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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May 17. 2021

마침내, 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 반대 길로 들어섰다. 정말 오랜만에 인구 100,000명 당 확진자 수가 100명 이하로 떨어졌다. 얼마 전 250 넘게 치솟던 수치라 100 이하만 되어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와 유치원으로 갔으니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 시간을 가졌다. 통증이 해결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걸을 수 있는 몸이 소중하다.

감각으로 기억을 재생하는 편은 아닌데, 이곳의 몇 가지 소리는 이민 오던 해의 기억을 되살린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밤과 아침을 구분 짓는 소리였다. 밤에는 이러다 뭐 하나 무너지고야 말겠다 싶을 정도로 바람이 휘몰아치다 아침만 되면 고요해지고 새들이 알람 대신 울었다. 숲길로 들어서자 역시나 새들이 반긴다. 이름도 모르는 모습을 숨긴 새들은 소리만으로 반가움을 알렸다.

어제는 오랜만에 해가 쫙 나더니 그만 계절을 건너뛰어 긴 겨울에서 곧장 여름으로 간 것 같았다. 뒤죽박죽 4월의 날씨가 5월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겨울은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부렸는데, 갑자기 더워지니 또 덜컥 지구의 건강을 걱정하게 됐다. 그러더니 오늘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흐리고 선선하다. 챙겨 온 이어폰을 꽂고 뭔가 들어보려 했는데, 너무 구석으로 들어왔는지 인터넷이 잘 안 된다.

그래, 마음도 비우고 귀도 비우고 걷자, 걸어보자. 아침 이슬에 젖은 풀을 밟으니 운동화가 금세 다 젖었다. 축축한 기운이 양말을 뚫고 발까지 전해졌다. 나쁘지 않았다. 무엇도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머리에서 글이 줄줄 써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만사를 제치고 책상 앞에 앉을 차례다.


<이슬에 젖은 풀>




넷플릭스를 열 때마다 커다랗게 떠 있는 “빨간 머리 앤"을 드디어 클릭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내가 이걸 안 볼 순 없지"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쉽사리 시작할 수가 없었다. 볼 게 없어서 홈 화면을 몇 번씩 돌려보면서도 내 어린 시절 친구이자 분신이었던 앤을 선뜻 열어보지 못한 이유를 몰랐다.


납득 가능한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보았다.  

     의외로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앤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봐   

     재미는 있는데 그려왔던 앤과 너무 달라 혼란스러울까 봐   

     외국어로 된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아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의식 근처 어디에 숨어 있는 진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는 접자.


지금이, 그때다.

앤을 만날 때.


열자마자 애써 써내려 본 모든 이유는 기우였음이 판명 났고, 매번 앤이 되었다 마릴라와 매슈가 되었다, 하며 울고 웃었다. 정확한 때에 앤이 다시 와 주었다. 나를 만나러.

앤과 마릴라, 매슈가 가족이 되어 가는 이야기는 정말 따뜻해서 자꾸 뜨뜻해진 속이 눈으로 흘러나왔다. 기대했던 소년이 아닌, 여자 아이를 데려가면서 매슈는 처음의 당혹스러움을 까맣게 잊고, 그 짧은 새 쉬지 않고 재잘대는 이 소녀를 사랑하게 된 듯했다. 집안의 결정권자인 마릴라의 의견대로 앤을 두 번이나 돌려보내야 했을 때 말할 수 없이 애잔했던 매슈의 눈빛이 그걸 말해줬다. 현실주의자인 마릴라는 아무래도 일손이 필요한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는 여자 아이, 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이가 처한 냉정한 현실, 보육원으로 보내면 어떤 집에서 어떻게 학대를 당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눈으로 목격하고는 결국 앤을 다시 데려온다. 가보로 내려오는 브로치를 훔친 줄 알고 매몰차게 앤을 쫓아냈다가 의자 사이에 끼어 있던 브로치를 찾고, 매슈가 앤을 찾아올 때까지 좌불안석하며 스스로 다그치는 동안 마릴라도 앤을 마음에 담았다. 오래 고착되어 있던 그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은 앤을 재발견한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은 온기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내내 고아 같이 외로움을 곱씹던 내게 가족이 생긴 것처럼 벅찼다.

<그린 게이블즈로 가는 길/ 그린게이블즈에서 본 풍경/ 앗, 이건 초원 위의 집인가?>


어린 시절 앤에게 나를 투영한 이유는 ‘주근깨 빼빼 마른'으로 시작하는 주제가 때문이었다. 나는 주근깨 투성이 빼빼 마른 소녀였고, 책으로 봤던 빨간 머리 앤이 당시 만화영화로 방영되었다. 앤은 많은 소녀의 친구였지만, 그 만화 주제가의 첫 소절과 주근깨 투성이 빼빼 마른 덕에 나는 과연 앤의 현현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앤 만큼 수다쟁이도 아니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은 오히려 다이애나에 가까웠지만, 내 안의 어떤 것들은 앤과 맞닿아 있었다. 행과 불행, 삶의 순간들을 아주 크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그랬다. 앤처럼 누군가에게 발설하지는 않았다. 갇혀 있지 못해 그만 커다란 웃음소리와 하염없는 눈물로 터져 나왔다. 빛처럼 쏟아지는 환희의 순간이나 더는 길이 없을 것만 같은 절망의 시간은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됐다. 발화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일기장에 모셨다.




<유치원 등하원길 지나칠 수 없는 버튼놀이 / 민들레 홀씨에 행복한 나날들>


마빈은 정말 유쾌하다. 항상 싱글벙글한 그 아이를 보며 부모인 우리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일순 엉엉 설움을 뱉거나, 용처럼 분노를 뿜어내기도 한다. 첫째와 둘째는 어떤 부분이 나를 닮았는지 알겠는데, ‘막내는 날 하나도 안 닮았어.’ 생각했다. 나랑 정말 다른 성격과 성향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마빈이 어느 날부터인가 혼나고 나면 그 마무리로 엉엉 울면서 한 손으로 크게 웨이브를 그리며, “엄마 아빠, 나는 마음이 자꾸 이렇게 돼.”라고 했다. “그래? 마빈은 어땠으면 좋겠는데?” 묻자 머리 위로 손을 뻗어 길게 선을 그으며, “계속 이랬으면 좋겠어.” 한다.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아이가 어떻게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을까, 싶다가 마빈과 나의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어느 날도 마음의 파고를 손으로 그리는 아이를 안고 “사람들은 다 그래.”라고 했는데, 다음엔 “엄마도 그래, 괜찮아.”라고 해 주어야겠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안아줄 최후의 보루는 나여야 할 것이다. 그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줄 이가 나일 테니.

그리고 나는 나에게 “괜찮다.” 해 주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


나는 괜찮은 것일까?


지난겨울을 지나며 수 없이 되물었다. 나 자신에게도 가족 구성원으로도 사회의 구성원으로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이라는 것은 생활을 여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변덕스러운 감정이란 녀석을 좋아해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앞으로 달려가기에 거추장스러운 짐짝 정도로 취급했다. 브런치 작가 등록을 하고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쓴 글은 고작 서른일곱 개.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페이스북 서브계정을 열고 쓴 것은 작년 연초였으니 실제로 글을 쓰겠노라고 선언한 지는 일 년 반이 되어 간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 정도가 속으로 다짐했던 속도였다. 두 달에 하나꼴인 숫자를 보며 또 한 번 자책 타이밍이 왔다. 한창 어려운 시간은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지독하게도 겨울이 끝나지 않고, 나는 쉬이 녹지 않았다. 딱딱하고 차갑게 굳은 채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절망뿐이었다. 유용함에 대한 강박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나는 여전히 무용했고, 해서 패배자였다.




내가 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면 누구도 내 편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하고 불안해할 때 나보다 더 나를 믿어준 친구들을 만났다.

S는 내가 2학년 1학기 때, 휴학 기간을 포함하여 길어진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던 대학 선배였다. 함께 했던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연극이라는 진한 공기를 함께 마시며 급격하게 친해졌다. 늘 어른스럽고 진지한, 귀 기울여 들어주고 생각의 뜸을 들여가며 찬찬히 자신의 의견을 들려주던 S를 멘토로 여겼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이민이라는 치열한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었고, 늘어난 고무줄처럼 느슨해졌던 것도 같다. 그러던 중 작년에 S 가정에 작은 가족이 하나 더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뻐서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을 전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덥석 두 손을 마주 잡아끌어당겼다. 우리는 동지가 되었다. 여전히 내 쪽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H와 Y는 내 인생에 처음 만나본 여-여 부부다. S는 내가 페미니즘과 성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책 읽고 공부하는 모임을 함께 하자고 했다. 그리고 친구들을 소개해 줬는데 그게 바로 Y와 H였고, 낯설어서 실수할까 봐 지레 겁을 먹었었다. 만나보니 이전의 한정된 세계에서 만난 여느 부부처럼 자연스러웠다. 예의보단 마음이 먼저였다. 일면식 없는 나를 아무런 경계 없이 받아준 그들에게 감사한다. 오래된 관계가 거듭나도록 기꺼이 평어 제안을 해준 S에게도. 고작 몇 달 만에 캐나다에 있는 이 친구들이 최측근이 되었다. 거리와 시차도 극복하는 최고의 지지자들을 만났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얼떨떨할 때도 있지만, 시간은 관계의 바로미터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 행운에 감사한다.


한창 흔들리며 괴로워하던 중 만난 그들에게 상황을 전하면 멀리서 달려올 것처럼 최선을 다해 들었다. 공감과 해결이 완벽하게 조화로운 대화는 처음 해 봐서 감탄했다.

“아무래도 표현방식을 바꿔야겠지. 본질은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못 바꿀 테니까.”

“못 바꾸는 게 아니라 바꾸면 안 돼. 너의 어떤 부분은 너야. 그 부분이 때로는 너와 타인을 불편하게 할지 모르지만, 그 부분이 또 너의 매력이기도 한 거야.”

아직 반도 안 지났지만, 올해의 위로에 등극했다. 순위 변동은 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 불안하고 내가 못 미더웠다. 그들은 지치지도 않고 괜찮다고, 우리는 너를 믿는다고 했다.

멀리 있어서, 서로 좋은 모습만 보아서, 어차피 부딪힐 일도 없으니까 좋은 말만 해줄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생각할 수 있다. 나를 일으켜 세운다면 어떤 조건의 한정 위로일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지지와 사랑은 어떤 조건이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풀리지 않는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편안해지는 법을 찾지 못한다. 본인이 거할 논리의 장막을 치밀하게 짜서 그 안에 들어가는 옆 사람의 방식이 때로는 부럽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내디딘다. 풀리지 않은 짐들을 끙끙 싸매고 갈 때 지치지 말라고, 지쳤다면 쉬어도 된다고, 필요하다면 곁을 내줄 테니 여기 오라고, 진지하게 고민한 해결을 실마리를 쥐여주는 친구들을 얻었으니, 힘이 난다.

나의 마릴라와 매슈는 정말 캐나다에 살고 있다.




저녁 해가 길어지는 이 계절을 나는 사랑한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즈음 부엌으로 늘어진 빛이 스며들어 어떤 하루를 보냈던 따스하게 안겨 쉼을 얻는다. 이민의 첫 기억을 불러오는 두 번째 감각, 범람하여 들이치는 석양. 낯선 땅에 도착하고 얼마지 않아 이 계절이 왔다. 아직 차가운 대기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꽃봉오리는 다투어 폭죽을 터트렸다.

지난하게도 긴 겨울마저 사랑하여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봄이 오지 않는 5월의 독일에서.

<무수히 안아 준 석양>




*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는 늘 조심스러워요. 기억을 되살릴 때는 그 기억이 정확한지, 그에게도 좋은 기억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고, 좋은 이야기를 쓸 때는 글에 언급되지 않은 나의 좋은 사람들을 행여 서운하게 할까 걱정이 돼요. 어쩔 수 없는 '소심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글에 등장하지 않은 나의 모든 지지자들에게 더불어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마무리할게요.


<능금 꽃,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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