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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 Feb 09. 2023

잃도록 설계된 이 곳

꿈을 꾸었다.

사랑하는 것들을 반드시 잃도록 설계된

감옥에서 탈출하는 꿈

포기했던 것들을 되찾는 꿈


꿈속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주변은 온통 초록빛이고

나는 그 빛에 휩싸여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양 볼은

떠오르는 단어를 두서없이 내뱉는 동안 더 발그스름해지고, 허공의 단어들은 한 편의 연서가 되었다.

즉흥적으로 끄적인 스케치북엔 사랑하는 고양이의 모습이 담긴다. 크고 하얀 고양이. 안아주려 다가갔는데 오히려 날 안아준 보드라운 생명체. 아, 이제 더 이상 갇혀있지 않구나, 안심해 버리게 만드는 현실적인 감촉.


꿈은 늘 그렇듯 가장 행복한 순간

암전 되듯 사라진다.

텅 빈 방. 불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린다.

다시 이곳이다.

처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난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갈 테고

무채색의 세상에 홀로 남을 것이다.


Baby camellia in dream _ oilpastel on paper, 21x30cm, 2023 by 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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