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가 기분을 푸는 꽤 괜찮은 비법
수업에 오실 분들은 사별이나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우울감이 매우 높은 독거노인분들입니다. 꽃으로 이분들의 우울감을 어떻게 해결하실 수 있을까요?
노인복지관 강사 면접, 예상치 못한 질문을 만났다. 최선을 다해 대답했지만, 원했던 대답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생각하는 경력도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시를 읽어주고 나눔을 하는 수업을 하고, 꽃으로 위로를 주는 책을 쓴 것은 자격증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차 안, 찜찜함이 스멀스멀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고개를 몇 번이나 저어봤지만 끈끈하게 붙어 떨쳐지지 않았다.
60여 곳에서 2천여 명. 다양성과 양에 있어서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수업경력을 쌓아왔다. 이력서에 수업 외의 활동이 나처럼 많은 플로리스트가 또 있을까. 공간/방송/행사데코 어느덧 7년 차. 능력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일이 들어오면 일단 뭐든지 하겠다고 한 뒤 감당하며 능력을 키웠다. 작가, 유튜버, 커뮤니티 운영까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소통과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크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작고 나 닮은 열매가 쌓여왔다.
지나온 경력이 한 줄로 단정하게 서 있지는 않아도 나를 에워싸고 있다. 꽃으로 소통하는 사람. 예쁜 꽃으로 내가 빛나기보다는 꽃을 통해 누군가의 순간을 반짝이게 할 때 행복한 사람. 그런 내게 꽃클래스가 대부분 일회성이라는 점은 참 아쉽다. 한 번의 만남으로 꽃이 주는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는 어려우니까. 같은 분들을 대상으로 다회성 수업이 생기면 금액이 터무니없지 않은 이상 하고 싶어진다. 점점 가까워지고 더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수익보다 큰 기쁨일 테니까. 강사료도 재료비도 적은 이번 수업에 지원한 이유였다. 안정감에 목마른 프리랜서에게는 36번의 수업이 보장되는 것도 끌렸다.
다음날 점심때, 문자를 받았다.
[ㅇㅇㅇㅇ노인종합복지관]
면접 전형에서 불합격하셨습니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이 쭉 빠진다. 얼른 풀썩 누워 쉬고 싶어진다. 불합격이 주는 거절감이 달가운 사람은 없다. 이럴 때 마음을 달래는 플로리스트의 비법이 하나 있다. 오늘의 나를 꽃으로 비유하는 것.
이유는 뭐든지 좋다. 꽃의 모양, 색깔, 얼굴방향, 크기, 꽃말, 특성, 다 된다. 누가 심사할 것도 아니니까, 말 그대로 내 마음이다. '실망스럽다', '축 쳐진다' 같은 단어나 컬러, 날씨로 표현해도 괜찮지만 꽃만 가진 마법이 있다. 우위가 없고 장점이 떠오른다. 다 가진 꽃도 못 가진 꽃도 없다.
꽃 사진을 모아둔 폴더를 쓱쓱 넘겨본다. 누가 좋을까... 작은 꽃이라도 어둡고 싶진 않아. 그래, 너로 정했다! (포켓몬스터의 말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에너지까지 알겠지)
오늘 나는 톱풀꽃이야.
쌀알보다 작은 꽃들이 빼곡히 모여 은근한 조화를 이루는 귀요미 톱풀꽃. 초록 잎이 톱을 닮았다. 빨강, 주황, 노랑, 연분홍, 자주, 하양 - 여러 빛깔이 있지만 보라는 없다. 그곳에서는 보라를 원했던 거야. 괜찮아, 나에게는 이미 나만의 컬러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번 경험으로 보라도 어느 정도 갖춰둘 수 있어. 커리큘럼과 답변을 준비해 두자. AI에게 물어보고 책도 찾아보고 일단은 시작해 본다.
역시 실행은 힘이 나게 한다. 성장의 기회로 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모퉁이에 바람이 불어 들어 답답함을 덜어간다. 이번 수업이 아니어도 나는 꽃으로 많은 위로를 전하며 살아갈 테니. 톱풀의 꽃말은 가르침, 그리고 치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