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냐, 즐거움이냐
갑자기 생각난, 얼마 전의 약국 일화.
혈압, 당뇨약을 우리 약국에서 조제해 가시는 50대 여성분이 있다. 항상 귀여운 웰시코기 한 마리와 함께 등장하시는 이 분은 상당히 크고 높은 목소리의 소유자이시다. 처음에는 그 큰 발성 때문에 화를 내고 계신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그저 목소리가 크실 뿐 상당히 유쾌하고 귀여운 분이셨다. 어느새, 다른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는 잠시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이 분이 얼마 전 또 처방전을 가져 오셨기에 보니, 피오글리타존이라는 당뇨약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었다. 최근에 당화혈색소가 1% 정도 더 올랐다고 했다. 이제 먹는 당뇨약을 세 종류나 드시게 된 것인데, 여기서 또 혈당이 조절되지 않으면 인슐린이나 다른 주사제를 맞아야 할 수도 있고, 다른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위험도 더 높아지게 된다.
나는 환자분께 여름철에는 특히 과일과 음료를 많이 섭취하면서 당이 확 오를 수 있다고 말씀 드리면서, 평소 식이 조절에 소홀했다면 이젠 정말 마음을 잘 잡고 생활습관을 교정해야만 한다고 알려 드렸다.
"응~ 알겠어! 뭐 어렵지 않지!" 환자분은 호탕하게 대답하셨고, 날이 더우니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며 잠시 내려 놓았던 장바구니를 쥐어들고 돌아서셨다.
그 때, 옆 마트에서 가득 채워 오신 그 장바구니 위로 뾰족 솟은 무언가가 보였다.
하얗고 둥근 모서리를 보니 영락없이 새송이버섯이었다. 당뇨약을 추가로 받으신 만큼 식단에도 조금 더 신경쓰기로 마음먹고, 저녁에 버섯요리를 해 드시려는 모양이었다. 일부 특정 버섯을 제외하고는 식품으로서의 버섯 자체가 혈당 조절에 특효인 것은 아니지만 탄수화물이나 지방질 많은 반찬을 대체하기에는 훌륭한 식품이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한 마디 건네 드렸다.
"오늘 버섯 반찬 해 드시려나봐요! 너무 잘 하고 계시네요."
그러자 그 환자분이 으잉? 하는 표정으로 나와 장바구니를 여러 번 번갈아보시더니, 갑자기 으하하하 웃으시며 그 버섯 뭉치를 나에게 내밀어 보여주셨다.
"아 이거? 오늘 구워 먹을거야! 구워 먹으면 엄청 맛있대!"
그렇지. 버섯은 구워 먹으면 맛있지. 하지만 그 분이 들어올린 뽀얗고 말랑말랑한 동그라미는
마시멜로였다.
"아이고오!!!!! 마시멜로라니요!!!!!"
지금까지의 식이습관 교육이 무색해지는 순간,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는 나와는 달리 조금의 타격도 입지 않고 헤헤 웃고 계신 환자분을 보니 나도 맥이 탁 풀리면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마시멜로는 어쩌다 한번, 먹게 되더라도 꼬치를 줄줄이 꿰어 먹지는 않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은 뒤에야 환자분을 보내 드릴 수 있었다.
* 가치관의 차이가 있겠지만, 엄격한 생활습관 교정에 대한 강박으로 힘들어하기보다는, 가끔 몸에 해로운 행동을 하더라도 유쾌하게 삶을 즐기는 모습이 때로는 더 좋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스스로의 일상을 무너뜨리거나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정도로 선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은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