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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L Feb 04. 2023

<단순한 열정> 지극히 사적인 사랑 이야기

책 제목: 단순한 열정

저자: 아니 에르노

출판사: 문학동네

출간일: 2001년 6월 20일

분야: 소설

가격: 10,000원

페이지 수: 104쪽








미리 보는 장단점

장점: 지극히 사적인, 그리고 세계적인 오토픽션.

단점: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감응하기 힘든 사랑 이야기. 취향의 영역이라면야 할 말 없다만.









2022년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한 번도 쓴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의 글을 규정했는데, 그녀의 작품들은 자전적인 이야기와 일부 허구를 합친 '오토픽션'이라 불린다. 이력을 보니 1960년대 낙태 경험을 소재로 한『사건』, 18살 숲속 여름학교에서의 첫 성경험을 다룬 『소녀의 기억』 등 파격적이고 내밀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책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왜 9천 원(10% 할인가)인지 알겠다.'였다. 100페이지 내외, 심지어 출판사 책 광고가 5~6쪽, 작가의 연보도 5~6쪽, 해설과 옮긴이의 말까지 수십 페이지를 차지한다. 알맹이는 67쪽인데, 두꺼워야 좋은 책인 건 아니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글밥도 적은 편이라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완독했다.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




이 책은 1988년에 만난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 연인과의 불륜 이야기다. 이렇게 소개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용도 이게 다다. 내용은 주인공인 ‘나’가 유부남인 A를 만나는 데서 시작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집착하는지를 일기처럼 풀어나간다.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가 그러했던 것처럼 집착에 가까운 사랑의 광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작가와 한국 독자인 나 사이에 두껍게 쌓인 문화의 장벽 때문일까? 솔직히 그냥 불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다. 띠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라고 한다. 다른 말은 모르겠고 '용기' '사적인 기억' 두 가지 단어는 공감이 간다.




그 사람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내게 많은 제약을 강요했다.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선물을 할 수도 없었다. (…) 하지만 나는 별로 불평하지 않았다. _31쪽




신랄하게 이야기했지만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닌 그냥 짧은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글이다.  종국에는 상대를 잃을 수밖에 없다는 결핍을 바탕으로 주인공인 '나'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열정을 담아 상대를 기다리는 순간을 서술한다. A가 자신의 나라로 귀국한 후 다시 잠깐의 짧은 재회가 있었지만, 주인공은 A와 자신이 다시 예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이재룡 평론가는 해설에서 "문학사에 따르면 자전적 예술이 이토록 확대된 것은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이다. 우선 소위 거대 담론의 붕괴로 인해 작가의 시선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이동한 것이 그 첫 번째 현상이라면, 이와 더불어 그간 예술적 관심사에서 외면당했던 평범한 개인의 낮은 목소리와 사소한 몸짓이 부각되면서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상이 그 두 번째일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단순한 열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소설로 하나의 거대한 담론이 되었다.


나처럼 누군가는 그냥 불륜 이야기, 외설적인 글이라 치부하고 넘길 수 있지만, 그녀는 A와의 사랑을 통해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이 글은 그 사람에 대한 글도, 나에 대한 글도 아니며, 그 사람이 읽으라고 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한다. 사랑이, 상대방에 대한 열정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인연의 끈이 끊기면 열정은 고통으로 남는다. 단정하고, 차가운 문장들 속에는 어떠한 심리적 분석이나 평가, 명쾌한 결말 따위는 없다. 에르노, 아니 주인공은 그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_65~66쪽







블로그: https://blog.naver.com/jubilant8627/223004155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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