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시어머니와 살고 있어요

미운 정드나 봅니다

by kelin

뭐야!!!!!!!!!! 무슨 짓이야!!! 아기 귀 뚫었어??


퇴근하고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려고 어머님 방문을 열었는데

아기가 귀걸이를 하고 자고 있었다

기 어 코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까무러쳤다

아기가 20개월 정도 됐을 때의 일인데 나는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엄마인 나에게는 말도 없이 자기들끼리 가서 아기 귀에 귀걸이를 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보통 어린아이들이 귀를 뚫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

예쁘니까 뚫는 것도 있지만 혈액순환이 잘 돈다는 말에 사람들이 많이들 뚫는다고 한다

나는 전부터 어머님이 귀를 뚫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싫은걸 직접 어머님께 말하지 못하는 나였지만 귀 뚫는 것만큼은 싫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

아기가 존재만으로도 이쁜데 굳이 아픈 걸 뚫어야 하는지. 혹시 염증이라도 생기면 그것도 걱정이고 항상 귀걸이 하는 것도 걸리적거릴 텐데 왜 굳이 뚫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곤히 자는 아기를 보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본인들 방식대로 고집하는 저 고집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남편도 같이 귀를 뚫으러 갔으니 남편도 시어머니와 한통속이라는 생각에 배신감도 들었다

남편은 처음엔 차근차근 이야기하려 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원망의 말들을 퍼부었고 아들이 며느리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있으니

시어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화내냐며 나에게 쏘아붙였다

남편은 그만하라며 중재하기 시작했다


싸우다 보니 2:1의 싸움이 된 것 같아

나는 너무 화나고 속상해서 문을 쾅 닫고 집을 뛰쳐나갔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딸아이의 이름도 시어머님 맘대로 짓고 가끔씩 꺾을 수 없는 고집을 부리실 때가 있는데 꾹꾹 참아가며 마음 한편에 쌓여가던 어머님에 대한 내 감정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날 나는 남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려는 내 노력이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집에 차마 갈 수도 없는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밤늦게 전화하니 엄마는 대번에 싸웠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쿨한 척 귀걸이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너네 시어머니 고집 정말 똥고집이다~왜 그런다니?

너 또 화내고 소리 질렀지? 샤로프만 난처했겠다~뚫으면 어때 ~화낼 일도 아니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잘 거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다 보니 밤에 불러낼 친구들도 없고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없었다

끊었던 술이 생각났지만 이 와중에 무슬림 남편과 사는 나로서 이건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았다

나는 그렇게 핸드폰만 쳐다보며 한참을 공원에 앉아있다가 조용히 그들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꼭 귀를 뚫어서 이렇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평소에 시어머니와 살면서 아기를 키울 때 서로 육아방식의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시어머니의 고집에 항상 애를 맡기는 입장이니 참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쌓여왔던 게 귀걸이로 터진 것이었다

아마 나는 그날을 벼루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귀걸이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이쁘다는 생각보단 어머님의 고집이 걸려있는 것 같아 싫다

애 봐주는 시어머니 없다고 하지만 애 봐주는 시어머니께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는 내가 너무 싫었다

당당히 할 말도 못 하는 나 자신이 나조차도 답답했고 마치 무언가 큰 죄를 짓고 을로써 살아가는 심정이었다


우리는 결혼하자마자 자녀계획은 새우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서 우리는 시어머니와 한국에서 의도치 않은 동거가 시작되었는데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니 평생 할머니를 모신 엄마를 닮아서일까

나 또한 그 팔자를 따라가나 싶어 두려움이 엄습해왔었다


친구들과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고

다들 산후조리원을 알아보고 있었지만 나는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가 있는 집에서 산후조리라니.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불편했기에 나 역시 산후조리원을 알아보려 컴퓨터를 켰지만 우리 형편엔 너무 비싼 돈이었다

출산휴가비를 받고 있었지만 우리가 시작할 때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살림을 차렸기에 비상금으로 꼭 쥐고 있어야 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하루를 케어를 받으면 남편이 막노동을 해서 버는 일당과 같은데 내가 쉬는 돈이랑 남편의 노동이랑 바꾼다 생각하니 갈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랑 살면 아빠는 무조건 다 해줬을 텐데.

아빠가 말한 현실이 이런 걸까 깨닫는 순간이었다

현실에 세계는 너무 매정하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기를 낳으니 더 예민해졌는지 남편에게도 짜증만 냈다


돈걱정 말고 산후조리원 가고 싶으면 가 괜찮아

괜찮긴. 그 돈이면.


하지만 나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말도 안 통하는 시어머니와 남편도 없는 한집에서 서먹한 산후조리를 할바엔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겨울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나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샤로프든~ 나아르 바이트 하기로 했어!

갑자기 무슨 아르바이트?

어차피 어머님이 아기 봐주시니까 나도 나가 돈 벌어야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날부터 친정집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붙어있으면 예민해져 무슨 사단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시어머님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갓난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으며 두 다리 쭉 뻗고 편안한 산후조리를 보낼 수 있었고 인생에 가장 달콤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아기 엄마가 왜 이러냐며 일찍 집에 가라고 했지만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으려면 시간은 칼같이 맞춰 들어가야 했다

내심 엄마도 딸이 잘 쉬는 게 좋았는지 매일 맛있는 음식을 해주었다.

엄마 밥이 이렇게 맛있었다니. 사람은 지나고서야 깨닫나 보다


어머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짜게 먹는 식습관부터 빨래할 때 수건은 따로 빨면서 운동화를 옷이랑 같이 빨고 기저귀 값 아끼려고 그러시는지 기저귀가 흥건해지도록 갈아주시지 않았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남편은 알겠다고 하고 어머님께 잘 전달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어머님과 나 사이에서 내편도 어머님 편도 아닌 너무나 중립적 이었기에 그래서 나는 어머님과의 싸움에서 항상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아기를 봐주신다는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남편과 아이 나로 이뤄진 우리 가족 사이에 무단 침입하여 우리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신혼부부 가족이 항상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나는 우리의 행복이 어머님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키워 준공은 없다는 게 우리 집 이야기인 것 같다


시어머니와 산지 2년이 넘은 지금 그 시간이 정말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한집에 살면서 출근하는 남편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 서로에 대해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

아이 때문에 시작된 시어머니와의 많은 의견 대립이 지금은 웬만한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아이도 크니까 덜 조심스러워졌는지 나도 유난을 덜 떠는 것 같고 서로에게 지친 건지 우리는 더 조심하는 관계가 되었다 서로 터지 할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도 서로 알게 된 것 같다

가까워 지려 애쓰지도 밀어내지 않는 평화로운 관계가 된 것 같다

그간 생활하면서 어머님의 단점을 따져보면 고집스러운 것 그것뿐이다

다른 모든 것은 솔직히 우리 엄마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도 많은데 시어머니라서 인정을 안 한 건가 싶다


처음에는 서로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핑계로 나는 어머님과 대화도 많이 안 하고 지냈는데 점점 우리는 필요에 따라 제스처를 써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고 지금은 어머님은 우즈베크어로 나는 한국어로 수다도 짧은 수다도 떠는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공감 이참 많이 간다

사람 일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나 보다

해결이기보다 회는 내가 내는 것이고 내 감정은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잘 살기 위해 스스로가 변하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그리고 경비아저씨 청소하는 아주머니 아파트 내에 우리 딸은 유명인 사다

주말에 휴일을 아이와 함께 보내려 밖에 나가면 그들이 말한다

할머니는 어디 갔냐고

할머니와 아이는 매일같이 껌처럼 붙어 다니며 산책하고 마트 가고 놀이터 가고

심심한 두 사람은 매일같이 천 원 샵에 출근해서 구경을 하고 천 원 이천 원짜리 장난감이 사 온다

퇴근 후에 오면 항상 하나씩 새로운 무언가가 집에 있다

시어머니가 한국생활의 무료함을 아이와 산책하고 물건 하나씩 사는 그 낙으로 사는가 싶다


얼마 전에 딸과 함께 주말에 친정집에 가려고 옷을 입는데 내가 찾던 재킷이 없어져

시어머니에게 물어봤는데 모른다고 하셔서 대충 아무거나 입고 집 밖을 나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어머님이 버선발로 찾던 재킷을 들고 뛰어오고 계셨다


아니 뭐하러.. 아무거나 입어도 되는데.....

ㄴ엗;ㅓㄹ;ㅣㄹㄹ;ㅣ더;ㄹㄷ지


한 번은 컴퓨터를 하며 어머님이 만든 쿠키를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운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어머님은 매일 쿠키를 구워 내 책상에 올려놓으셨다

어머님은 나에게 소소한 감동을 자주 주신다


나를 딸처럼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예의상인 건가? 아들한테 잘해주라고 나한테 잘해주시는 거겠지?

어머님의 마음은 잘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머님이 좋았다가 싫었다가 한다

다중인격인 건지. 언제는 남편보다 좋고 또 언제는 우리 엄마보다 난 것 같고 또 언제는 진짜 왜 저러나 싶다


어머님과의 삶은 편하면서도 불편하지만 이미 어중간한 우리 사이가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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