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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온 쿠바 아바나

쿠바 여행의 시작과 끝

by 신유


이틀 만에 아바나에 다시 왔다. 며칠일 뿐인데 오랜만에 온 기분이었다. 트리니다드부터 같이 온 H는 오늘이 마지막 날, 내일 쿠바를 떠난다. 우린 어제 미리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까사(숙소)에 도착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주인이 설명해주는 화장실과 문 잠그고 여는 법 등을 듣고 짐을 풀었다. 쿠바의 까사는 한 방에 더블침대와 싱글침대의 조합이 많다. 이번 까사도 마찬가지. 트리니다드에서는 먼저 온 H가 싱글 침대를 쓰는 바람에 내가 더블침대를 썼던 터라 이번엔 내가 먼저 싱글침대를 선점했다.


마지막 밤인데 편하게 자고 가요!
트리니다드에선 자기가 작은 침대 썼으니
이번엔 내가 작은 침대 쓸 거얏!


한사코 본인이 작은 침대를 쓰겠다던 H, 그러나 내가 먼저 작은 침대에 드러누워 온몸을 비비적댔다. 배가 고프니 우선 뭐라도 사 먹자고 하고 짐을 대충 두고 나왔다. 까사에서 큰길로 나와 쭉 걸어가다 보니 사람이 북적이는 푸드코트 같은 곳을 발견했다. 약간 덥긴 했지만 느낌상 현지인 맛집 스멜이 나는 걸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쿠바 아바나 현지 식당


스페인어 까막눈에겐 메뉴판 따위 중요치 않다. 그냥 남들 먹는 것 정도만 시켜도 중박! 잘 모를 땐, 다른 사람이 먹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달라고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받은 내 음식 두둥!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놀라고 볶음밥엔 방금 딴 것 같은 생 숙주나물까지 들어가 있었다. 고기는 짭조름했지만 부드럽고 맛있었다. 음료는 쿠바 콜라인 투콜라를 주문! 이렇게 해서 2쿡(한화로 2,500원) 정도에 식사 끝! 음료수 값이 거의 천 원꼴이니 식사값이 엄청 싸다고 볼 수 있다. 덥지만 않으면 완벽했던 식당, 그렇다고 밥 먹으며 땀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1월이라 다행이지 6-8월에 왔으면 쪄 죽었을지도.


마지막 날이라 할 것이 많았던 H와 헤어진 후, 난 커피를 한 잔 하고 말레꼰에 갔다. 벌써 일몰, 쿠바에 있을 날이 며칠 안 남았다 생각하니 급 말레꼰 일몰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파도가 높은 날은 바닷물 치솟아 도로까지 흩뿌려지는데 이 날이 그랬다. 덕분에 차도에 차가 한 대도 없는 상태의 말레꼰을 거닐었다. 겨우 해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다가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다.


쿠바 아바나 말레꼰의 일몰


직장을 다니는 M, 휴가로 쿠바에 여행을 왔다 했다. 도착한 첫날 아바나 전체 정전이라 까사 주인이 촛불을 들고 입구에서 자기를 맞아줬다고. 쿠바 도착 첫날부터 암흑 천지의 아바나를 경험했던 그는 방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른 채 잠들었다 했다. 운 좋게도 난 트리니다드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기에 암흑 천지의 아바나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입소문 난 라이브 바에 갔다.


쿠바 아바나 라이브바 시아카라, Sia Kara Cafe


시아카라, Sia Kara Cafe라는 곳의 라이브 바는 ‘여기 이런 게 있어?’ 할 정도로 생뚱맞은 위치에 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민가뿐인데 이 레스토랑이 갑자기 두둥 하고 나타나 처음 가는 사람들은 다 들놀라는 곳이었다. 소문만 들었지 나도 처음 가보는 지라 어떨지 궁금한 마음만 가득했다.


완전한 쿠바 음악도 아니고 완전한 외국 음악도 아닌 퓨전 느낌, 기본적으로 피아노가 들어가는 밴드 위주로 구성된 팀으로 이 날 색소폰 연주자가 굉장히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연주했다. M씨의 하얀 치아가 드러나는 환한 웃음만 봐도 어찌나 뿌듯하던지. 일반적인 한국인이 일 년에 한 번 있는 긴 휴가를 갔을 때, 그를 내가 어딘가로 데리고 갔을 때, 너무 만족스러워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뿌듯한 마음은 그래서 생기는 것 같다. 잘 왔구나 여기!


나중에 보니 이 레스토랑은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송혜교 씨 나올 때 살짝 배경으로 나온다. 1회 말고 후에 나오는 10회쯤.


집 앞에 이런 곳 있으면
매일 갈 것 같아요


대만족 하는 M씨 덕분에 나도 흐뭇했다. 색소폰 연주자가 어찌나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연주하던지. 피아노는 곧 분해될 것 같은 낡고 조율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음악은 이 밤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우린 다이끼리를 다 마시고 밴드가 바뀔 무렵 밖으로 나왔다. 잉글라테라 호텔의 루프탑과 진짜 쿠바 음악, 그리고 야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쿠바 아바나 라이브바 시아카라 Sia Kara Cafe


잉글라테라 호텔은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대체 안 북적이는 날이 있을까 할 정도. 여느 관광객처럼 쿠바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핸드폰에 담는 M, 그리고 호텔 루프탑에서 보는 야경까지, 딱히 춤출 생각이 없어 야경 구경 좀 하고 음악 좀 듣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까사로 들어왔다.


잉글라테라 호텔 루프탑에서 본 야경


왜 여행이 끝날 무렵엔 시간이 빨리 흐르는 걸까?

이제 떠나는 날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하루의 시간만 남은 쿠바 여행, 내일도 오늘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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