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라서 더 놀라운 동굴 클럽
보통 쿠바 여행 오는 사람들이 살사를 많이 배우는 곳이 아바나와 트리니다드(뜨리니다드). 멀리까지 가면 간혹 산티아고데쿠바에서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난 이미 쿠바 아바나에서 살사를 배웠고 오늘 처음 만난 H는 방금 트리니다드에서 살사를 1시간 배웠다. 우린 구경도 할 겸 트리니다드의 핫한 살사 클럽인 엘 링컨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엘 링컨 살사 클럽에 들어가서 한 바퀴 쭉 둘러보며 앉을자리 없나 찾아봤는데 빈 테이블이 없었다. 멀뚱멀뚱 서 있다가 어느 커플 자리에 운 좋게 합석 성공! 아바나에서도 그랬지만 자리 없을 땐 주인 없는 빈 의자가 있는 테이블에 가서 앉아도 되는지 물어보면 거의 다 흔쾌히 앉으라고 한다.
엘 링컨은 의외로 춤출 공간이 좀 작게 느껴졌다. 핫한 살사 클럽이라고 해서 아바나의 1830처럼 무대 앞쪽에 춤출 수 있는 큰 공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서 춤추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 날은 또 밴드 음악이 살사 느낌도 아니어서 뭔가 김 빠진 느낌. 이미 우리와 합석했던 커플은 떠났고 H와 난 두리번두리번 사람 구경만 실컷 했다. 와이파이 존에 가서 인터넷을 좀 하고 먼저 들어가겠다는 H, 그녀가 가고 얼마 안 있다가 내 테이블 옆을 지나가는 호세를 발견했다. 친구들과 같이 온 호세와 어쩌다 보니 합석을 하게 되었다.
“맥주 마실래?”
“괜찮아”
하고는 맥주를 사 온 호세와 친구들, 한 캔 따더니 나를 준다. 어라? 괜찮다고 했는데. 얼떨결에 쿠바노가 사주는 술을 다 마셔보네! 그리고 심심하게 앉아있는데 호세 친구가 동굴 클럽을 가잔다. 나도 그 유명한 동굴 클럽이 궁금했는데 같이 갈 사람도 없고 해서 따라나섰다.
듣기로 비포장 도로 같은 길을 올라가야 한댔는데 진짜였다. 어둑어둑한 골목길과 비탈길을 지나 이 길 위에 정말 클럽이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 때쯤, 동굴 클럽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저렇게 클럽 입장을 위해 줄을 서고 있더라. 아! 놀라워라! 안으로 들어가서 입장료 5쿡(한화 약 6천 원)을 내면 주류 한 잔이 포함된 티켓을 준다. 안타깝게도 호세 친구 한 명은 입장 불가 나이라 집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몇 살이냐 물어보니 16세란다. 아이 미 마드레(오 마이 갓 쿠바 버전)
계단을 따라 아래로 가니 정말 동굴 안의 클럽이었다. 저 위는 아주 후끈 달아오른 듯한 분위기! 콜롬비아에서도 레게톤 클럽을 즐기지 않았던 편이라 여기도 그리 오고 싶진 않았는데 동굴 클럽이라고 하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바에서 입장권을 제시하여 모히토를 받아 들고 위로 올라갔다.
여긴 뭐 쌍팔년도 한국의 나이트클럽 같은 분위기였다. 콜롬비아의 여느 핫한 레게톤 클럽과도 다른 분위기! 디제이 있고 음악 나오고 레이저 조명 쏴주면서 스모그에 비눗방울까지 나오며 난리도 아니었다. 특히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인 관광객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쿠바 청년들이 주류였다.
여기 쿠바 맞나?
내심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런 자본주의스러운 클럽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살사 클럽이나 레게톤 클럽이나 뭐 클럽은 클럽일 뿐이니 간단하게 생각하자.
다 사람 사는 곳이다!
어쩌다 보니 앞에 있던 양인 관광객들과 같이 춤을 추기 시작. 호세도 추고 우리도 추고 뭐 어둡기도 하고 부끄러운 것도 없고 사실 클럽 와서 ‘개그계의 신사 정재환’(70-80년대 출생자만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음)이 췄던 제자리 걷기 춤을 추느니 화끈하게 추는 게 낫지!
넌 쿠바나야
(쿠바나 = 쿠바 여자)
호세가 나보고 쿠바나라고 하더라. 레게톤 춤은 콜롬비아에서 배웠단다 호세야. 하지만 쿠바나들이 레게톤 클럽에서 춤추는 걸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는. 난 비교 대상도 안 된다.
그렇게 서유럽권(스페인으로 기억)에서 온 이름도 모르는 여행자들과 사진을 남기고는 얼마 안 있다가 동굴 클럽에서 나왔다.
벌써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동굴 클럽에서 나오자마자 어떤 쿠바노가 호세에게 말을 건다. 동굴 클럽에 입장하면 끼워주는 종이 팔찌를 달라고 했던 것 같다. 이미 호세 꺼는 갈기갈기 찢어져서 줄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던 쿠바노에게 내 종이 팔찌를 아주 섬세하게 떼어서 훼손되지 않은 상태로 줬다. 쿠바 사람에게 동굴 클럽 입장료 5쿡은 그만큼 큰돈임을 알기에 젊은 나이에 놀고 싶다는데 이 정도는 도와주고 싶었다.
까사로 내려가는 길에 발견한 햄버거집, 입이 좀 심심한 상태긴 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생각보다 좀 비쌌다. 이런 건 참는 것이 배낭여행자의 삶. 호세는 호기롭게 햄버거를 주문하더니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옆에서 기다리는 친구껀가 보다 하는데 나를 주네?
“네 친구 꺼 아니야? 친구 안 먹어?”
“쟨 안 먹어. 너 먹어”
헐. 쿠바노에게 맥주에 햄버거까지 얻어먹다니. 사랑과 전쟁을 찍은 매력이 뭔가 했는데 한국 여자들이 좋아할만했다 그의 매너는.
근데 호세가 차메로 덕분에 살사 가르치며 돈은 꽤 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물 쓰듯 돈을 쓸 줄이야.
‘근데 햄버거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오늘 번 돈 다 쓴 거 아니냐 호세야?’
속으로만 질문을 던지고 내일은 내가 맥주라도 사줘야겠군 생각하고는 더는 그를 못 보고 트리니다드를 떠난 현실이 참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