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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 Feb 10. 2023

아주 오래전 사라진

“너를 보고 있으면 때때로 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 그 별은 무척 밝게 보이지. 하지만 그 빛은 몇 만 년이나 이전에 보내진 빛이거든. 그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천체의 빛인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 빛은 어떤 때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실적으로 보이지. 넌 지금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넌 여기에 없는지도 몰라. 여기에 있는 건 네 그림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몰라. 진짜 너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고. 난 그걸 점점 알 수 없게 되어버렸어...(후략)”

하루키'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中



하지메가 시마모토에게 내뱉는 아마도 가장 길고 긴 하소연이다.


종종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있다. 홀로 아득한 지평선을 서성이는 것 같은 느낌.

분명 같이 있는 데 손에 닿지 않는 느낌.


어떤 원망과 함께 몸서리쳐질 정도의 그리움,
그리고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언젠가 내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고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네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넌 자꾸 마음의 준비를 하게 만드는 사람이야.’


난 왜 그랬고 넌 왜 그랬을까. 이미 사라진 별처럼 잔상만 존재하는 희미한 생명체. 갖지 못할 거라면 손에 쥐어주지 말았어야지, 후회해도 늦어버린. 수천 년 전 별의 이야기.


Starry night _ digital painting, 30x40, 2022 by 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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