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가 떠나는 내게 준 선물
왜 그렇게 여행을 해?
넌 왜 00을 하니?라고 되받아치고 싶지만 하하 웃으며 “좋으니까 하지.”라고 대답하는 나.
왜 여행을 하느냐 묻는다는 것은 나에겐 누군가를 왜 좋아하느냐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냥 좋은 거지.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그렇지만 간혹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있다.
아... 내가 이래서
여행을 계속하는 걸까?
낯선 여행지에서 사람에게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그때 ‘내가 여행하는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게 여행이란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의 교류, 거기서 오는 감동, 그게 내가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다.
쿠바 여행 마지막 이틀 동안은 매일 단골 햄버거집에 가서 햄버거를 먹었다. 이제 동행이 없어도 주인아저씨와 아줌마가 있으니 혼자가 아닌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자주 가던 일식당에 가서 어제 만난 M씨를 다시 만났다. 여러 명이 같이 앉는 테이블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뉴욕에서 온 일본계 미국인과 히피처럼 떠돌아다니는 유럽계 음악가, 그리고 식당 이름인 사유의 아버지와 친구 등 여러 명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대화, 그리고 음악가의 우쿨렐레 연주, 갑자기 시작된 사유의 플루트 연주까지 너무나도 물 흐르듯, 보이지 않는 대본이 있는 것처럼 드라마틱했다.
어스름 짙은 저녁이 되자 뉴요커, 음악가와 함께 비에하 광장으로 생맥주를 마시러 움직였다.
쿠바에서 생맥주란 어느 특정한 곳을 찾아가야 마실 수 있을 만큼 특별하다. 한국에서는 쉽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여기에서는 쉽지 않다. 그래서 쿠바에 있다 보면 새삼 내가 누리고 살았던 평범한 삶에 감사하게 된다. 뭐든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이 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니니까.
일본계 뉴요커가 우쿨렐레를 켰다. 그 멜로디에 눈감고 귀 기울이는 이름 모를 음악가, 그는 살사 음악의 본고장은 미국이라 했다.
‘왜 살사가 미국꺼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냥 그의 말을 경청했다. 굉장히 길게 설명해줬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계속 ‘반사’를 외치고 있었다. 우선은 들어보자 이유가 있겠지 하고는 나중에 찾아봤다.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뿌리는 미국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 날은 오랜만에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다른 나라의 여행자들을 만났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도 나눴다. 배낭여행자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지나고 보면 수년 전의 여행이 참 그리울 때가 있다.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변하지만 그때 그 기억은 생생하다.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날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됐다.
쿠바를 떠나기 전 날, 내일 떠난다는 인사를 할 겸 또 내 단골집을 찾았다.
“언제 또 쿠바 와?”
“글쎄요. 모르겠어요...”
언젠가 또 오긴 하겠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니 확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가볍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뭔가 이런 것도 약속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같이 사진도 찍고 연락처도 받았다. 알 수 없는 도메인의 이메일 주소, 쿠바에서만 쓰는 이메일 주소였는데 당시에는 ‘이런 이메일 주소가 있나?’ 했다. 호날두 팬인 아저씨네 가게엔 호날두와 레알 마드리드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내가 원하던 대로 우리 사이에 호날두가 나오게 사진이 잘 담겼다.
“내일 낮 비행기라 못 올 것 같아서 지금 왔는데
내일 올 수 있으면 올게요!”
작별인사처럼 나름의 인사를 하고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혼자 여행할 때는 줄곧 그래 왔던 것을 떠나기 마지막 날 하게 된 것이다. 쿠바에서의 마지막 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잉글라테라 호텔로 향했다. 쿠바 살사를 며칠 안 추다가 췄는데 여전히 재밌네. 춤 바람이 무섭다더니 새삼 또 느낀다.
트리니다드 가기 전 영과 같이 지냈던 까사로 옮긴 지 이틀. 까사 아미가와 매일 노닥거리며 조금 친해졌다 싶었을 때, 정신 차리고 보니 떠날 날이 다가왔더라. 그렇게 쿠바에서의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내게 찾아왔다.
쿠바를 떠나는 날 아침, 공항 가는 택시가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있어 고민 끝에 단골집으로 부리나케 갔다. 이른 아침이라 문이 닫혀있어 그냥 돌아갈뻔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머니, 이제 문 열거라며 조금만 기다리라 하셨다.
쿠바식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작은 햄버거와 음료를 주문했다. 주인아저씨는 내가 오늘 다시 온 것에 조금 놀란 눈치! 한사코 주스가 몸에 좋다며 주스를 마시라고 하셔서 ‘그래 마지막인데 마시자!’ 하고는 현지 탄산음료 대신 두 배 이상 비싼 주스를 마셨다.
15쿱의 행복, 한국돈 800원을 햄버거가 나오기 전에 미리 지불했다. 아저씨가 햄버거를 들고 와서 아줌마와 짧은 대화를 하시더니 급 돈 통에서 돈을 꺼내신다.
이건 선물이야!
이건 선물이라며 재차 괜찮다고 해도 햄버거랑 주스값을 다시 돌려주시는 거다. 어쩐지 자꾸 주스 마시라고 하시더라니. 눈물이 날 뻔했다.
아니, 찔끔 흘렸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곧 이 나라를 떠나는 나에게 이 현지 화폐는 다음 여행을 기약하라는 뜻이었을까? 이제 공항 가는 택시만 타면 더 돈 쓸 곳도 없었다. 사실 이 돈은 쓸 생각보다는 잘 간직해야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렇게 난 쿠바를 떠나기 전,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
내 단골집의 이름은 Dona Rosa
다시 쿠바에 돌아와 쿠바 현지 맛집 관련 글을 블로그에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단골집도 적었다. 오래전부터 쓴 블로그라 글을 쓰면 잘 노출되는 것을 알기에. 관광객이 별로 없는 동네지만 은근 근처에 까사가 많아 여행자에게도 아저씨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름 모를 작은 현지 햄버거집(피자도 판다)이 지금은 맵스미 한국어 리뷰도 생기고 별점도 높다. 아저씨한테 받은 큰 선물을 이렇게라도 해서 갚고 싶었다. 다시 쿠바에 갔을 때, 여기 한국인 많이 오냐고 여쭤봤더니 웃으시며 그렇다고 하시던 아저씨.
알고 보면 나랑 나이차 별로 안 날지도??
나보다 어릴지도?? 그럼 아저씨가 아니라 아미고!!
아이 미 마드레 (쿠바식 오 마이 갓)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 길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펑펑 운 적도 있었다.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 감동받아서. 아저씨 덕분에 급 옛날 생각이 났다.
보고 싶은 인도네시아 가족들,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