ‘누구에게’ 현혹되지 말라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 그렇게 대상이 부재한 경고는 의심과 믿음의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믿음과 의심은, 그 방향의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깊어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증거들을 빠르게 포착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한다. <곡성>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자 한계점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파고드는 영화다. 



<곡성>은 개봉 당시 무수한 해석들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한 시골 마을에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연쇄적인 죽음이 발생한다. 경찰들은 암묵적으로 독버섯에 의한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리지만, 마을에는 이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던 중 종구의 딸 효진이 같은 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종구는 딸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외지인을 추격한다. 외지인을 목격했다는 무명과, 효진의 할머니가 굿을 하기 위해 부른 무당 일광이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서로를 향한 의심의 화살이 교차하는 혼란의 판세가 펼쳐진다. 


이 글에서는 영화에 대한 무수한 해석들보다는 영화를 관통하는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결국 종구는 무명의 말을 믿지 못하고 가족을 잃는 파국에 치닫는다. 그것은 마치 믿지 않는 자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형벌과 같다. 그러나 사실 종구는 무명 대신 일광을 믿었을 뿐이다. 한 쪽을 향한 믿음은 결국 다른 쪽을 향한 의심이 된다. 한정된 정보만을 가진 채 자신의 믿음의 방향을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 앞에서 인간은 실수를 하고, 운이 좋지 않다면 종구처럼 가혹한 결과와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종구의 믿음과 판단을 탓할 수 없다. 당신도 그른 방향의 믿음과 의심을 지녀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다. 



사실 <곡성>의 캐릭터 포스터에는 이미 일광이 카메라를 매고 있는, 즉 영을 빼앗는 의식을 행하는 존재라는 것이 떡하니 드러나 있다. 감독은 대담하게도 그 사진 위에 '미끼를 물었다'는 말을 겹쳐서 적어 두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보란듯이 '현혹'된다. 말 그대로 '미끼를 삼키'고, 존재를 의심하고, 그릇된 믿음을 가진다. 믿음을 종용하고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한결같이 벅찬 일이다. 인간 내부에 편재하는 작은 의심은, 좁은 틈을 비집고 나와 인간의 시야를 가린다.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명확한 한계다.


우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현혹될 것이고, 미끼를 삼킬 것이며, 그 결과로 때로는 파국을 맞을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겐 쉽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섣불리 의심을 주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이다. 이유는 없다. 애써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가, 믿음에 있어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비정상의 '신세계',<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