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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노 Nov 20. 2020

오락실 게임처럼 기차와 내 필살기

기차를 멈추는 필살기

 달리는 기차를 멈추기 위해서는 제동(브레이크)을 써야 한다. 구르고 있는 바퀴를 그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요즘은 전기와 공기 힘을 혼합한다. 대개로 공기 힘만을 쓰는 디젤기관차는 조금 특별하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기관차에는 공기가 들어있는 커다란 공기통이 있다. 기관사가 제동을 쓰면 통 속에 공기가 관을 통해 빠져나간다. 새어나간 공기 압력만큼 물체가 회전하는 바퀴를 눌러 기차는 멈추게 된다. 곧바로 멈춰 설 수는 없다. 제동에 필요한 공기가 관을 통해 빠져나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 사용한 제동을 연이어 거는 것도 쉽지 않다. 아까와는 반대로 없앤 공기를 통속에 다시 채우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가득 차올라야 비로소 비울 수 있다. 기관사는 ‘공기 압력 게이지’를 확인하며 때를 기다린다. 늦추고 멈춰야 할 때를. 


 “열차 승차권은 기관사가 어떻게 해줄 수 없어요.” 

청탁이 멈추질 않는다. 철도 기관사는 표를 구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라면 친한 사람 승차권 한 장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표를 구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던 방법 그대로 했다. 내 돈으로 직접 표를 사서 주었다. 자리가 없으면 인터넷에 접속해 실시간 클릭을 했다. 그러다 운 좋게 좌석이 나면 발권해 주었다. “역시 너는 달라”라는 말에 괜히 으쓱해졌다. 하지만 한번 도움을 받은 사람은 승차권이 필요하면 다시 나를 찾았다.     


 “나랑 친한 신부님은 왜 우리 본당을 안 오실까? 막내 첫영성체 부모교리도 힘든데.”

모든 건 나로 인해 생겼다. 축구 경기 관람하러 갈 때는 성당 축구 코치 동생에게 연락했다. 안부 전화하며 내심 입장권 기대를 했다. 컴퓨터 수리는 직장 동기, 여행 콘도 예약은 동네 지인에게 부탁했다. 몸이 아파 병원 가면 선배를 찾았고 차가 고장 나면 카센터 친구를 불러냈다. 다른 사람 덕 좀 보겠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부탁하면 나 또한 값을 치러야 했다. 그놈의 '덕', 멈출 순 없을까.     


 주말에 놀자는 딸을 뒤로하고 나간 탁구장, 상대에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나를 보고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기차 타고 안에서 달려봤자 도착지 정해져 있다. 욕심부리지 말고 해.”

나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포기해야 한다. 본질은 건강이다. 즐겁고 건강하면 그만이다. 시기하고 깎아내릴 필요 없다. 내려오는 건널목 차단기 앞에서 쉬어 가듯, 멈추고 달래면 마음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현재에 만족한다. 현실에 안주한다. 스스로 포기한다. 이런 멈추는 삶이 나쁘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끝없이 돈 벌고 높은 자리 오르는 일, 무릇 바벨탑 같다. 소유하지 않지만 값진 삶을 사는 신부님, 수녀님도 계시지 않는가. 그만두고 포기해야 한다. 아무나 깻잎 때어 주고 지퍼 올려줘서는 안 된다. 공기청정기를 사들여놓고 탁한 연기 내뿜는 담배를 찾는 모순된 나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때론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      


 서로 싸워 승부를 내는 오락실 게임 속 캐릭터에게 ‘필살기’가 있다면 기관사에게는 ‘제동’이 있다. 단 한 번의 기회이다. 놓치면 판이 어려울 수 있다. 게임 속 필살기는 ‘분노 게이지’가 가득 차 시뻘겋게 달아오르면 쓸 기회가 주어진다. ‘분노 게이지’는 상대에게 얻어맞을수록 쑥쑥 차 오른다. 삶이라는 게임, 그릇된 행동들이 쌓이기 마련이다. 멈추지 못하면 탈선한다. 한 번에 상황을 뒤집는 게 유리하다. 상황을 역전시킬 특별한 기술.

바로 ‘멈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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