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와서 어디 어디 가봤어?
연애초에 샤로프든에게 물었을 때, 우즈베크 사람들이 자주 가는 동대문과 이태원 외에는 과천대공원과 속초 바다가 전부였던 우즈베크 남편.
처음 한국에 와서 산 핸드폰 사진들만 봐도 이삭토스트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 친구들과 피자헛에서 피자 먹는 모습, 이마트 푸드코트 사진들이 전부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우즈베크 남편은 남자인 친구들과 늘 카페에 앉아 달콤한 음료를 마시는 사진이 전부였는데
죽어라 일만 하다 한국생활 5년 차에 나를 만나 결혼을 한 샤로프든은 한국생활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샤로프든은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했고 그 때문에 여행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이런 샤로프든에게 여행의 맛과 세상사는 맛을 알려주기 위해 서울을 시작으로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 부산 제주도까지 나조차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다니며 지금까지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여행 리스트에 늘 지워지지 못하고 있던 여행코스.
바로 한 번도 등산을 해보지 못한 남편과 등산을 하는 것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 갔을 때 우즈베크의 산은 나무가 없고 돌과 흙만 있는 산들이 많았다. 마음 같아선 설악산이나 한라산처럼 유명한 산을 보여주고 데려가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있어 시간을 낼 수 없을뿐더러 처음 산을 타는 남편인지라 쉬운 코스부터 올라가기로 결정했고 며칠 전 급 계획을 세우고 친정집 바로 앞에 있는 사패산을 오르기로 했다.
사패산은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 자주 오르던 산으로 어렸을 땐 굉장히 험하고 멀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올라가 보니 초보가 올라가기엔 딱 적당한 코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전날 눈도 살짝 내렸고 해서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동아리나 모임에서 온 사람들도 보였고 어린아이들도 많이 왔는데 무엇보다 정상에서 우즈베크 남자와 한국 여자 커플도 봐서 괜히 반가웠다.
등산할 때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 전혀 지식이 없는 남편을 위해 먼저 등산가방을 싸고 자신 있게 산을 오르는데 시작부터 경사가 엄청 가팔라 샤로프든에게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뒤로 걷는 방법을 알려주며 뒤로도 올라가 보면서, 올라가고 있지만 올라기지 않는듯한 발걸음으로 열심히 산을 타는 도중 옆으로 차들이 쌩 하고 지나가고 있었다. (500미터 앞에 절이 있는데 절까지는 차로도 올라갈 수 있다.)
기운 빠지는 시작으로 천천히 더 걸어 올라가다 보니 절이 보였고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위 하나가 보였는데 샤로프든에게 여기가 정상이니까 사진 찍고 얼른 내려가자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아이 둘 낳고 처음 하는 등산이라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고 예전에 이쁘게 신으려고 철없이 작은 사이즈로 등산화를 사는 바람에 결국 신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날도 발 아픈 거보단 운동화가 낫겠다 싶어 그냥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올랐더니 길이 꽤나 미끄러웠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한번 하기로 한 거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는 샤로프든의 말에 나는 이래서 뭘 해도 안되나 싶어 산이라도 제대로 올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오르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오르니 꽤나 듬직해졌었는데 아내에 대한 보호본능이 강한 우즈베크 남편이라 그런지 나를 격하게 잡아주려다 혼자 넘어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샤로프든은 등산하는 것이 무척 재밌어 보였는데 운동을 좋아해서 복싱을 다녔던 남편이 둘째가 태어나고 함께 하는 육아로 시간이 부족해져 그만두었던게 아쉬어질 찰나 등산은 멋진 경치도 보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신나는 일이었다.
나 또한 둘째를 낳고 허리가 많이 안 좋아졌음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도 따로 하지 않았는데 매일 집에서 아이들이 보채고 우는 소리를 듣다가 물소리 새소리, 산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니 허벅지와 다리는 무척 당겼지만 기분만큼은 다른 세상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처음 산을 오를 때는 안 쓰던 근육을 써서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싶으면서 후회막심과 돌아 내려갈 궁리만 했는데 30분 정도 지나니 아무 느낌이 없어졌고, 1시간 정도 올라가니 경치가 보이면서 몸이 풀렸는지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 멋진 경치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과 뜨거운 라면 국물은 여태 먹었던 맛 중 최고라고 말하는 우즈베크 남편이었고 신나서 사진을 찍는 남편을 보니 산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른 시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첫아이를 낳고 시어머니와 3년 정도를 함께 살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도 그렇고 어머님은 속마음을 표현하거나 내색을 안 하는 분이라 나는 아직도 어머님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이 같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부터 샤로프든이 한국생활을 행복하게 잘하는 모습들을 멀리 서라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좋은 곳에 가거나 샤로프든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행복함을 느낄 때 멀리 계신 어머님께 사진을 보내거나 영상통화를 거는 습관이 생겼고, 아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시는 시엄마의 미소를 보면 시엄마보다 사진을 보내고 먼저 전화를 건 내가 더 뿌듯하고 더 큰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정상에서 친정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려서 아이들에게도 산을 보여주고 나니 다 같이 등산한 것처럼 추위도 녹아내리는듯했다.
산을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보다 훨씬 빨리 내려왔는데 집 앞에서 식구들이 먹을 커피를 사들고 들어가니 오빠는 큰아이와 장난치며 놀고 있었고 둘째 아이도 하루 종일 먹기만 했다며 엄마도 안 찾고 잘 있어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등산을 하는 내내 샤로프든과 농담도 하고 앞으로 우즈베크 생활에 대한 미래도 이야기하면서, 멋진 경치도 보고 좋은 공기도 마시니 부부 사이 친밀감도 생기고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함께 할 수 있는 데이트로 다양한 운동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자전거 타고 서울까지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