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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Mar 27. 2022

내가 언제 죽는지 알 수 있다고?

유안 A. 애슐리《게놈 오디세이》

누구나 운명을 알고 싶어 한다. 언제부터 늙기 시작하는지, 언제부터 병이 생기는지, 그리고 언제 죽는지 항상 궁금해한다. 기술이 발달하고 삶을 편리하게 하는 각종 도구가 있지만, 여전히 유명 점집을 찾아가 사주팔자를 보고 심지어 전 재산을 털어 굿을 한다. 그만큼 사람들은 불확실함을 싫어한다. 내 운명을 나도 모르는 불안을 달래고자 여러 방법을 쓰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시간 낭비, 돈 낭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화려한 주술을 써도, 행운의 주문을 수천번 외워도 때가 되면 아프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과학자는 인간의 본능적인 불안을 줄이는 방법을 유전체에서 찾는다. 책 《게놈 오디세이》의 저자이자, 유전학자인 유안 A. 애슐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미지 출처: medicine.stanford.edu

"유전체에는 키, 몸무게, 머리카락 색깔, 눈동자 색부터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까지 한 사람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살지, 언제쯤 죽을지 유전체로 앞날을 대강 점칠 수 있다는 소리다. p.7"


한 사람의 개성은 모두 DNA에 담겨있다. 특유의 성격, 말투, 취향 등 감각적이라 생각하는 요소도 모두 DNA에 들어 있다고 애슐리는 강조한다. 그의 논리로 비추어 보면, 변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존재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특징이 무의식적으로 한 개인에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 현상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타고난 것 같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책 《게놈 오디세이》는 이러한 유전체의 특징이 어떻게 현실에서 활용되는지 실제 사례를 토대로 설명한다. 희귀 질환을 앓던 환자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해 치료하고, 가족력이 있던 환자의 유전자 중 형태가 이상한 부분을 발견해 미리 예방하는 등 마치 공상과학에 나올 법한 획기적인 치료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 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질환을 어떻게 유전체학적 관점에서 치료하는지 보여주면서, 앞으로 의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나는 인간 유전체라는 테마를 가지고 새롭게 펼쳐진 과학과 의학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하고자 한다. 그 안에는 유전체를 안 뒤 인생이 달라진 환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단순한 데이터가 현실적인 의학 정보로 연마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내가 경탄해 마지않는 유전체 연구팀들의 활약상도 소개하려 한다. p.13"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의학은 18세기에 머물러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대량생산, 획일화된 의학은 환자 개인의 상태를 무시하고 똑같은 약을 투여한다. A 질병에는 B, C 약물 주입, B질병에는 F, G 약물 주입처럼 규격화되어 있다. 그래서 같은 약을 써도 효과가 잘 듣는 환자가 있는 반면,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가 생긴다. 심지어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 책 《게놈 오디세이》는 개인의 유전체를 알면 자신에게 맞는 약물 처방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흔히 병원에서는 고혈압 환자들에게 대부분 같은 처방전을 써 준다. 사람들은 식습관이 다 다르다. 신진대사 상태도 제각각이다. 하물며 유전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같은 약을 먹어야 하는가? 만약 의사가 토씨 하나 안 고친 처방을 매번 그대로 복사하는 게 아니라 각 환자의 유전체를 보고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약과 용량을 찾아 줄 수 있다면 어떨까? p.51"


"징그럽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매일 의사들은 불완전한 자료만 가지고 환자마다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제약회사는 임상시험을 기획해 제품의 안전성과 약효를 나름대로 확인하지만 의사가 병원에서 만나는 진짜 환자들은 그런 테스트의 참여 조건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p.71"



예전에 읽었던 책 《나이듦에 관하여》에 따르면, 시중에 보급된 약은 '40대 건장한 남성'기준으로 제작되었다고 지적한다.《게놈 오디세이》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한다. 모두에게 통용되는 약은 없으며 유전체 검사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에게 맞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여전히 연구하고, 새롭게 개척해야 할 미지의 영역이다. 즉, 유전체 검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저자 애슐리는 "유전체 검사 비용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누구나 쉽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 안에서 병이 대물림되는 방식을 이해하면 진단이 한결 정확하고 수월해진다. 우리가 시작한 소위 '유전체 전체'전략의 최대 장점은 가족 중에 실제로 그 병을 앓는 구성원의 자료를 참고해 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는 변이형 유전자의 목록을 짧게 추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p.105"




애슐리는 "지금 우리는 유전자 치료의 황금기를 살고 있다."라고 언급하며 유전자 분석을 토대로 한 희귀병, 가족력 치료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자연의 "무작위적 선택"을 벗어나 드디어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 유전체를 고쳐 적고 치명적 오류를 바로잡을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유전체 분석은 또 다른 차별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요즘 과할 정도로 유행인 MBTI 성격 검사처럼, 유전자 하나로 개인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외향형이니까 항상 밝겠어, 저 사람은 감정형이니까 대충 둘러대서 말해야지 처럼 함부로 남을 단정 지을 수 있다. 혹은 영화 가타카처럼 유전자로 계급을 나누거나, 결혼할 상대를 찾는 데 필수 가입 조건으로 'OO유전자 우대'라는 항목이 추가될 수 있다.

나는 INTJ만 계속 나왔다ㄷㄷㄷ

유전체 검사는 분명 질병, 사망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치료법을 선택해 희귀병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개인의 존재를 규정짓는 수단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한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수한 '인간 병기'를 만들기 위해 활용될 유전체 변형 기준 또한 심도 깊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종족의 유전적 운명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것은 경이롭고도 두려운 일이다.
- 제니퍼 다우드나《크리스퍼가 온다》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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