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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Oct 26. 2020

철도 기관사로 산다는 것

기똥찬 하루

 “기차가 버스보다 좋은 이유?”

내게 묻는다면 이유는 분명하다. 기차는 화장실이 있고 버스는 없다. 하지만 화장실은 객차에만 있고 기관차에는 없다. 가만히 꾹 참고 견뎌야 한다. 대개 인간이 먹는 음식은 입에서 나누고 으깨어져 식도를 거치고 위에서 분해되어 소장과 대장을 지난다. 분명 단계가 있는데 내 식도와 대장은 바로 연결돼있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장이 안 좋은데 철도 기관사를 하고 있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일하기 전 음식 섭취는 삼간다.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다는 것, 어쩌면 행복이다.     


 동네 상가 화장실은 안 가본 곳이 없다. 주유소는 연료 상태보다 배 속 형편을 갈음해 들른다. 정갈한 음식은 청결한 화장실에서 나오고 식당 분위기는 편안한 화장실이 좌우한다. 화장실은 꼭 남녀가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이따금 테이블 공간을 넓히려 남자, 여자 화장실을 같이 쓰는 가게가 있다. 강력한 형벌로 규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둔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숨소리 한 번 못 내고 나온 뒤부터 쭉 지켜온 나의 소신이다.  

   

 기관사는 때맞춰 화장실을 드나들 수도, 끼니를 챙겨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다. 참는 게 일이다. 사람들이 출근하면 퇴근하고 퇴근하면 출근하는 일 또한 허다하다. 인생 거꾸로 살고 있지만 어디 세상에 좋은 일만 있겠나. 더 한 일도 많은데 안 먹고 안 자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장실, 이건 좀 문제가 다르다. 15년 동안 두 번의 위기가 있었다.

“못 버틴다.”

“절대 못 버틴다”라고 생각했던 순간도 결국 버텼다. 위기는 간절함으로 극복했다.

‘정신 차리자. 여기서 안된다. 오늘 저녁 뉴스에 나오는 수가 있다.’  

   

 운전을 혼자 처음 했던 날 눈은 펑펑 내리고 안개는 자욱했다. 동트는 새벽 춥지도 않은 기관차에서 벌벌 떨었다. 기차는 한숨 싣고 달렸다. 자동차 초보 운전 때 좌우에 달린 거울 한번 못 보고 가는 것처럼 기차도 봐야 할 게 많았는데 눈에 안 들어왔다. 수많은 승객을 이끌고 가야 하는 부담감이 더해지자 손에 땀이 마르질 않았다. 

‘내가 유난히 겁이 많나. 다들 안 그런 척하고 사는 건가. 시간 지나면 나도 괜찮아질까.’ 

근심은 내 속을 검게 그을렸고 내 손은 십자 성호를 그어댔다. 그래도 기차는 잘도 갔다. 정신은 내가 없지, 기차는 멀쩡했으니까.      


 적응이라는 게 무섭다. 이제 떨리지 않는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고 자그마한 여유도 생겼다. 차에 타면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동트는 새벽 빛줄기에 눈이 부시면 선글라스를 꺼내 쓴다. 마주 오는 열차를 향해 전조등을 줄이고 한 손을 들어 자연스레 인사를 건넨다. 적응하면 다 하게 되는 걸까. 무서워서 타본 적 없는 놀이동산 청룡 열차도 되풀이하면 탈 수 있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고 '난 할 수 없다'라며 규정하고 가둔 일들이 많다. 어쩌면 타고난 내 성격도 살면서 스스로 정하고 만든 게 아닐까. 환불하고 포인트 적립도 번번이 해 보면 언젠가는 '짜장면 젓가락 쿠폰' 열 장을 모아 군만두랑 교환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평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시도해봐야겠다. 주어진 일에 맞추어 변화하고 재미 찾아 살면서 다른 사람 얼굴에 똥칠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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