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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Mar 03. 2022

나는 왕따였다

기관차로 산다

"옥상으로 따라와"

중학교 때 나는 왕따였다. 하는 짓이 어물어물하고 자기주장이 없었다. 친구라고는 성당 친구밖에 없었는데 죄다 싸움을 못했다. 유독 나만 불려 다녔다. 나도 때려보려고 했지만 맞기만 했다. 왜 때리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알 수 없는 폭력이 죽을 만큼 싫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를 붙잡고 결국 울면서 말했다.

"저 학교 안 다닐래요"


부모님께 일렀다. 아버지는 "남자는 참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도 늘 참는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나를 끌고 곧장 학교로 찾아가셨다. 어머니는 선생님과 상담을 하셨지만 힘센 친구들은 비웃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도리어 일렀다고 더 맞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반 친구들 모두 보는 앞에서 맞았으니까. 다른 친구는 내 교과서 한 장 한 장을 넘겨가며 가래침을 뱉어댔다. 30년이 넘게 흘렀지만 수치스러웠던 내 감정은 그날에 머물러 지워지지 않는다. 또 기억나는 말.

"억울하면 또 엄마 불러와"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흘렀다. 눈치 없이.


기왕 맞는 거 한 대 정도는 때릴 수도 있었는데 못 했다. 후회스럽다. 요즘도 맞는 꿈을 꾼다. 마흔 중반 나이얻어터지는 꿈이라니. 때리지도 못하고 깨어나면 머릿속이 얽매여 답답하다. 풀리지 않는 생각들은 스스로 합리화한다.

'안 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니다'

내 성격은 호구와 친절, 우유부단과 배려 사이를 줄다리기한다. 그래 놓고 끌려다닌다는 소리를 들으면 두드러지게 짜증을 낸다. 폭력에 민감하다. 인터넷 학교폭력 기사에는 꼭 '화나요'를 누르고 댓글까지 남긴다. '사람을 때리면 인생 망친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학교에서 만큼은 폭력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덮어놓고 사람이 사람 때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적어도 사람을 때렸으면 방송에는 안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여간 생각은 인도에서 '비폭력 운동'을 전개한 마하트마 간디에 버금간다. 


때론 안 좋은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아무도 따돌리지 않았는데 과거를 왜곡하고 의미를 두기도 한다. 내가 문제일까. 나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문뜩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은 알아차리고 긍정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한 때 괴롭힘 조금 당한 일을 가지고 뭐 대수라고'

문명의 발달과 높아진 사회 규범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나를 때리지 않는다. 이만하면 평온하다. 아직 출근길 고단한 문제를 해결 못 했지만 퇴근하면 나름 흥겹게 보내고 있다. 열차 운전하고 산다. 인생, 기관차로 살면서 스스로 운전해야지 객차나 화차로 살면서 끌려다니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얼굴이 이게 뭐야"

아이가 학교에서 맞고 돌아왔다. 태권도 유단자인 아내는 아이가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이다. 마음이 쓰렸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다. 한마디 해야 한다.  

"왜 바보 같이 맞고 다녀! 가서 때리고 와!"라고 내질렀다.

'진짜 때리면 어쩌냐고?'

못 때린다. 저 성격 내가 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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