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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의 5번째 까사

배낭여행자의 우여곡절은 계속된다

by 신유


쿠바 여행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나의 쿠바 아바나 4번째 까사는 주변에 먹을거리 파는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난 이 까사가 좋았다. 통풍도 잘 되고 방도 넓고 침대가 엄청 커서 굴러다녀도 될 정도였다. 이틀을 자고 삼일째 밤에 까사로 들어왔더니 까사 관리하시는 아줌마가 내일 방을 옮겨야 한단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도 많이 옮겨 다녀서 첫날 들어오면서 까사 주인에게 재차 확인까지 했는데??


이 방에서 쭉 지내도 되는 거지?


이렇게 말이다. 근데 내일 방을 옮겨야 한단다. 우선은 알았다고 하고 다음 날 짐을 챙겨 다른 층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라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가는 길에도 같은 컨디션의 방이냐 물었고 맞다고 하던 아주머니, 그러나 방은 크기만 같았지 전혀 다른 컨디션이었다. 트윈베드도 아니고 더블베드에 퀸 사이즈도 아니었다. 게다가 화장실도 전 방보다 작았다.


노노노노!!!!
환불해줘요!!!!


입에서 노노노노만 나오더라. 영과 이야기를 했는데 이 예상치 못한 방 교체도 모자라 방 컨디션은 더 안 좋고 해서 그냥 까사를 바꾸는 걸로 결정했다. 환불을 안 해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쿨하게 환불해주는 까사 관리자. 가까운 와이파이 존으로 가서 에어비앤비에 접속, 후다닥 까사를 옮겼다.


쿠바 여행 나의 5번째 까사


새로 얻은 까사는 다행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그리 멀지 않았다. 까사는 3층에 있었는데 전 까사 보다는 방도 작고 침대도 작았지만 예쁜 테라스가 있어 괜찮았다. 석호필에게 까사 문제 때문에 조금 늦는다고 말해뒀고 약속 시간에 맞춰 산타 마리아로 가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햄버거를 들고 산타 마리아로 가는 T3 버스 탑승! 사실 산타 마리아엔 그리 가고 싶지 않았는데 영과 석호필이 자꾸 같이 가자고 해서 엉겁결에 따라나섰다는.


40분 정도 만에 도착한 산타 마리아, 쿠바 아바나에서 가까우면서 갈 만한 바닷가가 바로 여기다. 버스에서 내려서 해변가로 갔는데 이 따끔한 기분은 뭐지? 모래바람인지 뭔지 때문에 종아리가 따끔따끔했다. 너무 따가워서 바람을 등지고 선 채로 계속 발등으로 종아리를 쓸고 있었다.


파도가 몰아치고 모래바람이 불던 쿠바 산타 마리아


결국 우린 너무나도 거센 파도와 모래바람 때문에 그냥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셋다 같은 생각이어서 다행이었다.


시무룩한 영, 내 발 그리고 아바나로 갈 T3 버스


힝.... 속상해!!


영은 쪼그려 앉아있고 난 내 발 사진을 남기고 있는 사이에 T3 버스가 왔다. 정말 해변만 보고 모래 바람 실컷 맞고 10분 안에 결정해서 다시 돌아가기로 한 거니까 아마 우리가 타고 온 그 버스일 게다.


참고로 T3 버스 타고 다시 아바나로 돌아갈 때는 사람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시간은 피해야 한다. 사람 많아서 줄이 길면 한 두대는 그냥 보내게 되는 수가 있으니.


한 것도 없는데 배꼽시계는 항상 정확하게 울려댄다. 오전부터 숙소 옮기고 산타 마리아 간 시간도 이미 오후였기 때문에 허기가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엔 새로 생긴 조금은 비싼 일식당으로 갔다. 양이 많은 곳이라 셋이서 두 가지 음식을 주문해도 되었다.


일본 식당 돈가츠 덮밥과 일본 라멘


그리고 디저트는 새로 옮긴 까사 옆의 어느 민가에서 팔전 돼지바 느낌의 아이스크림, 어찌나 홈메이드 느낌이던지. 그래도 맛있으면 그만!


쿠바 홈메이드 아이스크림


모로 요새로 일몰 보러 가기 전 까사로 돌아와 아까 까사 주인이 주겠다고 했던 쿠바 리브레를 마셨다.


웰컴 드링크, 쿠바 리브레!


내가 이 까사에 몇 달 후에 와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았던 시절. 콜라가 부족했는지 럼이 절반 이상 들어간 것 같은 쓰디쓴 칵테일을 마시며 영과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결국 마시다 말았다)


까사의 웰컴드링크 쿠바리브레


다시 만난 석호필과 T3를 타고 모로 요새로 갔다. 아바나에는 시티투어버스 두 종류 T1과 T3가 있는데 하루 종일 탔다 내렸다 할 수 있다. T3는 모로 요새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산타 마리아와 엮어서 모로 요새까지 하루에 다녀오면 딱이다.


쿠바 모로요새의 일몰


나에겐 모로 요새만 세 번째, 이 날의 모로 요새는 구름이 넓게 퍼져있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1월의 쿠바가 주는 시원한 바람까지 상쾌하고 좋았다. 운이 좋아 그 구름을 뚫고 지평선으로 넘어가기 전의 해를 볼 수 있었다. 붉디붉은 일몰을 보고 있자니 어찌 보면 오늘 산타 마리아에 발만 찍고 온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하며 이 일몰이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잉글라테라 호텔의 살사 머신 (흰색 모자)


까사에 돌아와 셋이 피자를 먹고 럼을 마시다가 우연히 석호필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발견했다. 테라스에 있던 조명이 스피커도 되는 이 신기방기함이란! 쿠바도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신문물이 이만큼이나 들어와 있었다.


우린 적당히 럼을 마신 후 잉글라테라 호텔에서 칵테일 한 잔씩 더 했다. 석호필의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기분도 좋고 해서 오랜만에 따까냐(구두쇠)인 내가 쏜다!! 칵테일 사는데 급 대모 미란다가 자기 꺼는 없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그녀의 칵테일도 한 잔 더. 갑자기 훅 들어와서 거절하지도 못했다. (그 후론 단호박 거절!)


뭐 가끔 이렇게 하루의 식비를 한 방에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것에서 아끼면 되니까.

석호필 안녕~~ 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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