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유 Sep 25. 2021

장기체류자의 밥상머리 인간관계

쿠바에서 밥 해 먹기란?


쿠바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1월에 쿠바 여행을 하고 3월 중순에 왔는데 벌써 4월, 인사도 할 겸 겸사겸사 1월에 머물렀던 까사 중에서도 거기서 일하는 아미가와 농담 따먹기를 하곤 했는데 그녀를 만나러 간소한 선물을 들고 까사에 찾아갔다. 콜롬비아 커피와 한국 믹스 커피를 선물로 줬더니 고마워하던 아미가. 2개월 만에 만난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줬고 내가 사는 집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흔쾌히 우리 집까지 와서 보고는 집 크기에 비해 비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원베드룸에 작은 거실 주방 있는데 한 달에 400달러 정도니 올드 아바나에서 거리가 좀 있던 위치까지 감안하면 비싼 편이긴 했다. 그러던 중에 그녀를 만났던 그 까사 주인이 방을 내놓는단다. 어라? 그럼 내가 들어가면 안 되나? 싶어서 물어보니 집주인에게 물어본다고. 게다가 가격도 엄청 저렴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일이 진행되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하는 날, 캐리어에 이것저것 택시에 싣고 옮길 까사로 이동했다. 고맙게도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친구가 도와줘서 순조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 달 지내고 이사했지만 많은 추억이 남아있기에 나름 정을 한 스푼 남겨두고 떠났다.



비닐장갑도 없어서 맨손으로 김치를 버무리고 손이 따끔따끔 아렸지만 흰쌀밥에 김치, 계란말이 하나에 맛있는 한 상을 먹을 수 있었던 소박한 추억 하나, 혼자 먹는 밥보다 손은 많이 가도 여럿이 먹는 밥에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콜롬비아와 멕시코에서 만났던 인연이 쿠바에서도 이어져서 집에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도 다 좋은 추억이었다. 이게 뭐 별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식재료 구하기 쉽지 않은 쿠바에서는 밥 차리는 일도 일인지라, 다행인 것은 이때만 해도 식재료 구하는 것이 많이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다. 상점에 물건이 넘쳐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항상 차있던 시절이라고나 할까? 지나고 보니 이때가 가장 풍요로웠구나 싶더라.


처음 쿠바에서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갔던 날을 기억한다. 쿠바에 있는 한국인들끼리 한 끼 밥 먹는 자리였는데 본인이 먹을 쌀을 가져가야 했다. 이게 뭐지? 했지만 그만큼 쿠바에서는 내가 사야 하는 생필품을 내가 원할 때 못 살 수 있기 때문에 첫 경험이라 생경했지만 살다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쌀이 떨어지면 쌀파는 상점을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이고, 한국 쌀과 같은 둥근 쌀을 사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시장에서 배추를 찾는 것처럼 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집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시장에서 배추를 발견했다. 쿠바에서 배추는 겨울부터 봄까지만 나온다. 간혹 늦게까지 나오면 6월까지도 나오긴 하는데 드물다. 김치 없이 못 살게 된 나이가 되어 발견한 배추에 호들갑을 떨며 지인에게 전화로 시장에 배추 있다고만 알려주면 될 것을 그걸 또 필요하냐 물어보고 사서 가져다주었다. 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추를 낑낑 거리며 들고 가면서도 그때 아니면 시장에 배추가 없을 수 있으니 사다 줘야지 하고는 들고 2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갔었다. 배추값을 받긴 했지만 지나고 보면 왜 그리 미련했는지.


우리 집에 와. 밥 해줄게. 밥 같이 먹자.


밥 한 끼, 찬 없는 소박 하디 소박한 식사지만 그래도 혼자 먹는 밥보다는 여럿이 먹는 밥 한 끼가 더 행복했다. 밥 상 차리는데 더 오래 걸리긴 했지만 콜롬비아에서도 생판 모르는 여행자에게, 살사 학원에서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어요”라는 말을 건네고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었다.


쿠바는 조금 달랐다. 밥 한 끼 그게 뭐 별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점점 쫌스러워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러지 않았는데 동전 하나도 반으로 쪼개는 수준이다. 더운 나라에서 더운 부엌에서 밥 하고 요리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첫 달 살던 집에서는 안 그랬는데 이사를 가면서 나름 장기체류자의 길로 들어서버렸다.


배낭여행만 십 년 가까이하다가 콜롬비아에서 몇 달 살다 왔는데 생각해보니 콜롬비아에서는 한국인과 친하게 지낼 일이 없었다. 반대로 쿠바는 좁디좁은지라 또 내 성격상 금방 친해지니 허울 없이 대한다는 것이 이렇게 될 줄이야. 밥상머리 인간관계가 정을 나누는 일이기도 했고 그로 인해서 생긴 부작용도 좀 있었다. 한참 지나서 생각해 보면, 쿠바에서도 현명한 사람 몇 명이 보였다. 절대 자기 사생활 이야기 안 하는 사람, 속 마음이나 심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 아무리 친해도 말 절대 놓지 않는 연장자, 그들이 뭔가 경험한 것이 있었으니 그랬을 테지. 그들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뒤늦게야 깨달았다. 이것도 다 인생 수업일 게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사람들을 여럿 초대한 적이 있었다. 이 한 상을 차리느라 아침부터 고기를 사러 돌아다니고 진땀을 뺐다. 저 고기를 사 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상온에 두고 판매하는 돼지고기를 사서 제육볶음을 만들고 혹시나 모자랄까 봐 소시지 야채볶음도 만들고 파전에 상추 무침까지 해서 한 상 차려냈다. 당시 내 집에는 냉장고 없이 미니바 두 개 만 있었는 데다가 부엌과 거실이 정말 멀어서 살림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차림 자체가 정말 힘들었었다.



별 것 아닌 한 상이지만, 쿠바에서 이 정도 차리려면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우선 배추 구하기 힘든 곳에서 만든 김치부터 그렇고 모든 한식 재료는 해외에서 사 와야 하기에 갖고 있는 것을 야금야금 아껴가며 써야 한다. 나도 장기체류자이기에 한 푼 두 푼 아껴 써야 했던 상황인지라, 어쩔까 하다가 친하게 지내던 나보다 훨씬 전부터 쿠바에 살던 당시 친해졌던 친구에게 넌지시 물었다. 쌀도 가져오라고 하는데 여기 문화는 어떤가 싶어서 조언을 구한 셈이다.


“고깃값 받으면 좀 그런가? 아무래도 너무 쫌스럽지?”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는 그 친구의 말에 고깃값만 N분의 1로 받았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던지. 아무래도 쿠바에서는 먹고사는 일 자체가 일이기에. 근데 받고 나서 두고두고 후회했다.


사실 여행을 하다 한국인들 만나서 같이 밥 해 먹고 그러면 재료비는 다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 보통인데 다들 나보다 어리기도 했고 고민하다 물어본 것이었다. 어리고 나이 먹고 상관없이 다 똑같이 여행 또는 장기체류자 입장이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돈은 동등하다. 다 어렵게 번 돈이니까. 아무리 부자라도 여행자는 여행자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올라간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


객지에서 제대로 한식이나 챙겨 먹을까 싶어서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취지에 모인 한 상차림. 담가놓는 김치 절반이 훅 줄어버렸지만 한국 김치 같다고 맛있게 먹어줘서 기분은 좋았다. 사실 고기보다 김치가 더 귀한 나라인데 당시에는 한식 재료고 뭐고 그런 건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다. 쿠바에 온 지 한 달이 겨우 지났었고 귀한 고춧가루도 쿠바 오자마자 너무 마음씨 착한 여행자에게 나눔으로 받는 것이어서 이렇게라도 나눴으니 그분에게서 받은 마음을 또 다른 이들에게 나눈 느낌이 들었달까? 어찌 삶이 항상 쌍방향 기브 앤 테이크가 되겠나. 나눔은 돌고 도는 거지.


10년의 배낭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내가 받은 은혜는 나보다 더 못한 사람에게 베풀자다. 보통 내가 만난 좋은 분들은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베풀어주신 분은 그게 본인이 바라는 바라고 말씀하신다. 그래 그게 인생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페르소나를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