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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는 이제 그만!

쿠바 아바나 까사, 어디까지 가봤니?

by 신유


메뚜기 자리밖에 없어


학창 시절, 도서관에 자리가 없을 때 들었던 말이다.
도서관이 만석일 때 주인 오기 전 빈자리에 있다가 주인 오면 또 다른 빈자리로 가야 하는, 그래서 메뚜기라고 했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 원하지 않았지만 3년 만에 온 쿠바는 나에게 메뚜기 생활을 안겨줬다. 1월이 성수기이기도 했고, 미리 예약도 안 했으며, 나름 에어비앤비 슈퍼 호스트나 저렴하고 괜찮은 까사(숙소)를 구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중간중간 동행자가 계속 바뀌었다. 보통 쿠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아바나의 경우 여행 초반 며칠 아니면 마지막 며칠 동안만 여행하기 때문에 아바나에서만 체류하는 나와는 며칠의 동행만 가능했다. 정말 여행 기간이 짧아서 아바나만 여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Y도 떠나보내고 영미(이하 영)를 만났다. 아마 아바나에서 가장 오래 같이 지낸 친구였을 게다.


까사 요반나에서 하루 묵을 때 처음 인사했었는데 아리아나가 “영이 이 방 방장이야”라고 해서 난 바로 언니라 불렀다. 사실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마흔 가까운 나이인데 보통 혼자 여행 온 분들은 싱글이 많기 때문에 나보다 대부분 나이가 어렸다. 고로 당연히 나보다 어릴 줄 알았는데 언니라고 해서 놀라긴 했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연장자는 언니라 부르는 게 상호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호칭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며 가며 보다가 같은 돈이면 편한 개인룸에서 좀 더 나은 매트리스에서 지내고 싶다 하여 방을 같이 쓰기로 했다.


까사를 같이 쓰기로 한 전 날에 “살사 수업받는 거 봐도 돼요?” 하던 영. 살사 학원에 와서 살사 수업 후반부를 보고 같이 말레꼰으로 가서 쭉 걸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일몰을 보는 그곳까지. 별 달리 말을 하지 않아도 편했던 영. 같이 일몰 보고 같이 비에하 광장에 가서 Y의 마지막 밤을 함께했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그리고 다음 날, 난 배낭을 메고 영은 캐리어를 끌고 예약한 까사로 향했다. (벌써 아바나에서만 4번째 까사)


영(미)과 함께한 말레꼰
비에하 광장의 밴드, 엘 끌라베


새로운 까사는 전망부터 방 크기, 침대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심지어 화장실 크기까지! 가장 말레꼰과 가까웠던 까사. 등대와 바다가 살짝 보이기도 했던 당시는 가보지도 않았던 혁명박물관 바로 옆 까사였다. 까사 주인도 쏘쿨! 1인당 10쿡이니 도미토리 까사보다 낫지 않은가? (조식은 불포함)


영과 같이 지낸 쿠바 아바나 첫 까사


우린 심심하기도 하고 뭐할까 하다가 네일과 패디큐어 하러 길을 나섰다. 난 손톱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서 패디만 하기로. 쿠바 아바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네일숍이다. 간판 떡 하니 걸고 네일숍이라고는 안 쓰여있고 어떤 집 같은 곳 또는 상가가 즐비한 거리에 창문이나 문이 열린 채로 매니큐어가 많이 달린 책상이 보이면 거기가 네일숍이다. 물론 어떤 정도의 스킬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어찌하여 발견한 네일숍, 10쿡이라고 해서 좋다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좀 비싼 편이었다. 5쿡에도 가능하다던데 내가 그 가격에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5쿡짜리 였을지도 모르겠다.


거리의 네일샵에서 받은 패디큐어


이 아미가?는 나랑 동갑이었다. 근데 곧 할머니가 된다고!!! 뭬야??!!! 15살 딸이 임신을 했단다. 자긴 할머니가 되기 싫다고 했던 아미가. 그래도 손주 나오면 물고 빨고 할 테지. 옆에 있는 아이들은 그녀의 아들 둘. 나이를 따져보면 이 아미가도 일찍 결혼한 것 같았다. 색을 고르다 보니 영과 같은 걸로 했다. 영이 먼저 하고 내가 나중에 해서 난 말릴 시간이 부족. 내 신발은 발을 잘 넣어야 하는 신발이고 영꺼는 여유가 많은 신발이라 영과 신발까지 바꿔신었다. 쿨내 진동하는 영이 좋았다.

​​여담이지만, 영은 큐티클 제거하다가 피를 봤다. 여기 전문가가 아니었어. 그리고 내 패디큐어는 다다음날인가? 하나가 통째로 없어졌다. 그래서 다시 가서 AS 받고 왔더라는. 물론 그냥 해주던 아미가.


치맥과 스리라차 소스


조촐하게 치맥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 적당한 수다와 적당한 분위기. 이때만 해도 영에게 영미씨라고 부르며 존댓말로 대화할 때였다. (전날만 해도 언니인 줄 알고 언니라 불렀어서;;) 살사 학원 구경 왔을 때 뒤바뀐 걸 알았다. 첫 쿠바 여행에 비하면 이번 쿠바 여행은 동행복이 좀 있었다. 매번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


여행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말을 가장 조심해서 해야 한다. 나름대로는 존댓말과 반말 쓰는 것에 대해 조심하는 편인데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을 막 놓지 않는 것. 말을 편하게 하게 되더라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하는 것. 그리고 ‘너’라고 되도록 지칭하지 않고 ‘자기’라고 하는 것이 내가 사람을 만나며 말할 때 주의하는 것이다. 물론 허울 없이 지내는 사이라면 다르지만 보통은 그렇다. 간혹 나이가 많다고 바로 말 놓는 사람들이나 말씀 편하게 하시라고 했는데 그럼 그럴까 하고 바로 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경험적 입장에서 보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 말을 놓고 싶어서 그 말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영과의 첫날, 첫 까사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영이 떠날 때 까지는 메뚜기 짓 안 하겠거니 했는데 그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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