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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L Dec 30. 2020

출판사 편집자란 직업에 대한 담론③ 디자이너

출판사 편집자란 직업에 대한 담론① 편집자란?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1543911647

출판사 편집자란 직업에 대한 담론② 취업은?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1558782354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가깝고도 멀게 느껴지는 존재가 디자이너다. 외주 디자이너만 활용하는 소규모 출판사가 아니라면 사무실에서 디자이너와 함께 부대끼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는 책의 표지 디자인, 내지 디자인, 본문 조판, 홍보물 등을 담당한다. 책 한 권을 통으로 맡아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정이 타이트하면 표지 디자이너, 내지 디자이너, 본문 조판 디자이너를 따로 두기도 한다.


사실 인하우스 디자이너가 있는 출판사라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그런데 똑같이 나인투식스 직장인이다 보니 업무 타이밍이 맞물린다는 단점은 있다. 특히 조판 디자이너의 경우 이 부분이 큰 단점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외주 디자이너들은 낮과 밤이 바뀌었거나 저녁에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룻동안 교정을 보고 수정사항을 준 뒤 퇴근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수정된 작업물을 딱 받을 수 있다(일정이 타이트한 경우 이 부분은 굉장히 큰 메리트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 내부 디자이너는 아무래도 톱니바퀴가 동시에 돌아가다 보니 일정이 종종 꼬이곤 한다. 그리고 외주 디자이너는 성향에 맞는 사람을 자유롭게 선택해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지만... 내부 디자이너는 호흡이나 스타일이 맞지 않으면 둘 중 하나가 회사를 떠나기 전까진 쭉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나저러나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인 출판사라면 인디자인을 배워 혼자 조판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단언컨대 '표지' '내지' 디자인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러니 '좋은 편집자'가 되고 싶다면 그들과 업무 협조를 잘해야 한다. 환경과 성향, 여건 등이 다 다르다 보니 '디자이너는 이러이러하다.'라고 딱 정의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몇 가지 공통적으로 주의해야 할 부분은 있다.




1. 수정사항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정사항을 제시할 땐 최대한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본문 수정이야 '교정 부호'라는 공통의 약속이 있지만 표지 디자인과 내지 디자인은 따로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표지를 수정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책의 콘셉트와 방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히 편집자다. 디자이너의 작업물(표지 시안)이 조금 애매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A: 제목 서체가 조금 덜 눈에 띄고 아기자기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컬러도 귀여운 걸로 바꿔주세요. 전체적으로 보다 심플하게 부탁드려요.

B: 제목 서체의 크기를 조금 줄여주시고, 서체를 OO로 바꿔서 써보는 건 어떨까요? 컬러는 파스텔톤으로 몇 가지 더 받아보고 싶습니다. 요소가 너무 복잡한데 배경에 깔린 아이콘 몇 개를 지워주세요.


똑같은 이야기지만 피드백 A를 받은 디자이너와 피드백 B를 받은 디자이너의 작업물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요구가 명확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A처럼 이야기하면 디자이너는 헤맬 것이고(그 와중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고수'도 있겠지만서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원하는 게 있으면 명확하게 제시하자. '심플하게' '고급스럽게' '귀엽게' '화려하게' '느낌 있게' 등의 난해한 표현을 쓰면, 그러니까 원하는 것을 콕 짚어주지 않으면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대로 난감하다.




2. 출판 용어, 제작 등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후가공, 종이 재질, 도비라(약표제면), 속도비라(표제면), 접지, 세네카(책등) 등 기본적인 출판 용어, 제작 부분에 대해 알지 못하면 의사소통이 어렵다. '자간 조절' 네 글자만 쓰면 끝날 걸 "글자와 글자 사이가 너무 먼데 좁혀주세요."라고 구구절절 요청해야 한다. 수정할 부분이 한두 곳이라면 상관 없다. 그러나 수백, 수천 곳을 만져야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원활한 작업을 위해 기본적인 건 알아두는 게 좋다.




3.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편집자는 기획과 편집을 담당한다. 마케터는 마케팅을 담당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담당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서로를 파트너로 생각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협업해야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지향점은 같으니, 그걸 중간에서 잘 조율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외주 표지 디자이너에게 시안을 받았는데 마케터가 표지 시안을 보고 "제목이 눈에 안 띈다."라는 피드백을 주었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편집자가 해당 피드백을 수용한다면 디자이너에게 예의를 갖춰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간혹 '명확함'과 '무례함'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피드백은 명확한 동시에 정중해야 한다.


A: 제목 서체 크기를 더 키우세요.

B: 제목이 눈에 덜 띈다는 내부 의견이 있는데 디자이너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혹 크기를 키운 시안도 받아볼 수 있을까요?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갑자기 디자이너가 "지금 주신 대지 카피가 너무 길어서 제 디자인을 가리는데 좀 줄이세요." 혹은 "표3에 책 광고를 넣으면 책이 안 예쁘니 다른 카피로 대체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뭐, 이 부분은 태도와 관계의 영역이니 각자 알아서 할 부분이지만...




일을 하다 보면 디자이너와 편집자는 부딪힐 일이 참 많다. 나 역시 무례한 외주 디자이너와 대판 싸우고 연락처를 차단해버린 경험이 있다. 그런데 사실 서로의 영역을 조금만 존중하고 배려하면 정말 즐겁고 순탄하게 호흡을 맞출 수 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 업무 특성상 여러 디자이너들과 호흡을 맞출 수밖에 없으니 양보할 부분은 양보하면서 서로 원하는 것을 얻는, 즉 윈윈하는 관계가 되도록 하자. 연차가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디자이너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갈 것이고, '애정 디자이너'도 몇 명 생길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디자이너가 '요술방망이'가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2190859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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