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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쿠바

쿠바 소년들과의 추억을 찾아서

by 신유


새벽부터 울어대는 쿠바의 목청 큰 닭 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닭이며 개며 울어대고 짖어대고, 트리니다드에 닭이 이렇게 많았나?


H와 조식을 먹으며 오늘 뭐 할 것인지 물었다. 나처럼 카메라를 갖고 있던 그녀는 트리니다드를 한 바퀴 돌며 사진이나 찍을 예정이란다. 쿠바는 사진 찍기 좋은 곳이다. 트리니다드는 알록달록해서 더 좋다. 많은 여행자들의 카톡 프사가 되기도 하는 곳이니. 우린 같이 돌아다니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하고 저녁에 차메로네 집에서 랍스터를 먹기 위해 나가는 길에 미리 예약을 했다. 3년 전에도 예쁜 동생과 함께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다가 쿠바 소년들을 만났는데. 추억 돋는다.




바야흐로 2015년 12월, 쿠바 여행 중 트리니다드 레오네 까사에 묵던 시절, 같은 방 쓰는 동생과 함께 길을 나섰다. 와이파이 공원에서부터 안 가 본 길로 가다가 너무 많이 갔다 싶을 때만 지도를 보며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어린아이들 네 명이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슬며시 사진 찍으니 나름 포즈를 취하는 소년들. 바디랭귀지로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고 사진을 찍는데 어찌나 셔터 누를 때마다 다른 표정과 포즈를 취하던지.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여주던 녀석, 장난기가 많아 권투선수 포즈 취하는 녀석, 친 구들 사이에서 웃기만 하던 녀석에 수줍음이 가득했던 녀석까지 네 명의 소년과 그렇게 만났다.


2015년 12월에 처음 만난 쿠바 소년들


사진을 찍어주고 보여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난 남미 여행까지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 블로그의 쿠바 여행기를 보시고 한 두 달 후에 쿠바 여행을 떠나신다는 분과 연락이 닿았다.


쿠바 소년들에게
사진을 전달해 주실 분
있으실까요?


이 글을 보고 연락을 주셨는데 흔쾌히 사진을 전해주시겠다던 분들! 너무 감사해서 쿠바 여행을 하며 맵스미에 남긴 정보를 파일로 추출해서 보내드렸다.
인화된 사진을 바로 배송시킬까 하다가 우선 내가 먼저 받고 소년들에게 줄 사진을 개인별로 구분했다. 그리고 트리니다드 맛집과 간단한 여행정보를 표시한 지도도 동봉해서 보내드렸다. 단체 사진도 인원수만큼 뽑았더니 사진의 양이 꽤 되었다. 지도에 사진을 찍었던 위치와 소년들 중 한 명의 집 위치를 알려드리고 그렇게 잊고 지냈다.


쿠바 아이들에게 줄 사진들, 현지에서 직접 사진을 전해주신 분들


여행을 떠나신다는 날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반가운 소식이 왔다. 소년들 중 한 아이의 집에 사진을 전달하고 사진까지 찍어서 보내주신 분들 덕분에 난 너무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애들이 너무 커서 못 알아볼 뻔했다는 말씀과 함께 보내주신 사진들은 1년 전의 쿠바 여행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것을 먹고 그런 여행은 내가 지향하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별 것은 아니어도 이렇게 서로 추억을 나누고 공유하고 그런 게 참 좋더라. 나를 위해 하는 여행도 있지만 그런 건 잠시 잠깐만 좋을 뿐이다. 함께 나누는 여행은 그 행복한 마음이 오래간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트리니다드에 온 이유는 하나, 그 소년들이 잘 컸나 그걸 보고 싶었다. 2018년에 3년 만에 다시 간 과테말라 여행에서도 비슷한 되새김 여행을 했었다. 잘 컸나 보러 왔다고 하며 내가 준 사진을 아직 갖고 있냐는 말에 집 안으로 부리나케 들어가 사진을 가져오던 소녀(추후 기고 예정). 2019년 1월은 쿠바에서 3년 전의 그 소년들을 만나고 싶었다.




트리니다드의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느낌이었다. 와이파이 공원 쪽에 있는 ATM, 여기도 추억이 서린 곳이다. 당시 현금 인출되는 카드가 없었던 부부를 만나 인출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 ATM이 그대로 있었다. 추억 돋네~


2015년의 나, ATM에서 돈 뽑기


선입금을 먼저 해줘서 빨리 뽑아줘야 했던, 500쿡 정도 생각했는데 거진 800쿡 정도가 입금되어서 그 돈 다 뽑느라 은행 선결제 안 되는 시간 피해 인터넷에서 선결제하고 돈 뽑고,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은행 업무에 필요한 와이파이 카드도 받고 선입금 때문에 몇 천 원 돈이 남기까지 했었다. 물론 은인이라며 무척 고마워하기도 했고 말이다.


나중에 멕시코 어느 한인 민박에서 쿠바 여행 이야기가 나와 각자 이야기를 하던 중에 대신 돈 인출해준 민박집 사장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도와준 사람은 십원 단위까지 쪼개서 정확한 금액으로 그것도 뽑아준 후 그 도시에서 헤어지기 전에 겨우 받았다 하더라. 참 세상엔 별의별 사람들이 많다.


독사진 찍는데 지나가는 쿠바 아저씨가 등장
남이 찍어준 사진이 젤 좋다


한 번은 얻어걸린 사진이 있었다. 문에 기대어 있는 사람들과 건물 입구가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눈에 들어온 할아버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아 그 할아버지만 찍고 있었는데 어떤 여인이 오더니 키스를 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셨던 모양. 3년 전 그들이 나눈 키스의 장소는 이제,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장소지만 예전 사진이 더 좋은 것도 있다.


트리니다드의 유명한 종탑 쪽. 시가를 물고 같은 위치에 앉아계셨던 할아버지, 3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계셨다. 너무 반가워서 사진을 뒤적이다가 할아버지 사진을 찾아 보여드리니 미소를 지으신다.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 쓰다가 결국 구글 번역기를 이용, 3년 전에 뵈었다고 사진 같이 찍어도 되겠냐고 하고는 건강하시라고 하고 헤어졌다.


예전엔 사진만 찍으면 돈 줘야 하는 줄 알고 저 측면에서만 사진을 찍었었는데, 이번엔 함께! 그간 얼굴에 검버섯도 많이 생기시고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을 여실히 느꼈다.


쿠바 트리니다드의 시가 할아버지와 함께


중간에 점심도 먹고 차도 마시고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아이들과 사진 찍었던 곳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사진을 보이며 예전에 사진 보냈었고 애들 잘 있나 해서 왔다고 구글 번역기 돌려가며 아저씨와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다 산에 갔단다. 언제 올지 모른다고.

일요일이라 집에 있을 줄 알았건만!!

어찌나 아쉽던지.


그래도 다 잘 지낸다는 것과 한 소년(이 소년을 정말 만나고 싶었는데)은 저 위쪽에 산다고까지 들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오겠지. 아저씨는 한 소년의 아버지로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사 온 볼펜을 드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저씨의 그림을 하나 샀다. 이걸로 됐다.


쿠바 아이들과 만났던 동네
트리니다드 한 소년의 아버지가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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