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기웅 Aug 21. 2020

갯지렁이

얘네가 걔네가 되는 순간.

난생처음 낚시터에 갔다.

카운터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대여용 낚싯대를 빌렸다.

"사장님, 미끼는 어떤 거 있나요?"

"냉장고에서 갯지렁이 한통 가져가요."

갯지렁이들은 플라스틱 통에 담겨 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갯지렁이 여럿을 5000원에 샀다.


낚시가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였다.

낚시가 처음이다 보니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우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갯지렁이들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얘네들은 입으로는 바늘을 밀쳐내고 허리로는 피를 뚝뚝 흘려댔다.

'나도 살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얘네들의 입과 허리에 거듭 바늘을 끼우는 일이 몹시 미안하게 느껴졌다.


'갯지렁이의 허리를 뚫어야 물고기를 잡는다...'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유보하고 갯지렁이의 몸통을 바늘에 고정시켰다.

그래서 그 긴 몸뚱아리를 거듭 뚫어냈다.



몇 시간이 지났다.

"잡았다! 그물망 가져와!"

낚싯대가 무거워진 사람들의 환호가 여기저기 들렸다.

참내, 남의 낚싯대는 잘만 휘었다.

물고기는 남의 낚싯대만 물었다. 펄떡펄떡.

내 찌는 툭툭 건드리기만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내 낚싯대는 본체 안 하고 남의 낚싯바늘만 무니까 심통이 잔뜩 났다.

'한 마리라도 잡아야겠다...'

목표가 생기니까 신기한 일이 생겼다. 갯지렁이가 더 이상 불쌍하지 않았다.


걔네들의 허리와 입이 뚫리는 것이 미안했는데,

그런 생각은 고사하고 꿈틀거리는 것들이 그저 낚시 도구로 보였다.

바늘에 미끼를 끼우는 작업이 빠르고 정확해졌다.


나는 그날,

갯지렁이 10마리의 입과 허리를 뚫었고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다.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혼자 적는 메모는 많지만, 남에게 보여줄 만한 글 한 편을 만드는 건 늘 쉽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느린 호흡으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찾아와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작가명과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는 그 목걸이를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