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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허블 Oct 24. 2019

그녀와 나의 삼각관계

상처 받지 않고도 인정하는 법

“내가 좋아? 00 이가 좋아?”


심각한 표정의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내가 그녀의 동생을 만난 이후, 그녀는 줄곧 내가 자신보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했다.

걸어갈 때 내가 누구의 손을 먼저 잡나, 누구의 이름을 먼저 부르나 하는 것만으로도  한 살 어린 자신의 동생과 기싸움을 벌였다. 그러니까 그녀와, 그녀의 동생과 나는, 삼각관계다.  


삼각관계에 있어서 모두가 행복한 결말 따위는 없다. 세 사람 다 상처를 받지 않는 대답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차분하게 입을 뗐다.    


“나는, 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가볍게도 그녀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비겁하지만, 동생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철석같이 굳은 맹세를 했다. 그러나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의 동생이 자박자박 찾아왔다.    


“고모! 언니를 더 좋아한다는 게 사실이야?”    


젠장. 파국이다. 그녀의 동생은 대답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 확인을 하러 온 것일 뿐.

속일 수 없다면 진실이라도 해야 했다. 애니까 대충,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논리는 개소리다.

모두가 공평하게 좋다는 말엔 6살도 속지 않는다.      


“사실이야.”    

 

“어째서?!”    


얼굴까지 벌게진 그녀의 동생이 뒤꿈치를 콩 구르며 내게 물었다.

아... 그건, 그러니까 말이지...    


“사실 나는 너보다 언니를 먼저 만났거든. 먼저 만난 그 1년만큼 언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어”


울면 어쩌지? 가슴을 졸이며 표정을 살폈다. 침울한 표정위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은 듯 번득! 나를 바라봤다.


“그럼, 내가 언니보다 1년 더 살 테니까 나중에는 똑같이 사랑하겠네?”    


아, 이런 명쾌한 해답이!

6살의 깜냥에선 1년 늦게 태어났으니, 1년 더 사는 것이 진리로구나.


아무도 상처 받지 않고도, 삼각관계가 단번에 정리됐다. 이런 결말이 있을 거라곤 기대해 본 적 없었는데.

누군가를 더 좋아한다는 건 내게 언제나 선택이었고, 차별이었고, 때론 이별이었고, 늘 상처였다.

상처 없는 이별을, 자책 없는 미련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는데.

상처란 역시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였나. 그래서 꽃같이 예쁜 그녀는 이런 거지 같은 대답에도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가.


그녀의 동생은 너무도 산뜻하게 내게서 돌아섰다.


"근데,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지만, 죽는 건 순서가 없...."  

산뜻한 그녀가 미운 탓인지 무뇌증처럼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말을 황급히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주책이다,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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