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사 선생이라 함은 끼가 있어야 하거늘
소위 맛집이라 함은 비싼 레스토랑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 음식도 맛집일 수 있고 정말 보기에는 허름하고 더러워 보이는 식당도 맛집일 수 있다. 특히 배낭여행자로 십 년 넘게 여행한 나에게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사치 중의 사치. 가끔의 호사는 괜찮겠지만 가급적 현지인 맛집이나 아무도 모르는 숨겨진 현지인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틀 정도 함께한 빈이가 떠나는 날 아침, 식사라도 하고 보내야 했기에 고민이었다. 어딜 가야 할지.
택시비를 제외하고 2쿡까지 쓸 수 있다는데... 사실 쿠바 사람들이 먹는 햄 한 장 들어간 햄버거와 불량한 맛의 음료수를 마신다면 1쿡이면 충분한 아침식사가 가능하다. 아침 먹기 좋은 식당으로 알려진 Cafe Arcangel부터 갔다. 역시나. 여긴 우리의 경비를 초과하는 금액. 숙소 주변도 마찬가지. 그래서 여행자의 필수 어플 맵스미를 켜고 주변의 지도를 살펴봤다.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햄버거 아이콘이 표시된 곳이 있어 갔더니 현지인들이 음식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맛집의 스멜이 나는데....???
가격도 어찌나 착하던지, 햄버거 사이즈와 들어간 재료에 따라 6쿱, 10쿱에 3가지 종류나 있었다.
(24쿱 = 1쿡 = 1달러)
우린 6cup짜리 햄이 들어간 빵과 카페 콘레체를 주문했다. 빵은 곧 나왔고 안에 햄과 오이 머스터드소스가 들어있었다. 급 당기는 케첩!
띠엔에스 살사 데 토마떼?
(케첩 있어요?)
아저씨는 주방에서 케첩을 갖고 나와 뿌려주신다. 맛. 있. 다. 4개에 1달러니 얼마나 저렴한가? 그리고 좀 늦게 나온 카페 콘레체는 미숫가루 맛이 나는데? 뜨거운데 양은 많아 마시기 힘들었다. 그렇게 인당 1쿡의 돈으로 만족스러운 조식을 먹고 행복 행복! 이날 이후로 여기는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는.
빈이를 보내고 오늘도 살사 학원에 갔다. 2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살사 선생 알레에게 오늘 살사 클럽에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10쿡에 살사 클럽 동행 가능하다고 안내문이 있길래 오늘 할 일도 없으니 가볼까 싶었다. (단, 입장료도 모두 내가 부담)
흔쾌히 가능하다는 답변,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1830이랜다.
“잉글라테라는 별로야? 1830이 더 나아?”
“잉글라테라 보다는 1830이 나아”
그리하여 1830 살사 클럽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실 난 잉글라테라 호텔로 가고 싶었는데 은근 살사 선생들이 잉글라테라 호텔 루프탑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듯.
저녁은 혼 치맥을 하려고 항상 긴 줄을 자랑하는 치킨집에 줄을 섰다. 쿠바에서 줄 설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말.
울티모! (마지막 사람)
손 든 사람이 있다면 그 뒤에 서면 된다. 그렇게 치킨 구매 성공! 까사로 돌아와 혼 치맥을 조촐하게 즐긴 후 1830 살사 클럽으로 향했다.
버스 타러 가는데 내 눈 앞을 지나가는 버스, 살사 클럽까지 가는 유일한 버스를 놓쳤다. 오매불망 4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 결국 지나가는 올드카를 깎고 깎아서 5쿡에 탔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이미 간 거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살사 클럽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살사 선생 알레. 친구도 같이 왔다고. 그도 살사 선생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테이블 사이가 아니고서는 춤출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앉을 테이블 조차 없는 상황. 맥주를 손에 들고 공연을 보다가 무대 앞의 거대 공간에서 다들 살사를 추고 있을 때도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듯했다.
어떻게 해서든 비집고 들어가서 추던지
아님 뭐 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던 찰나, 무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살사를 추기 시작했다.
“운 도 뜨레스 (1, 2, 3)!!!”
클럽에서까지 운 도 뜨레스라니??!!
쿠바노 치고는 너무 점잖고 조용하고 차분한 건 알고 있었지만 살사 클럽에서는 좀 능글맞게 대해줘야지 이 사람아! 여기서 숫자 말하며 학원에서 강습하듯 하면 어쩌란 말이냐! 급 콜롬비아 칼리 내 살사 선생 빅터가 생각났다. 살사 클럽 투어를 갔더니 능글맞음이 한 층 업그레이드된 빅터, 그의 한 마디.
난 지금 너의 살사 선생이 아니야
지금은 단지 빅터일뿐이라고!
다시 쿠바.
계속 맨 뒤에서만 있기 싫어서 내가 주도하여 앞으로 갔다. 사람이 많아도 들어가면 춤출 공간은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말이다. 무대 앞사람들이 떼로 춤추는 곳까지 데려갔음에도 여전히 멀뚱멀뚱. 결국 구경만 하다가 다른 할배가 먼저 춤 신청을 하네?
나 너 왜 데려왔니...
그 할배가 나를 안쪽으로 진입시켜준다. 역시! 안 되는 게 어딨어! 근데 좀 추근덕 대는 느낌이 들었다. 더는 할배가 춤 신청 못하게 열심히 무대 위 가수들 동영상 녹화하는 척했다. 그러나 또 추자고 하네?
노 마스 (No more)!
그리고는 또 다른 할배가 춤 신청. (역시 세계 각국의 할배들만 꼬이는 나) 그렇게 1830에서 절반만 사 선생과 추고 절반은 쿠바 할배들이랑 추고 나왔다. 멀기도 하고 당시는 바닥도 시멘트라 별로여서 이 날 이후로 난 1830에 가지 않았다.
잉글라테라 호텔 VS 1830
입장료 없음 VS 입장료 5쿡/인 (내가 10쿡 부담)
도보 가능 VS 택시로 이동 (5-10쿡)
주류도 2인 내가 부담 (동일한 금액)
나중에 들으니 살사 선생 집이 1830 근처라고, 결론적으로는 기본 10쿡에 입장료 2인 10쿡에 택시비 왕복까지 해서 도합 30쿡을 쓰게 되는 셈이었다.
잉글라테라 가자고 우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