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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류 May 25. 2023

날마다 여행 중입니다.

어쩌다 보니 60개국...

지난 5월,

발칸반도 여행을 마치고 비엔나에서 리턴하는 비행기에서 남편과

 다음 여행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여행이란 늘 그렇듯이 누구에 거나 더할 나위 없는 설렘일 것이다.

준비할 때의 설렘.

떠날 때의 적당한 긴장과 설렘.

그리고 낯선 곳에서 맞는 매일매일의 또 다른 설렘.

그렇지만 내게 가장 큰 설렘을 주는 것은 리턴하는 비행기에서

다음 여행지를 찾아내는 그 순간이다.

나는 그것을 내 여행의 백미라고 감히 말한다.



다음 여행지는 푸른 눈의 풍요로운 호수 '바이칼'에서 7월의 야생화가 가득 핀

자작나무 숲길을 한가롭게 걸어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7월과 8월에 한 번씩 단 두 번만 진행하는 바이칼 투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진행할 수가 없다며 판매가 종료되고 말았다.

다음 순위로 생각했던 여행지가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탈 수 있는 포르투갈이었으나

가성비 때문인지 포르투갈 단독 상품은 없고 스페인 주연에 포르투가 조연으로 잠시 출연하는

상품이 몇 개 있었다.   

스페인의 남부와 주요 도시들은 십여 년 전에 제법 긴 시간의 자유여행으로 다녀왔기에

피레네 산맥에 겨울이 오기 전에 스페인 북부와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계에 위치해

유렵 최고의 여행지로  손꼽히는 피레네국립공원, 해발 2877m의 비조레산 전망대에 올라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산맥 아래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동물들과

피레네 산맥의 숨 막히게 아름다운 전경을 보기로 했으나

그 상품은 일 년에 6월 단 1회 진행으로 내가 같은 여행사의 바이칼 호수 진행을

기다리는 동안에  이미 종료되어 버렸다.

이 아쉬움이란......



차선은?

차선이라고 말하지만 여행에 차선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선택하는 여행상품이 차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 원했던 것을 찾지 못해 그 대신 선택되었다고 그것을 차선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나는 아직 다음 여행지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12월에 어린 왕자를 만나러 아프리카 28일을 다녀오자는 나의 요청에

남편이 이런저런 변명들을 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허리가 아파서.....

다리가 아파서......

허리가, 다리가 안 아프면 또 무슨 변명을 만들어낼까 궁금해진다.

제발 우리 생에 제일 젊을 때 가자고요.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세계지도를 펴놓고 우리가 다녀온 나라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가장 젊을 때, 가슴이 떨릴 때 우리나라에서 먼 곳, 여정이 힘든 곳을 다녀오자는 생각에

우리 여행의 대부분은 아시아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가까운 곳, 좀 더 편한 곳은 다리가 떨릴 때를 위해 아껴뒀다.


어쩌다 보니 그동안 60개국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이 오기 전 한 달 정도를 중남미 8개국을 돌고 오니

그 숫자가 훌쩍 자라 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많은 숫자일 수도 있으나 내게는 한참 부족한 숫자다.

나는 지금껏 전 세계의 나라가 200개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계지도는 237개의 국가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나는 이제야 결국 1/4 정도의 나라를 다녀온 셈이다.

내 소박한 목표는 전 세계의 절반이었는데.......... 어느 세월에 그 절반을 이룰 수 있겠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가 유행이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섣불리 말할 수가 없다.

오히려 '내 나이가 이래서'라고 가끔은 변명처럼 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빈번한 여행에 대하여 지인들은 한결같이 돈을 얘기한다.

나는 늘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시간의 문제'라고 그들에게 말하곤 했었다.

내 경우 2009년 딸아이의 미국 어학연수가 끝나는 시기였고,

그 시기에 걸맞게 아들이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결정을 하면 딸아이 대학 합격기념으로 함께 캄보디아를 다녀온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기였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딸과 합류하여 미국 서부 여행을 시작하자고 했다.

그때는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침체기로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는데

그 침체는 2009년에도 계속되어서 누구라 할 것 없이 다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2주일이나 되는 여행기간이야 연차를 몽땅 끌어다 쓰면 해결할 수 있었으나,

정작 우리에게는 금융위기 시기에 딸아이가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어느 때보다도 지출이 많아서

네 명이 여유롭게 미국을 여행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없었다.

그것은 남편을 갈등하게 하였고, 그 갈등을 내가 이해하게 된다면 그 여행계획은 물거품이

되리라는 것은 눈에 보이듯 뻔했다.

나는 여행비용은 대출을 받자고 했고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대출을 받아서까지 여행을 가자는 내가 참으로 어이없었을 것이다.

우리 둘이 조금 아끼고 저축하면 대출은 금세 갚을 수 있지만,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나는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을 설득하는 데 사용했던 문장이

바로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시간의 문제'였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을 만들어낸 나를 칭찬하고 싶다.

넷이서 차를 렌트해서 다니는 서부여행은 정말 즐거웠고,

남편은 지금도 그때를 추억하며 그런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기를 바라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라고 했다.

코엘료의 말이 맞다. 여행은 용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여행의 용기를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고 시간의 문제'라고 입에 달고 다닌다.

어쨌든,

어쩌다 보니 60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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