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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류 May 24. 2023

나도 이웃이 생겼어요.

지란지교를 꿈꾸며...

스스로가 이젠 완전한(완벽함이 아닌 신체적으로 늙어가기 시작한) 어른이라고 인정한 이후 처음으로 이웃을 가질 수도 있다는 설렘이 요즘 내게서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십 년이 넘게 살았던 곳들에서는 결코 갖지 못했던 이웃을 이사 온 지 채 일 년이 안 된 곳에서,

그것도 좋은 이웃이 생길 것 같다는 아주 유쾌한 예감이 든다.

사실 오십 대가 되기 전까지는, 아니 정확히 내가 사고로 인해 한동안 거동이 불편해져서 방지기가 되기 전까지는 이웃의 진정한 의미도 몰랐고, 그 필요함도 느끼지 못했었다.


어쩌면 나는 직장동료를 이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을 쉬는 동안 동료는 동료일 뿐 결코 이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 이후 오랜 병원생활을 끝내고 병가로 직장을 쉬면서 내 활동 범위가 집에서 반경 2km 정도밖에 허락되지 않았을 때에야 난 비로소 그 반경 내에 만남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고 마주 앉아 차 한 잔 할 수 있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인간관계의 협소함과 빈약함에 크게 상심했고, 문득 그때의 내 상황이 은퇴 후의 내 모습과 연결이 되면서 더럭 겁이 났다.


사실 나는 내 나이의 중량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나이 들어감에 대해 초조함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감으로써 가질 수 있는 내 시간의 풍요로움 그리고 경제적인 느긋함을 오히려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나이 듦을 반기는 쪽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이의 중량감을 의식하지 못했기에 지금의 모든 것이 더불어 나와 함께 한다는 오류 속에 마음을 담그고 있었던 것 같다.  


딴에는 형제자매도 많고, 친구도 나름 여러 그룹이 있었기에 한 때는 불필요한 잉여의 관계라 하여 전화목록에서 과감하게 삭제를 해버린 이름들도 숱하게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오만함과 경솔함이 넘쳤던 것 같다.

그런데 내 거동의 한계로 애써 약속을 잡고 그들이 내 반경 내로 오지 않는 한 그 만남들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 시절 내가 절실하게 그리워했던 것은 유안진교수가 말했던 지란지교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찾아가 허물없이 차 한 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김치냄새가 베인 옷을 입고 가도 흉보지 않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눈썹 같은 초승달이 고와 같이 보자고 불러낼 수 있는.

동네의 중심에 있는 호수의 야외무대에서 행여 음악소리가 들리거나 불꽃이 밤하늘에 펑펑 터질 때

운동복차림에 보러 가자고 할 수 있는.

홈쇼핑에서 1+1으로 산 물건이 굳이 다 필요하지 않아 어느 만큼은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마트에서 사 온 수박이 너무 커서 냉장고에 다 넣을 수 없어 반쯤을 나눠줘도 의심 없이 기쁘게 받아주는 그런 이웃이 몹시도 그리웠다.


그런 이웃이 있다면 그 나이를 개의치 않고 친구라 칭하며 행복할 것 같은데.

그런데 나이의 중량이 무거워질수록 지란지교의 이웃을 가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이제 이웃과 함께 할 공감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지켜볼 아이가 내겐 없고,

인근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없고,

아파트에 있는 경로당에 가기엔 내 나이가 너무 일렀다.

그렇다고 지란지교 같은 이웃을 찾는다는 피켓을 들고 행진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종교를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지란지교가 굳이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때까지 난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십 대 초반에 나는 비구니가 되고 싶어서 잠시 외출 같은 가출로 작은 암자를 찾아가

며칠 머물면서 마침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손가락 끝이 해지도록 연등만 만들다가 멋쩍게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비구니가 되고 싶었던 것에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 한창 불교와 관계된 서적들을 몇 권 읽었던 게 그 이유라면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채 20대의 나는 그랬었고, 지금도 만약 내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한 번쯤은 스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쯤은 씨실과 날실 같은 복잡한 인간관계에 얽히지 않고 오롯이 나로서만 있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태생적으로 절을 좋아하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일주문까지 걸어가는 그 한적한 길이 몹시 좋고, 퇴색된 단청옷을 입고 있는 사찰의 나이 든 툇마루에 누워

어릴 적 우리 집 툇마루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후 볕의 희롱질에 요리조리 몸을 뒤척이며 바람의 간지럼힘에 곰팡내 나는 몸과 마음을 바싹 말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러니 내가 종교를 갖는다면 당연히 불교가 우선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 이동반경 내에서 어찌 사찰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안타깝지만 차선을 찾아야 해서 재활운동이라 생각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골목골목 동네 탐방을 시작했다.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곳이라 동네는 생각보다 컸고 골목의 대부분은 건강했던 내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정말 내가 이 동네에서 십 년 가까이 살았던 것이 맞나 싶었다.

골목 탐방을 하다 보니 어쩌다 밤에 내려다보면 보이던 수많은 십자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교회가 골목 곳곳에 연씨방의 연 씨처럼 콕콕 박혀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지만 정작 마음이 열리지 않아 되돌아서야만 했다.


다른 골목에서는 원불교 교구당도 만났고, 그렇게 몇 날을 걸었을까.

평소에 자주 다니던 천변 산책로 끝자락에서 핑크색 지붕을 스카프처럼 두르고 있는 성당을 만났다.

이곳에 언제부터 성당이 있었던 걸까. 어젯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까.

슬금슬금 다가서서 살펴보니 분명 몇 해전부터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듯싶은데 이제야 내 시야에 잡힌 것은 나의 무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길섶의 작은 풀꽃들처럼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마침 그날은 예비신자들의 입교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6개월 정도의 교리수업을 스스로를 칭찬할 정도로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받고 지인에게서 추천을 받은 세례명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성경 필사도 완벽하게 다 끝내서 형제자매님들의 부러움을 샀던 나는 얼마 후 나의 어김없는 나태와 게으름으로 그 지란지교와의 끈을 놔버리고 말았다.

그 지란지교는 나의 일탈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고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게으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지란지교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눈빛을 맞춰주고, 가끔은 손도 잡아주고, 또 가끔은 어린애처럼 깔깔거리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웃을,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 지란지교를......


이사 온 아파트 길 건너에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문화체육센터가 있다. 마침 이사를 하면서 그만두게 된 필라테스를 다시 해 볼 요량으로 문화체육센터 프로그램을 봤더니 저녁 시간에 진행하는 요가수업이 있어 몇 번 온라인 접수를 시도했는데 늘 정원마감으로 그 기회조차 갖지 못해 센터직원을 찾아가 그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기존회원을 우대하는 사전 접수시스템으로 되어 있어 그들 중 누군가가 접수를 하지 않았을 때 신입회원에게로 그 기회가 넘어간다고 한다. 그마저도 미접수 기존회원이 없거나 있어도 겨우 한 두 명 정도라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하면서 팁 하나를 슬며시 던져준다.

기존회원 접수 마감일 자정에 로그인을 해놓고 대기하다가 미등록자 TO가 생기면 바로 신청하라는.....


그렇게 해서 도전 3개월 만에 회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슬며시 스며들었으나 천성이 수줍음이 많고, 이 나이에도 낯가림을 하는 내가 그 스며듬이 어찌 쉽겠는가.

감사하게도 신입이라고 별도의 인사를 하는 절차 없이 수업은 진행이 되었고,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종종거리며 집으로 오느라 바빴다.

다들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낯선 내가 스스로에게도 서먹하고 어색해서였다.


그런 날들의 세 번째 날 역시 일행들보다(회원의 절반 가까이가 내가 사는 아파트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앞서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이사 오셨어요?" 라며 내게 물었다.

멋쩍게 "아... 네에!" 하며 뒤돌아보니 참 따스한 눈빛을 가진 *란씨였다(물론 그땐 당연히 이름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이웃을 여섯이나 갖게 되었다.

나보다 넉 달 빠른 동갑내기 *이 씨를 제외하곤 다들 나보다 어리다. 나는 어떤 그룹에서든 아직은 내가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미처 다 떨쳐내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여러 그룹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한다.

그녀들을 보면 그녀들이 지나온 길들이 조금은 읽힌다. 자신의 자리에서 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짧은 머리의 *이 씨는 아주 늘씬하고 다부진 몸매를 가졌다. 적당하게 그을린 얼굴은 그녀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삶은 즐기고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나를 데리고 같이 놀아줬으면 좋겠다.


아, *씨. 나는 그녀 앞에서만큼은 겸손해져야 한다. 늘 공부하는 사람, 자신에게 잉여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열정의 그녀는 숙명인양 늘 공부하고 나이라는 한계에 스스로를 묶어두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녀의 도전을 응원한다. 6월 9일! 그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처음으로 나를 알아봐 준 영*씨. 웃는 눈매가 무척 곱고 다정한 미소를 지닌 그녀의 따스한 마음은 다만 사람에게로만 향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에 있는 듯하다. 나는 가끔씩 그녀의 반려견과의 외출이, 그리고 야생토끼를 만나 먹이를 건네주는 그녀의 다정한 모습이 보고 싶다.


웃을 때 깊숙이 패이는 보조개가 매력적인 *경 씨는 상대방의 긴장과 경계를 단번에 허물어버릴 수 있는 평온함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인 대화는 없었으나 함께 한 이들로부터 그녀에 대한 칭찬을 가장 많이 들었다.


아주 늘씬한 실루엣을 가진 *희씨에게서 어렴풋이 나의 vanity을 봤다. 탈의실의 옷걸이에는 분명 내가 입고 오지 않은 내 옷장 속의 옷들이 빈번하게 걸려 있었다. 그 옷의 주인공이 *희씨라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그녀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것들이 내게는 vanity이지만, 그녀에게는 결코 숨겨지지 않는 dignity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까이 두고 싶은 그녀다.


우리의 막내 *영 씨, 격의 없이 물처럼 스며드는 사교성과 그녀의 모든 것에서 풍겨 나는 숨길 수 없는 예술가의 향기가 또 하나의 그림자처럼 늘 그녀와 함께 하고 있다. 아들의 헐렁한 쟈켓을 훌렁 걸치고 있어도 그냥 멋지고, 자운영처럼 사람들의 관계 속에 스며들어 배려하고 격려할 수 있는 마음자락을 갖고 있다.


내게 이렇듯 다정하고 매력적인 이웃이 생겼다.

그녀들이 나의 지란지교가 되기를 원한다. 아니 먼저 내가 그녀들의 지란지교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

그녀들의 향기가 분명 내게로 스며들어 나 또한 그녀들의 향기에 거침없이 동화될 수 있기를.

지초와 난초처럼........

 

 지란지교(芝蘭之交)란!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香氣) 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도록 그 냄새를 알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香氣)가 동화(同化)된다」는 공자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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