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서브남주 얼굴에 내 꽃이 아른아른 겹쳐지게

원빈오빠 말고 원이오빠

by 한꽃차이

온갖 서사를 거쳐 결국은 여주인공과 이루어지는 메인 남주 vs 그 과정을 가슴 아프게 짝사랑하며 지켜보는 서브 남주. 가을동화의 송승헌과 원빈을 예로 든다면 좀 올드할지도. 그러나 원빈만큼 강렬한 대사를 남긴 서브 남주도 드물 것 같다.


"얼마면 돼" 냐는 원빈오빠보다 더 리치한 재벌 3세이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원이오빠. MBC드라마 '바니와 오빠들'의 서브남주다. 여자주인공이 "오빠 같은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할 정도로 다정함과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스윗한 남자다.


물론 여자주인공은 딱 거기까지다. 캠퍼스 로맨스라서 20대 초반의 나이이니 성품이 아닌 매력에 끌린다. 물론 나이 먹는다고 성품 보는 눈이 꼭 생기지는 않지만 경험으로 앗 뜨거 할 수는 있다. 아니 나는 어째서 여주의 관점이 아닌 딸을 둔 엄마의 심정으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가. 딸도 없는데 말이다. 시종일관 메인 남주가 마음에 안 든다.


남주는 여주를 롤러코스터 태운다. 진심과 다르게 말해서 화나게 했다가 간절히 사과해서 풀어지게 한다. 다른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니 지금 잡지 않으면 놓칠 것 같다. 까칠하다가 잘해줬다가, 연애경험 활용해서 스킨십으로 설레게 한다. 마음을 막 들었다 놨다 올렸다 추락시켰다 빙빙 돌렸다 놀이동산 같은 남자. 그래, 20대는 에버랜드에서 종일 놀아도 피곤하지 않으니까.


"그건 남성적 매력이 아니야. 그냥 성격 안 좋고 말 함부로 하는 거야."

"저렇게 꼬인 곳이 많으니 친구도 한 명밖에 없는 거라고!"

라는 말을 하고 싶어 근질대는 내 오지랖이 드라마보다 재밌다.


아빠가 사기를 당해 집이 어려워지자 여주는 280:1의 경쟁률을 뚫고 전액지원 미국유학에 합격한다. 다른 이유로 미국 가는(심지어 여주가 미국 가는 줄도 모르는) 서브남주 때문에 불안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메인남주. 귀한 내 외동딸 발목 잡힐 이 상황에서 여주 엄마처럼 차분하게 "네 마음 가는 대로 해."라고 할 수 없다. 워낙 쿨한 캐릭터인 데다 연기여서 저랬지 실제로는 저럴 수 없지, 그렇고말고.


아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말해보자. 눈을 들여다보며 꼭 잡은 손으로 진심과 진실이 전해지도록. "진정한 사랑은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거야." 못 믿어주는 태도는 안 변한다느니 믿어주는 남자를 만나라느니 하는 말은 꾹 삼키자. 말리면 더 마음이 쏠리는 법이니까. 생각해 봐. 말렸던 친구들 다 그 나쁜 남자랑 기어이 결혼하고 나랑은 멀어진 경험,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로맨스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상상을 불태울 일인가, 세상에. 역시 상상력은 꽃을 구상할 때도 혼자 놀 때도 나의 가장 큰 친구이자 조력자이다. 꽃일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토록 메인남주에 결사반대이니, 이왕이면 내 꽃이 서브남주네 집에서 나오는 게 만족스럽다. 나무랄 데 없지만 각인될 데도 없는 외모가 처음에는 말랑하고 뽀얀 딤섬처럼 그저 그랬다. 보다 보니 캐릭터에는 딱 어울리는 순딩한 이미지네, 나쁘지 않네, 하다가 점점 괜찮아 보인다.


서브남주가 여주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한 장면이다. 저 장면에 꽃이 없다면 아주 달랐겠지. 동그란 꽃들 사이에 뾰족하고 비싼 연핑크 클레마티스를 아낌없이 넣어 세련된 느낌을 더했다.

면접도 아닌데 굳이 1:3으로 다닥다닥 앉은 구도 나만 재밌는 걸까? 원래는 의자가 2:2로 있었을 텐데 가져다 앉은 거잖아, 촬영현장에서도 어느 게 나을지 얘기 나왔을 텐데 누가 무슨 말로 이긴 거지? 카메라 감독일까 연출 감독일까? 이렇게 또 나 혼자 상상한다. 설레는 장면에서 자꾸 웃어서 좀 미안하다. 주변에 벚나무가 없는데도 벚꽃 잎이 과하게 많이, 느릿느릿 나풀나풀 떨어지는 CG 때문이다.


멀리서 찍어도 통일감 있게 하얀 배경이 고급스럽다. 옷까지 톤을 맞추셨네요,라고 사진에 진심인 플로리스트는 스타일리스트에게 칭찬을 보낸다. 역시 화이트엔 퍼플 15~30%가 럭셔리 배합이다.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아 적당한 존재감! 핑크만으로는 덜 보이고 고급스러움이 덜하다. 보라는 어둡고 레드는 크리스마스 느낌 나거나 카메라에 초코색처럼 나올 수 있다.


이렇게 계속해서 꽃이 아른아른 나오게 찍어주신 카메라 감독님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꽃이 화면에 잘 잡히도록 만든 비결! 꽃작품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번에도 꽃 선택이 절반 이상이다. 드라마로 치면 캐스팅이랄까.


우선 옆에서 보았을 때 예쁜 꽃이어야 한다. 장미처럼 위쪽에서 볼 때 더 예쁜 꽃 대신 옆라인이 예쁘고, 배우 얼굴을 가리지는 않게 갸름하면서 청초할 것, 줄기가 굵지 않울룩불룩한 마디가 없을 것. 그렇다면 튤립과 클레마티스 배우가 이번 장면의 픽.


턱선까지 몇 송이 보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만들면 된다. 허리를 쭉 펴고 내 턱 높이에 한 송이 꽂은 후 그보다 위아래로 변주를 주면 적당히 겹쳐진다. 배우들의 매력이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링처럼.


"예쁘네"

여주가 야경이 예쁘다고 하자, 서브남주가 여주의 얼굴을 다정히 바라보며 한 말이다. 다들 여주를 보며 할 말을, 플로리스트는 내 꽃에게 속삭인다. "오늘도 예뻐."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감각이 없어서 꽃일을 오래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