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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진짜 여행을 하고 있는 건가?

혼자 남겨지기 싫어 나도 떠난다

by 신유


까사를 옮기고 별스럽지 않은 며칠을 보냈다. 난 주로 여행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을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보며 한다. 간혹 몇 장의 사진만 남은 날은 그 며칠을 다 그려내긴 어렵다. 그래서 단조로운 쿠바의 거리 사진을 보며 일상적인 그저 그런 하루를 보냈다고 여기기로 했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뚜렷한 목적(SNS나 블로그에 올리려고 찍는 사진) 없이 사진조차 찍지 않는 날이.


예전에 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언니는 블로그를 하려고 여행을 하는 거야 여행을 하다 보니 블로그를 하는 거야?”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내가 기계적으로 모든 일상과 음식, 그리고 수시로 사진을 찍는 이유가 블로그 때문인가? 아니면 여행을 하면서 남기고 싶은 사진을 찍다 보니 블로그를 하고 있는 것인가? 처음엔 단연코 후자였다. 여행을 하다 보니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고 그 여행의 기록을 블로그에 남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블로그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로잡혔던 것 같다. 그리고 점점 더 상세하게 모든 순간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윽고 배낭여행 시작한 지 10년 만에 하루에 한 장 또는 한 장의 사진 조차 안 남긴 날이 온 것이다.


내가 진짜 여행을 하고 있구나.
내가 여기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고 있구나.


일기를 쓰지 않기에 사진이 없는 날은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 어때? 그렇다고 없던 날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쿠바 여행의 마지막 며칠은 그냥 그렇게 보냈나 보다 하고 마는 거지.




나의 5번째 쿠바 아바나 까사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테라스였다. 아침에 나와 여기서 파란 하늘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벤치 하나가 있었는데 쿠바 국기처럼 색칠해놔서 기념사진 찍기도 좋고!


까사의 3층 테라스


조식을 챙겨 먹지 않아 가끔 이렇게 커피 한 잔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서 가져온 후안발데즈 커피는 내가 만난 쿠바 사람들은 다 좋아하더라. 별 것 아닌 커피 나눔이지만 저 커피를 챙겨 오길 참 잘했어!


까사에서 마신 후안발데즈 커피


커피를 마시고 아바나에서 알게 된 쿠바 친구 집에 갔다. 우리 까사에서 코너만 돌면 나올 정도로 가까운 집이라 구경삼아 가봤다가 얼떨결에 점심상까지 받게 되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점심상은 무려 2시간이나 걸렸다. 까사를 하는 집이라 그리 없이 살진 않던 이 집은 한창 집 내부 공사 중이었다. 거실부터 방까지 모두 공사 중, 먼지가 날리는 주방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가 차려주는 쿠바식 밥상을 기다렸다. 그리고 한 접시씩 담긴 레알 쿠바식 밥상! 바로 저 밥을 덮은 갈색의 콩 요리 때문에 2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쿠바식 밥상


벌써 초저녁. 동네 마실이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특히나 콩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는.


까사 3층 테라스에서 본 일몰


붉은 일몰의 끄트머리를 까사 테라스에서 보고 라면으로 속을 달랬다. 역시 난 쿠바식은 입에 안 맞나 보다. 한국의 닭 한 마리 비슷하게 나오는 닭이 들어간 수프는 맛있었는데.


다음날 전날부터 배탈 났던 영의 속을 달래기 위해 수프나 부드러운 밥 종류를 먹기 위해 나왔다. 배앓이를 하는 것도 모르고 쏘다녔으니 어찌나 미안하던지. 까사 주변에서부터 내 기억을 더듬어 이동했다.



토마토 수프 되나요?


메뉴에 없는 음식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잠시 후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밥이 들어간 리소토를 하나 주문했다. 영은 요거트를 주문했는데 제품 요거트가 나와서 어리둥절. 리소토는 남겼지만 토마토 수프는 그래도 절반 이상 먹은 영. 다행이다.


우린 내일 둘 다 아바나를 떠난다. 난 아직 5일 정도 남았고 영은 떠날 날이 온 것이다. 개인적인 말 못 할 사정도 있었고 꽤 긴 기간 동안 동행 특히 영과 함께해서 그런지 혼자 있기가 싫었다. 다른 도시에 가도 혼자 지낼 확률이 높았지만 그래도 괜스레 아바나에 있는 것이 싫었다. 요 며칠 살사 추러 잉글라테라 호텔에 가지도 않았다. 살사 권태기인가?


예전엔 혼자 잘도 돌아다니고 혼자 여행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에라 모르겠다. 3년 전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아이들이 얼마나 컸나 보러 가야겠다. 아바나에서 그나마 만만하게 갈 만한 곳이 트리니다드니까.


까사에서 먹은 처음이자 마지막 조식


마지막 날 아침엔 조식을 주문해 먹었다. 1인 5쿡이면 보통 쿠바의 까사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다. 배낭여행만 해오던 나에겐 조금 비싼 편이지만 까사 주인이 친절하다든가 뭔가 잘해주고 싶을 때는 떠나는 날이나 그 전날쯤 조식을 주문한다. 사실 우리가 조식을 주문한 이유는 여기서 일하는 아미가(청소와 조식 담당)와 친해져서였다. 전날 미리 조식을 달라고 하면 다음날 원하는 시간에 준비해주는 시스템, 까사 주인이 자기네 까사 조식에는 햄과 치즈도 나온다며 아주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 맛있어!


택시를 기다리는 우리

우리는 30분~1시간 차이로 떠난다. 영은 공항으로 난 트리니다드로. 난 4일 후인 30일쯤 아바나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다시 오면 여기 또 묵어야지.


정말 생각보다 오랜 기간 같이 있었던 영미. 내가 싸돌아다니느라 혼자 있던 시간도 많았는데도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었던 영미, 명랑한 자기의 목소리가 새삼 그립구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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