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살사 클럽에는 제비가 산다
살사 수업 전에 쿠바 혁명광장에 가기로 했다. 물어물어 간 버스정류장, 긴 줄의 많은 사람들, 혁명광장 가는 버스를 물으니 이걸 타랜다. 코앞까지는 아니어도 근처에 간다고. 1쿱을 보여주며 둘이 탈 수 있냐고 손짓 발짓하니 가능하단다. 이제야 제 돈 주고 버스 타는 나. (24쿱cup=1쿡cuc=1달러)
아까부터 도와준 부부가 내리면서 몇 정류장 더 가서 내리라며 신신당부한다. 고맙기도 하지.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혁명광장에 도착했다. 땡볕 내리쬐는 허허벌판 혁명광장에는 열 명 남짓의 사람이 드문드문. 광장 앞에는 체게바라와 시엔푸에고스 얼굴이 그려진 건물이 두둥. 보통 공항을 오고 갈 때 여길 지나게 되는데 직접 와 본 건 첨이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원없이 찍고 서둘러 살사 학원으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타는 귀엽게 생긴 코코 택시가 근처에 있었다. 처음에 10쿡 부르더니 깎고 깎아서 5쿡에 탑승. 빈이와 학원까지 같이 왔다가 헤어졌다. 숙소까지 걸어가려면 20분은 족히 걸어야 했는데 걱정 말라며 슝 가버리는 빈이. 4-5시쯤 비에하 광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챠오(스페인어로 Bye)!
살사 학원은 가는데 30분, 오는데 30분이 걸리니 꼴랑 1시간만 배우고 오기엔 이동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첫날만 1시간 듣고 그 후로는 1시간 반이나 2시간을 듣기로 했다. 내 마음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내 선생은 함흥차사,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반복 반복 또 반복. 딱 한 번 실수인데!! 하루에 살사 패턴 한 가지, 많아봐야 두 가지 정도 알려줬다. 느리긴 했지만 쿠바 살사는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었다. 오늘도 잉글라테라 호텔 가서 연습해야지!
빈이와 다시 만난 곳은 비에하 광장, 어제 잉글라테라 호텔에서 만난 쿠바노들 중 밴드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구경삼아 왔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들이 보이질 않아 저녁이나 먹고 까사에 가서 쉬기로. 밥을 먹고 까사로 돌아가는 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노오란 노을의 끝자락이 하늘을 따스하게 물들였고 방금 켜진 건물의 조명 덕분에 하늘이 모두 금빛!
빈이와 오늘 옮긴 까사에 같이 묵을 다른 여행자와 함께 잉글라테라 호텔로 갔다. 오늘도 역시나 핫한 잉글라테라 호텔, 당시만 해도 여기 매일 출근도장 찍는 쿠바노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히네떼로(일명 제비)라고 불리는 쿠바노들, 외국인 여자를 어떻게 해보려고 접근한다는데 그것조차 전혀 모르던 시절. 난 단지 춤 잘 추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라고 생각했었다는.
히네떼로에 대한 단상
잠시 히네떼로(제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쿠바의 살사 클럽에 가는 사람들 중 순수하게 춤추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클럽에서 낯선 사람과의 쾌락을 즐기러 가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클럽에 가는 목적은 다 다르다. 춤을 같이 추다가 눈이 맞는 경우도 있고 히네떼로가 접근했는데 그걸 알고도 모르고도 즐기는 외국인도 많다.
히네떼로라 불리는 이들은 보통 여행 온 외국 여자와 마음이 맞으면 서로 암묵적 합의하에 딱 그 기간만 함께하며 남자 친구 노릇을 한다. 금전적인 부분은 거의 외국인이 부담한다. (쿠바는 보통 월급이 3-5만 원 이하, 일 안 하고 노는 자들도 많다) 그래서 히네떼로는 나쁜 놈들이다 해야 할까? (신기한 것은 그 기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
무일푼의 젊은 쿠바노랑 결혼한 나이 든 외국 여자들도 보통 금전적인 부분을 여자가 다 부담한다. 모든 것을 서포트해주며 키우다시피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럼 그 쿠바노는 히네떼로인가? 여자를 진짜 사랑해서 만나는지 여자의 재력이 좋아 만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외국인과 결혼 후 금전적 욕구가 안 채워져 이혼을 요구하는 쿠바노나 쿠바나도 있다.
물론 히네떼로 중엔 이 여자 저 여자를 가리지 않고 만나면서 돈을 뜯어내고 나 몰라라 하는 사기꾼 같은 나쁜 놈도 있다. 나쁜 히네떼로의 경우 절절한 사랑을 속삭인다. 그 상대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거짓부렁이라는 것이 문제. 그래서 누군가는 진짜 사랑인 줄 착각했다가 상처만 받기도 한다.
성문화에 개방적인 서양 여자들은 여기 와서 그들과 춤추고 놀며 한바탕 즐기다 가기도 한다. 쿠바에 자주 오는 스페인 여자 한 명을 안다. 그녀는 쿠바노 남자 친구가 있어 쿠바에 오면 그와 함께 춤추며 지내다 간다. 그리고 스페인에도 남자 친구가 있다. 물론 남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쿠바 남자 친구는 결혼을 원하지만 그녀는 결혼할 생각이 없단다. 그리고 스페인 친구들이 쿠바에 놀러 오면 섹스관광을 떠난다. 이런 외국인 여자도 있고 반대로 쿠바노가 여러 명의 여자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여자 친구가 여럿 있다고 해도 이 나라는 비난하지 않는단다. 떳떳하게 나 여자 친구 두 명이야 세 명이야 하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문화적 차이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다들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히네떼로는 언급한 바와 같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쁘고 비난받아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거짓말로 남을 등쳐먹는 정말 질 나쁜 히네떼로는 제외)
히네떼로를 쓰레기 취급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또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더라. 본인은 고귀한 사람이라 저런 쓰레기들과는 다르다고 하며 그들뿐만 아니라 타인을 자기 기준으로 무시해도 되는 자와 잘 대해야 하는 사람, 아쉬울 것 없는 사람 등 등급을 매겨 대하기도 한다. 그들과 춤추고 말 섞으면 나도 쓰레기인가? 그들은 단지 나에게 춤추자고 했을 뿐이고 난 춤을 출 뿐이다. 내가 뭐라고 그들의 인생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비난할 것인가? 간혹 나와 춤을 많이 춰주면 맥주나 칵테일 한 잔 정도는 사줬다. 춤을 몇 곡 추다 보면 밤이라 할지라도 땀이 흥건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쿠바 살사를 아직 잘 못 추는 나에게 춤 신청을 많이 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초반 러시하듯 잉글라테라 호텔 루프탑을 문지방 닳듯 다녔다.
수 개월이 지나고 나서 하는 이야기지만, 잉글라테라 호텔의 히네떼로들은 내 8할의 춤선생이었다. 물론 그들이 나와 살사를 추는 이유의 8할이 외국인에게 본인이 살사를 잘 춘다고 보여주기 위함이었지만. 그럼 어때? 난 많은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난 항상 살사 꿈나무들에게 이야기한다.
학원만 열심히 다니면 살사는 안 늘어.
매일 살사 클럽에 가서 연습해야 해.
항상 선생이랑만 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살사 클럽 가서 이 사람 저 사람이랑
춤추다 보면 살사는 금방 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